시간여행이 가능한 한 남자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영화 ‘어바웃 타임’. 사진 IMDB
시간여행이 가능한 한 남자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영화 ‘어바웃 타임’. 사진 IMDB

432_74_01.jpg시간은 앞으로만 직진한다.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처럼 뒷걸음질 치지 않는다. 연어처럼 떠났던 자리로 회귀하거나 사춘기 반항아처럼 옆길로 새는 일도 없다. 깨진 조각들이 모여 멀쩡한 유리컵이 되고 엎질러진 물을 감쪽같이 담을 수 있는 건 필름을 거꾸로 돌려볼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인간은 상상한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이제 말하는 거야? 진작 말해줬다면 함께 멋진 여름을 보냈을 텐데.” 팀의 고백을 들은 여자가 아쉬운 듯 말한다. 팀은 신이 나서 과거로 돌아가 다시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러자 여자가 떨떠름하게 말한다. “와우, 멋져. 그런데 나중에 답해도 되지? 휴가 마지막 밤에 다시 물어줄래?” 이런 여우 같으니. 첫사랑이란 단어가 뒤통수에 씁쓸하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팀의 집안 남자들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스물한 번째 생일을 맞던 날, 아버지가 들려준 비밀이다. 미래로는 갈 수 없다. 역사를 바꿀 수도 없다. 남을 해롭게 하지 않는다면 개인적인 삶에 변화를 줄 수는 있다. 할아버지는 그 능력을 돈 버는 데 투자했고 아버지는 수많은 책과 지식을 섭렵하는 데 사용했다. 팀은 사랑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곧 깨닫는다. 과거와 현재를 열두 번 왕복한다 해도 애초에 싹트지 않은 사랑을 생겨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대학을 졸업하고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팀은 블라인드 식당에서 합석한 메리에게 첫눈에 반한다. 빛 한 줄기 없는 어둠 속에서 반짝인 건 그녀의 외모가 아니었다. 팀은 그녀의 이야기와 목소리와 웃음에 반했다. 몇 시간 뒤 식당을 나와 그녀와 마주선 순간, 팀은 운명이라고 느낀다.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온 그는 수만 개의 오색 풍선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 별을 한 아름 따온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세 들어 사는 집의 주인이자 희곡작가는 금방이라도 화가 폭발해서 죽을 것 같다. 그날 저녁 초연한 무대에서 대사를 잊어버린 배우들이 연극을 망쳐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것쯤이야. 시간여행 능력이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아닌가? 팀은 기꺼이 과거로 돌아가 공연을 성공시킨다.

그런데 아뿔싸! 메리가 직접 휴대전화에 입력해준 전화번호가 보이지 않는다. 극장에 가는 바람에 메리를 만난 시간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조간신문에 실린 찬사와 호평을 읽으며 기뻐하는 작가와 달리 이번엔 팀이 죽을 맛이다. 메리를 놓쳐선 안 된다. 하지만 원상복구시킨다면 집주인은 또다시 비극에 빠지고 말 것이다.

팀은 시간여행을 할 때마다 종종 예기치 못한 현실 변화와 마주친다. 비뚤어진 과거 하나를 바로 잡으면 현실의 열 가지가 어긋나는 것이다. 시간여행의 나비 효과다. 만약 과거를 살짝 수정하고 돌아와 보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귀여운 딸아이가 떡두꺼비 같은 아들로 바뀌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원래대로 돌려놓을 것인가, 뒤바뀐 현실에 머물 것인가?

시간여행을 원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 대신 과거에 집착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지금 여기에서 수정할 여지도 있을 것이다. 어제는 오늘이 되어 사라졌고 내일도 오늘이 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은 오늘이고, 무언가를 바꿀 힘을 가진 것은 현재의 자신이다.

팀은 기억을 더듬어 현실의 메리를 찾아낸다. 통성명부터 다시 시작해서 차곡차곡 사랑을 쌓아간다. 그래도 아직은 현재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연히 재회한 첫사랑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널 거절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유혹했을 때, 팀은 깨닫는다. 과거는 지나가 버렸다는 것을. 지금 곁에 있는 메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팀은 메리를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천둥·번개가 치고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팀은 메리와 결혼한다. 야외 피로연장의 천막은 무너지고 케이크는 죽이 됐으며 하객들은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 버렸다. 하늘이 축복하지 않는 걸까, 불길한 징조는 아닐까, 많은 사람이 의심했을지도 몰랐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까?” 팀이 묻는다. 만약 메리가 속상해한다면 과거로 돌아가 햇살 눈부신 날로 바꾸리라. 그런데 메리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한다. “완벽했어. 이제 시작인 걸. 앞으로 많은 날이 있을 거고. 재미있잖아!”

‘어바웃 타임’은 타임 슬립을 소재로 하지만 타임머신이 나오는 공상과학 영화는 아니다. 제목 그대로 시간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담고 있는 예쁜 선물상자 같은 동화다. 연인들의 달콤한 사랑 이야기로 출발해서 아버지와 아들의 이별로 여운을 남기며 시간여행자조차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코가 시큰하게 말해주는 인생의 단면이기도 하다.

‘러브 액츄얼리’ ‘네 번의 장례식과 한 번의 결혼식’ ‘노팅 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만들었던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작품이다.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와 인연이 깊은 레이첼 맥아담스와 아일랜드의 매력적인 배우 도널 글리슨이 사랑스러운 연인을 연기했다.

시간여행에 대한 상상이 건네는 최고의 지혜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타임머신이 필요하진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시간여행자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거침없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간다. 그때 들었던 음악이 어디선가 들려올 때, 그 사람과 함께 먹었던 음식 냄새가 코끝을 스칠 때, 눈을 감고 주먹을 꼭 움켜쥐면 우리는 어느새 과거로 돌아가 있다.

그때 좀 더 잘할 걸 하고 후회할 때, 만회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실패를 박차고 뛰어오를 용기도 샘솟는다. 미련 없이 떠나보낼 결심이 서는 것도 그런 순간이다. 그렇게 눈을 뜨고 나면 마음의 키가 새끼손가락 끝마디 정도 자랐을지도 모른다.

뒤돌아볼 때 100% 만족한 인생은 없다. 과거를 고치고 또 고쳐도 현실은 완전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만약 지금의 내가 10년 후의 미래 세계에서 돌아왔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을까?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처럼 오늘을 살아라. 인생을 멋지게 사는 비결이다.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김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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