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름’의 허구와 ‘범주’의 종말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대체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말 그대로 물고기의 죽음에 대해 말한다.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류도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콕 꼬집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찍이 분기학자들은 1980년대에 이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타당한 생물 범주로서 어류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학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의 직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니, 누구라도 쉽게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직관’이라는 이름의 장벽을 치우고 바라본 세상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새들이 공룡이라는 사실, 식물처럼 느껴지는 버섯이 동물에 훨씬 더 가깝다는 사실…. ‘직관’이야말로 우리를 속이는 악마다. 

물속에 산다는 이유로 수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다른 종을 ‘어류’라는 하나의 범주로 인식하는 것은 생명체들 사이에 ‘잘못된 거리 감각’을 만들어 내지만, 무엇인가가 지속되는 데에는 모종의 이해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잘못된 거리 감각은 생명체를 구분하는 ‘상상 속 사다리’에서 인간이 제일 윗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명분을 준다. 이럴 때 범주화의 도구로 쓰이는 언어는 인간을 다른 종들과 구분되는 존재로 인식시키는 무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 책을 쓴 룰루 밀러는 과학 전문 기자다. 무탈하게 지내던 어느 날 한 여아를 향한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고 신체적 접촉을 하게 되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연인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삶을 모조리 잃는다. 남자친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가 붙잡은 밧줄이 바로 어느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대기다. 스탠퍼드대 초대 총장이자 저명한 학자로 추앙받던 조던은 어류 분류학계의 영웅이었다. 자연이라는 혼돈 속에서 구분과 이름 짓기를 통해 질서를 만들었던 영웅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흐트러진 삶도 조금은 정리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조던의 작업은 미지의 생물에게 자신의 깃발을 꽂는 일이었다.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물고기를 발견하면 주석 이름표에 그 존재를 지칭하는 이름을 펀치로 새기고 그 이름표를 유리 단지 속 표본 곁에 담근 채 뚜껑을 닫는다. ‘질서 속으로 끌어다 놓은 혼돈의 양이 거의 건물 두 층 높이로 올라갈 때까지’ 그의 작업은 계속됐다. 

그러나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그가 만든 질서의 세계가 허상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는 우생학의 열렬한 신봉자로, 인간의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확신했던 반인륜적인 인간이었다는 근거도 속속 발견된다. 룰루 밀러는 그의 이름 붙이기가 잘못된 단언과 확신의 세계에서 비롯된 폭력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책이 진행되면 영웅 서사는 ‘빌런’의 서사로 바뀐다. 

자신에 대한 자서전인 동시에 그가 한때 삶의 모델로 삼았던 영웅에 대한 평전의 성격을 띠는 이 책에서 두 사람의 서사는 상승하강 곡선을 그리며 교차한다. 열등한 것을 퇴치함으로써 인류의 ‘쇠퇴’를 예방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졌던 우생학자로서 조던이 집중했던 것은 세대에서 세대를 거치면서 이어지는 유전적 증거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조던적 세계가 믿었던 ‘성장’이기도 했다. 한편 그의 삶을 되짚어가는 동안 룰루 밀러는 유전되지 않는 것과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즉 탈선한 존재들에 대해 생각한다. 모두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문화적 유전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는 조금씩 성장한다. 성장은 사람들이 말하는 이름들을 하나둘씩 획득해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과 다른 방향으로 하나둘씩 어긋나는 것이다. 그 어긋남의 총체가 ‘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성장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통해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 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우리가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 삶을 어두운 질서에서 벗어나 빛나는 혼돈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로써 룰루 밀러는 자신을 한순간 나락으로 빠뜨린 그 사건도 얼마간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성(性)에 붙여진 이름과 스스로에 대한 느낌 사이의 거리감에도 얼마간 해답을 찾는 것 같다. 양성애자라는 말 역시 충분한 범주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는 더 이상 자신을 떠난 남자를 기다리지 않는다.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여성과 시작한 나날들 속에서 그는 어느 때보다 더 자신으로 사는 것 같다. 이름이 없는 곳에서 자유가 시작된다.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 평론가상


Plus Point

룰루 밀러(Lulu Miller)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Peabody Awards)을 받은 과학 전문 기자다. 15년 이상 미국공영라디오방송국(NPR)에서 일하고 있다. 인간의 행동을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힘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NPR의 ‘인비저빌리아(Invisibilia)’의 공동 기획자이자 뉴욕공영라디오방송국의 ‘라디오랩(Radiolab)’에도 자주 참여하고 있다. 뉴요커, VQR, 오리온, 일렉트릭 리터러처(Electric Literature), 캐터펄트(Catapult) 등에 꾸준히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