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와일더 감독의 고전 스릴러 영화 ‘이중배상’. 사진 IMDB
빌리 와일더 감독의 고전 스릴러 영화 ‘이중배상’. 사진 IMDB

사람을 죽이는 이유는 대개 복수심과 돈 그리고 여자다. 원한 때문이라면 살인이 목적이 된다. 돈과 미인이 목적이면 살인은 수단이다. ‘저 인간만 치워버리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세계에서 범죄를 파묻을 수는 있을지언정 일반인의 완전범죄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1938년 7월의 늦은 밤,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있는 보험사 건물 앞에 택시가 멈추고 남자가 내린다. 코트를 어깨에 걸친 뒷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사무실의 불을 켜고 책상 앞에 앉는다. 그제야 남자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난다. 코트를 벗은 그의 왼쪽 어깨에는 피가 얼룩져 있고 얼굴에는 땀이 흥건하다. 한 손으로만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것으로 봐서 총상을 입은 모양이다. 그는 녹음기를 켜고 힘에 겨운 듯 말한다. “키즈, 당신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어요.”

그의 이름은 월터 네프, 서른다섯 살의 미혼이고 유능한 보험 세일즈맨이다. 사건 경위를 보고받을 수신인은 그의 상사이자 보험사기 조사관 바튼 키즈. 네프는 얼마 전 죽은 피보험자 디트릭슨이 타살된 건 맞지만 키즈가 범인을 잘못짚었다고 말한다. 그는 고백한다. 살인범은 바로 자신이라고. 이후 그는 보험사기를 계획한 동기와 살인 방법을 털어놓는다. 약 두 달 전, 그는 유전개발 회사의 사장 디트릭슨의 집을 방문했다. 만기 된 자동차 보험을 갱신하기 위해서였지만 네프를 맞이한 건 사장의 매혹적인 아내 필리스였다. 젊고 키 크고 잘생긴 데다 2년 연속 세일즈 왕에 선정될 정도로 능력을 자부하는 네프는 어떤 여자도 자신을 거절할 리 없다고 믿는 듯 당돌하게 유혹한다.

이제 막 샤워를 마치고 나와 블라우스 단추를 채우며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바르는 여자도 외간 남자의 시선을 즐기는 것 같다. 네프는 취할 듯 진한 향수와 그녀의 가느다란 발목 때문에 정신이 혼미하다. 남편이 있을 때 다시 방문하기로 했지만 그녀를 만나려는 구실일 뿐, 보험 갱신은 이미 그의 안중에 없다. 그래서 사고 사망 보험도 다루냐고 필리스가 은근히 물었을 때, 11년 경력의 베테랑이라면 당연히 읽었어야 할 그녀의 속내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약속한 날 집에 가보니 계약 당사자인 남편은 없다. 가사 도우미도 없다. 여자가 일부러 아무도 없는 집에 자신을 불렀다는 생각에 네프는 설렌다. 필리스는 남편 앞으로 보험을 들고 싶다고 말한다. 다만 남편이 몰랐으면 좋겠다고 그녀가 속삭인다. 블라인드의 그림자가 감옥의 창살처럼 실내의 빛을 가둔다. 네프는 뒷골이 서늘해진다. 자신을 이용하지 말라며 소리친다. “지겨워진 남편을 현금으로 바꾸고 싶은 거요?” 그녀를 냉정히 뿌리치고 나온 네프는 도덕적으로 우월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카드 게임에서 유리한 패를 쥔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이 사라지면 그녀가 자기 것이 될 수 있으리라는 욕망도 꿈틀거린다. ‘하지만 범죄다’ 하는 양심의 목소리가 마음을 맴돈다.

비가 내리는 밤, 필리스가 네프의 아파트로 찾아온다. 딸까지 있는 나이 많은 홀아비와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지금 얼마나 불행한지를 이야기한다. 그래도 남편을 죽이려는 생각은 없다며 결백을 호소한다. 여자는 가련한 새처럼 네프의 품으로 파고든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려 할 때 몇 차례 정지 신호가 켜진다. 주변인들이 조언을 하거나 알지 못할 무언가 길을 가로막아 정체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질주 본능에 빠져 있다면 멈추기 어렵다. 무시 못 할 경고음이 귀를 찢을 때는 이미 늦었다. 브레이크를 밟아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인생은 벌써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중이다.

그들은 살인을 모의한다. 네프는 보험 전문가다. 같은 조건에서 배상금을 두 배로 받아낼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다. 키즈가 사건을 어떻게 파헤치는지 알기에 그물을 빠져나가는 길도 훤하다. 보험금 잭팟을 필리스에게 안겨주고, 자신을 영웅처럼 우러르는 그녀와 함께 파라다이스로 떠날 터였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단 하루, 한순간이라도 예상한 대로 굴러가던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네프는 걱정이 되지만 필리스는 겁도 없이 과감하다. 네프가 머뭇거릴 때마다 “사랑해요”, 그녀가 속삭인다.

영화를 시작할 때 밝힌 것처럼, 네프는 필리스의 남편을 ‘성공적으로’ 죽였다. 보험사기극을 귀신처럼 냄새 맡고 파헤치며 한 번도 실수한 적 없는 26년 경력의 프로 조사관 키즈조차 네프가 범행을 저질렀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키즈는 네프가 자신처럼 조사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를 신뢰했다. 두 남자의 상호 보완적인 우정은 키즈가 담배를 물고 성냥을 찾을 때마다 네프가 불을 붙여주는 것으로 상징된다. 그들의 역할은 마지막에 꼭 한 번 바뀐다.

필리스는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런데 네프는 왜 피를 흘리며 사무실에 왔을까? 그가 자백하는 동안 그녀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포스트 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쓴 제임스 M. 케인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매릴린 먼로의 ‘7년 만의 외출’, 오드리 헵번의 ‘사브리나’ 그리고 ‘선셋 대로’ 등 흑백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빌리 와일더 감독의 작품이다.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기나긴 이별’의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각색을 맡았다. 범죄자는 타고나지 않는다. 우리 눈앞에 있는 누구라도,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장담하는 우리 자신조차 범죄자가 될 수 있다. 타인을 해쳐서라도 나의 이익과 행운을 우선할 때, 악은 코앞에서 반짝이는 미래를 흔들며 유혹한다. 특히 아름다운 여인(또는 남자)과 돈다발이 아른거린다면 경계경보가 울리고 있는 게 아닌지 귀를 바짝 세워야 한다.

총천연색의 현란함 대신 상상의 여백이 큰 흑백 영화는 인물과 스토리에 더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1944년 영화인 만큼 지문이나 DNA 또는 법의학 해부와 프로파일링 같은 현대적 수사 방법은 잠시 밀쳐놓기를 바란다. 조금 어수룩해진 덕에 누릴 수 있는 고전적 스릴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김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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