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저마다 인생의 ‘첫 번째 개(first dog)’가 있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퍼스트 도그는 아마도 초등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 초 우리 집 마당에서 키우던 개일 것이다. 개의 이름이 그 시절 유행을 따라 ‘해피’라 불렸는지 ‘독구’라 불렸는지 생각은 나지 않지만, 그 개와 함께 산이나 들로 다니며 온종일 뛰놀던 기억은 생생하다. 첫사랑(first love)의 기억처럼 첫 번째 개의 기억도 또렷한 것이다.
이 퍼스트 도그에는 또 다른 뜻도 있다. 대통령의 가족을 비공식적으로 ‘퍼스트 패밀리(first family)’라고 하듯이 ‘대통령의 개’를 퍼스트 도그라고도 부른다. 미국의 경우,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스코티시 테리어라는 종의 개를 퍼스트 도그로 키웠다. 빌 클린턴은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버락 오바마는 포르투갈 워터독을 키웠다.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은 독일산 셰퍼드 종을 퍼스트 도그로 키우고 있다. 예외적으로 도널드 트럼프는 퍼스트 도그를 키우지 않았다고 한다.
조 바이든이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역대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퍼스트 도그를 함께 데리고 들어가자 미국 일리노이 웨슬리언대 심리학과의 엘렌 펄롱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에 들어간 개들은 대통령이 정치적 상황에서 받을 스트레스와 긴장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경우 장점이 많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자신의 개를 쓰다듬어 주면서 그들과 나지막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 신체 변화를 측정한 실험이 있다. 그때 사람과 개 모두 혈압이 떨어지고, 사람들로 하여금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페닐에틸아민의 혈중 농도도 눈에 띄게 높아지더라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도 심장 박동 수가 감소하고, 혈압도 낮아지고,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할 수 있는 코르티솔의 분비도 확연히 떨어졌다.
문학 전공의 대학교수인 선배 한 분은 무척 내성적인 성격이라 낯선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집에 반려견을 키우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그는 가끔 반려견을 데리고 인근 한강변의 공원을 산책하는데, 역시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이 있으면 자연스레 대화를 하게 된다고 한다. 개의 나이나 성격에서부터 그들의 행동 양태까지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떤 때는 서로 간의 세상 사는 이야기까지 진전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반려동물은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데 ‘사회적인 윤활유’ 작용을 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개가 곁에 있으면 다른 때보다 더 자주 미소를 짓는다. 더 긴 대화를 하고, 장기적으로 우정을 나눌 가능성도 더 크다.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 때도 주변에 반려동물이 있으면 문제를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푸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엘렌 펄롱에 의하면 주변에 반려동물이 있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직장과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삶의 질도 더 나은 편이라고 한다. 구글이나 아마존 등 직원이 반려동물을 데리고 출근하는 것을 허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왜 회사 측이 반려동물을 배려하는 펫-프렌들리(pet-friendly) 정책을 펼치는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유독 인간 잘 따르는 동물, 개
진화심리학자들은 여러 동물 중에서 유독 왜 개가 오래전부터 가축화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반려동물 중에 가장 인기 있고, 인간과 이렇게 친밀하게 됐는지를 두고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개 협력 가설(Canine Cooperation Hypothesis)’이다.
이 가설은 개가 특별히 인간과 친밀하게 된 이유가 개가 다른 동물에 비해 사회적으로 매우 관대하고(social tolerance), 또 세심하기(social attentiveness)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직 가설단계이고 반론도 적지 않지만, 개가 인간을 유독 잘 따르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을 지켜본 경험으로 보면 나름 근거가 있어 보인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의문을 던질 수 있다. 개를 비롯한 반려동물과 함께 지낼 때 정서적 안정감 등 여러 장점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때로는 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가며 살아야 할 정도로 바쁜 미국의 대통령이 하나같이 퍼스트 도그를 기르는 이유가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대체 왜 미국의 대통령들은 개를 좋아하는 것일까.
전통사회에서 부모는 자식에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해 준다. 더 나아가 사냥이나 낚시 혹은 채집처럼 먹거리를 해결하는 방법에서부터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 언제 나타나 자신을 위협할지 모르는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 등 다양한 생존기술을 전수해준다.
이런 상황은 현대사회도 비슷하다. 부모가 자식의 양육을 위해서 쏟는 노력과 비용은 엄청나다. 기본적인 유아용품과 장난감, 각종 학원비, 캠프 비용, 대학 등록금은 물론이고 결혼식과 신혼집 마련 등 혼수비용도 대개는 부모의 몫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손주가 태어나면 손주를 돌봐주는 일도 해야 한다. 직접적으로 양육에 참여하든, 양육에 드는 비용을 대든 간에 말이다. 이런 행동은 누가 가르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능의 영역에 속한다. 친족 보살핌 본능(Kin-Care Instinct)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양육 본능은 자신의 직계 존비속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조카나 입양한 아이에게도 활성화된다.
인간의 양육 본능은 우리를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게 한다. 우리는 낯설지만 불쌍한 처지에 놓인 이방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멀리 아프리카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동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전쟁으로 고국을 등진 난민들은 물론이고, 개나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을 돌보는 행위도 양육 본능의 범위가 확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왜 한결같이 백악관에 입성하기 전 후보 시절부터 반려견을 키우고 돌보는 모습을 그렇게 열심히 홍보하는가의 대답은 나온 것 같다. 대통령이 자신의 퍼스트 도그를 정성껏 돌보는 모습은 유권자의 양육 본능을 극도로 활성화하고 그것이 고스란히 자신을 지지하는 투표 행위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의 경우 가구의 60% 이상이 개를 키우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나의 말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자신의 반려견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인 홍보를 위해서 위선적인 행동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사적인 차원이 아니라, 공적인 차원에서 반려견을 돌보는 행위를 홍보하는 심층 심리를 말하는 것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직설적이고 저돌적이기까지 한 도널드 트럼프가 퍼스트 도그를 키우고 홍보하는 행위가 ‘가식적으로 보여서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반려견을 키우는 가구 수가 급증하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 한국에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들도 미국처럼 반려견을 자신의 홍보를 위해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이미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서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도 퍼스트 도그를 키웠다. 현 문재인 대통령도 퍼스트 도그의 사진을 자주 공개해 왔다. 대선의 승패에 따라 우리나라의 새로운 퍼스트 도그가 결정될 날이 이제 불과 열흘도 남지 않았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