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브뤼크네르 소설가 겸 철학자 프랑스 소르본대 철학과, 현 그라세 출판사 편집인, 현 ‘르 몽드’ 칼럼니스트, 전 파리 정치대 교수, 전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초청교수, ‘순진함의 유혹’ 저자 사진 ⓒJF PAGA
파스칼 브뤼크네르 소설가 겸 철학자 프랑스 소르본대 철학과, 현 그라세 출판사 편집인, 현 ‘르 몽드’ 칼럼니스트, 전 파리 정치대 교수, 전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초청교수, ‘순진함의 유혹’ 저자 사진 ⓒJF PAGA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라는 책을 읽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인터뷰 책을 썼던 터라, 같은 인문학 분야에서 약진하는 이 프랑스 지성의 작품이 몹시 궁금했다. 동서양의 지혜는 이토록 다르게 생동했다. 이어령 선생이 정오의 분수처럼 죽음을 생의 한가운데로 초대해 감각하고 사유했다면, 브뤼크네르는 사랑과 일을 노년의 한가운데로 불러들여 임종 전까지 ‘욕망할 것’을 권고한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는 엄숙한 생명의 질서만큼이나 ‘젊은이도 늙은이도 욕망 앞에 평등하다’는 브뤼크네르의 선언은 정신이 얼얼할 만큼 센세이셔널(sensational) 했다.

에로스와 디오니소스의 충동으로 가득 찬 당대의 철학자는 말한다. ‘살아있으려면 사랑하라’고. ‘노년에 욕망이 감퇴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고령에도 통찰력과 푸릇푸릇한 정신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분별력의 대가들이 얼마나 많으냐’고. 어쩌면 우리는 고령화에 대한 담론을 새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74세의 파스칼 브뤼크네르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그는 르노도상과 메디치상, 몽테뉴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석권했고 파리정치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나이듦’이라는 주제를 전하기 위해 따로 준비가 필요했나.
“‘노년’이라는 주제 자체가 대단한 힘과 매력을 갖고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문구를 첫 번째로 쓸 것인가였다. ‘포기를 포기하라!’ 이 첫 문구를 골라서 쓰는 그 순간, 글 전체의 톤이 정해진다. 좋은 아이디어란 식탁보의 실과 같다. 실 하나를 당기면 식탁보 전체의 올이 풀린다.”

프랑스는 ‘노년’에 관한 철학적 유서가 깊은 듯하다. 몽테뉴, 파스칼, 시몬느 드 보부아르에서 이어진 ‘노화에 관한 사유’가 칼칼하더라.
“고통, 노화 그리고 죽음이라는 문제를 성찰하는 프랑스 사상가들의 문학적 전통이 있다.”

삶은 늘 영원한 도입부라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세 시대의 중간 지점인 50대만의 생물학적 화학적 신비가 있을까.
“오십 세라는 좌표는 하나의 이정표다. 은총과 붕괴 사이에서 파도를 타는 나이다. 더 높은 것을 꿈꾸고, 더 멀리 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건강한 상태지만, 노화의 첫 징후도 나타난다. 특이한 건 오십 세가 되면 인생이 정말 짧아지기 시작한다. 오십이 넘었다면 당신은 이미 사랑, 가족, 직업 등에서 많은 의무를 치렀고 시니어로 불릴 것이다. 그때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든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여전히 또 다른 변화를 꿈꿀 수 있을까. 다행히 오십 이후에도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30여 년이 더 있다. 남은 시간을 얼마나 잘 사용할까. 그것은 각자에게 위대한 과제고, 그래서 우리는 단지 늙어가는 것만으로 자기 인생의 철학자가 된다. 적어도 오십 년은 지나야 ‘되어야 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생이 자기 앞에 펼쳐진다.”

이미 절반이 지났는데, 도전은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 아닌가.
“에너지를 쓰는 게 곧 삶이다. 여러분은 10년을 주기로 자신을 거침없이 재구축해야 한다. 50, 60, 70, 80⋯ 숫자가 바뀔 때마다 안주하지 말고, 위험을 무릅써도 된다. 자기로 사는 편안함과 자기일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인지해야, ‘나’로 살 수 있다. 만약 도전할 에너지가 없다면, 당신은 자신의 생존을 증명하는 반짝거림을 잃어가는 중이다. 죽기도 전에 사라질 이유가 있나?”

최근에 나는 한국의 지성을 인터뷰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을 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라스트 인터뷰다. 그는 컵을 육체, 그 안에 담긴 물을 욕망과 마인드, 컵 안의 빈 곳을 영혼으로 설명했다. ‘욕망의 역동성’에 큰 가치를 두는 당신에게 이 이야기는 어떻게 다가가나.
“다른 비유를 사용해서 답을 하겠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당신이 지나갈 때 문이 저절로 닫히는 어두운 복도를 걷는 것과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두 개의 문을 최대한 늦게까지 열어 두는 것이다. 바로 그 문이 욕망의 변화구다.”

시간이 주인공인 이 세계에서 속절없이 미끄러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는 없나.
“철학은 삶을 배우는 것, 특히 유한성 안에서 다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한 사람의 평생은 새벽과 아침, 정오와 황혼이라는 하루의 여정과 유사하다. 인생은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한 해의 구조를 띠고 있다. 매일 아침 우리는 태양을 선물로 받는다. 여름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달리거나 빠르게 걸을 때, 나는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이것이 내가 시간이 주인공인 세계에 맞서 싸우는 방법이다. 그러나 시간 속에서 나의 주체성을 찾는 최고의 방법은 사랑을 하는 것이다. 살아있으려면 사랑을 나누라. 미끄러지는 시간을 붙잡을 순 없지만, 행복한 순간은 항상 ‘앙코르’를 원한다. 반복이 시간의 기약이고, 우리가 좋은 환상에 몰두할 수 있는 동안은 소망이 있다. 100세 노인도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내일을 말한다. 그러니 죽음보다 지금의 삶에 더 집중하라. 우리는 내일 깨어날 테고, 내년에도 새해 인사를 나눌 거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은 메멘토 모리만큼 인생의 즐거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없다고 했다. 나는 이제껏 철학은 죽음을 가르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기에, 매우 당황스러웠다.
“간단하게 말해보자.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는다. 왜 우리의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죽음이라는 암울한 시각으로 망쳐야 하는 걸까?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플라톤이나 몽테뉴가 말했듯이 어떻게 죽어야 할지에 대해 배우는 거다. 하지만 죽는다는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교과 과목이 아니고 우리는 모두 결국 100% 죽게 돼 있다. 죽음은 우리 모두가 뛰어난 성적으로 통과하게 될 유일한 시험이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우는 것이다.”

‘죽음을 알면 삶을 알게 된다’라는 명제가 삶의 생기를 억누른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앞서 말했듯, 메멘토 모리의 폐해는 우리의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을 해로운 독으로 파괴한다는 거다.” 


‘죽음을 가정할 때 일상은 더 농밀해진다’는 동양 현자의 말도 ‘죽음의 환기는 생이라는 축제를 망칠 뿐’이라는 서양 현자의 말도 다 일리가 있다. 그 차이는 ‘생명을 어떻게 감각하느냐’에 있는 듯했다. 생명을 생육과 번성으로 보느냐, 사랑과 성으로 보느냐에 따라, 시간은 영원이 되기도 하고 순간이 되기도 한다. 분명한 건, 나이 들수록 반복하는 날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매일 비슷한 하루를 살고, 어김없이 다가오는 사계절을 맞는다. 줄거리를 알면서도 같은 기대, 같은 전율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그 반복 속에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며, 제 각자의 미세한 파동을 만들어간다.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시시한 일상 ‘루틴’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한다. 반복은 불모성과 생산성의 양가적 힘이 있다고. 반복의 영성을 지닌 성실한 사람들, ‘바른 생활 루틴이’라는 별명을 지닌 요즘 세대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통찰이다.

 

프랑스 소설가 겸 철학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 사진 ⓒJF PAGA
프랑스 소설가 겸 철학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 사진 ⓒJF PAGA

반복을 ‘정체된 전진’이라고 표현했다. 같은 자리로 계속 파고들어 가야만 위대한 발견이 나올 수 있다고. 특별히 요즘 시대 사람들에게 ‘반복’이 더 중요한 이유가 있을까.
“반복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하나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끔찍한 루틴 또 하나는 정반대로 인생을 계속해서 다시 시작하려는 시도다. 물론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때문에 우리 삶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첫 번째 반복이 지속했었다. 그러나 좋은 의미의 반복은 숨은 재능을 찾게 해준다. 자신을 흉내 내는 과정에서 혁신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프루스트도 고유한 목소리를 찾을 때까지 자기를 베끼고 또 베끼면서 천재성을 갈고 닦았다. 나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걸 발견했다.”

자기 쇄신의 시간을 만들어가기 위한 당신만의 하루 루틴이 있나.
“가장 중요한 루틴은 피아노를 치고 운동을 하는 거다. 그 루틴으로 나를 충전하고, 다른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리듬을 만든다.”

‘일, 참여, 공부’ 이 세 가지가 우리를 맥없는 시간에서 구원한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나이 들수록 우리는 일을 통해 공동체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느껴야 한다. 함께 어울리는 소속감도 매우 중요하다. 공부는 스스로가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깨닫게 하는 ‘자기 구제’의 핵심이다. 일, 참여, 공부⋯ 이 세 가지를 통해 삶은 단시간 내에 충만해질 수 있다.”

모든 것에서 찬란함을 재발견하는 것이 진정한 성장이라면, 선생은 노인과 어린아이 중 어떤 시기를 택해 살고 싶은가.
“노인의 지혜를 가진 어린아이로 살겠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유년은 실제 상태가 아니라 정신적 기질이다. 다시 젊어지진 못해도, 탐구와 관찰의 정신을 유지하면 굳어버린 삶에 맞서서 경탄의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늙은이에게 꼭 필요한 것은 또 무엇인가. 
“사랑, 건강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욕망.”

책과 친구와 여행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나.
“우선적으로 책을 선택하겠다. 그다음이 친구와 여행 가는 것이다.”

물려받은 재능 중 어떤 것이 감사한가. 
“성실함, 책과 예술에 대한 호기심, 겸손함과 존경심을 물려받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상처받았지만 충만했고, 악몽을 관통했고 보물을 받았다. 당연히 받았어야 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터무니없는 은총이 감사하다.’ 이 엔딩 문장에 감동받았다. 이 소박하고 강렬한 결론은 어떻게 나왔나.
“완벽한 구조는 절대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반복과 노력, 유사한 문장들이 있었다.”

선생의 바람대로, 우리 세대는 ‘평화롭고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
“행복한 노화는 절대 평화로울 수 없다. 대신 놀라움과 발견의 연장선상에서 역동적이고 요란스럽고 또 풍족해야 한다. 평화란 RIP(Rest In Peace)란 유명한 어구처럼 제일 마지막에 찾아올 거니까.”

마지막으로 언젠가 당신의 묘비에 새길 문장을 말해달라.
“나는 인생을 사랑했고, 인생은 나에게 백배로 갚아줬다(I loved life, it rewarded me a hundredfold).”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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