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방시에서 선보인 레터맨 재킷. 사진 지방시 2 루이비통 2022 봄/여름 패션쇼에서 레터맨 재킷을 입은 모델. 사진 루이비통3 구찌에서 선보인레터맨 재킷. 사진 구찌
1 지방시에서 선보인 레터맨 재킷. 사진 지방시
2 루이비통 2022 봄/여름 패션쇼에서 레터맨 재킷을 입은 모델. 사진 루이비통
3 구찌에서 선보인레터맨 재킷. 사진 구찌

지금 ‘레터맨 재킷(letterman jacket)’이 전 세계 패션 스트리트를 점령했다. 지난 가을 시즌부터 패션 인플루언서와 연예인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던 레터맨 재킷이 대중적인 트렌드로 퍼져 나가며, 간절기 시즌의 대표 아우터(outer)인 가죽 재킷을 제치고 스타일의 승자가 됐다. 

레터맨 재킷은 ‘바시티 재킷(varsity jacket)’이라고도 불린다. 또한 ‘스타디움 점퍼(stadium jumper)’라고도 하는데, 국내에서는 야구점퍼나 ‘과잠(‘학과 잠바’를 줄여 만든 말로, 대학에서 같은 학과 학생들끼리 단체로 맞춰 입는 점퍼)’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레터맨 재킷은 1865년 하버드대 야구팀에서 처음 입기 시작했다. 초기 형태는 두꺼운 니트였는데, 1930년에 지금의 재킷 형태로 바뀌었다. 하버드대 이니셜 ‘H’ 패치를 앞가슴에 장식한 재킷을 학교 야구 대표팀이 처음 경기장에서 입었다. 이를 계기로 모교 마크의 부착이 허락된 학교 팀 선수를 뜻하는 레터맨 재킷으로 불리게 됐다. 

초기에는 팀 주장만이 레터를 재킷에 달 수 있었는데 이후 대표팀 선수들 모두 가슴에 레터를 다는 것이 허용됐다. 그 뒤로 레터맨의 전통이 미국 명문 대학에서 고등학교와 다른 대학들로 전해지면서 학교 대표팀 재킷이라는 뜻의 바시티 재킷이라는 용어가 인기를 얻게 됐고, 미국 전역의 학교 운동선수들이 바시티 재킷을 입게 됐다. 

레터맨 재킷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몸통 부분은 양모나 펠트(felt·양털이나 기타 동물의 털에 습기, 열, 압력을 가하여 만든 천)를, 소매는 이와 대비되는 색의 가죽을 사용하고, 목, 손목, 허리둘레를 밴드 처리하는 지금의 디자인으로 완성됐다. 또한 학교 이름의 이니셜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팀이나 선수 번호, 기타 여러 활동을 상징하는 레터와 엠블럼(emblem·문장을 뜻하며, 학교나 스포츠 클럽의 심벌마크를 자수로 만든 장식) 등을 재킷 곳곳에 장식하는 고등학교와 대학 문화로 발전해갔다.

이러한 인기는 프로 야구팀 팬 용품 제조업체들의 눈길을 끌었다. 프로 야구팀 팬을 위해 팀 로고와 마스코트 등으로 장식한 레터맨 재킷을 제작했는데, 비싼 가죽과 양모 소재 대신 새틴을 사용하여 재킷 가격을 낮추고 모든 연령과 계층의 팬이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반짝이는 새틴 소재 야구 재킷이 탄생한 것이다. 또한 이 재킷이 농구와 축구 등 다른 프로 스포츠 시장으로 퍼져나가며 LA 레이더스, 뉴욕 닉스, 보스턴 셀틱스, 시카고 불스 등 대규모 팬을 거느린 프로 농구팀들도 그들만의 새틴 레터맨 재킷을 내놓기 시작했다.

특히 1980년대가 되며, 레터맨 재킷은 스타와 셀러브리티들을 통해 주류 대중문화의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된다. 가수 마이클 잭슨이 ‘스릴러(Thriller)’ 뮤직비디오에서 입은 금빛 가죽 소매의 빨간 레터맨 재킷은 전설적인 패션이 됐다. 그렇게 대중문화와 스포츠 웨어의 만남은 1990년대 힙합 룩과 스트리트 룩으로 이어지며, 레터맨 재킷은 100년 가까이 인기를 끌어오며 아메리칸 스포티즘의 클래식이 됐다. 


명품 디자이너까지 사로잡아 패션 클래식으로 거듭난 레터맨 재킷

레터맨 재킷이 명품 패션 하우스의 디자이너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그동안 생로랑, 셀린 등 일부 패션하우스만 레터맨 재킷을 선보여왔는데, 2021년 가을/겨울 패션쇼에선 루이비통, 오프화이트, 구찌, 버버리, 지방시 등이 각각 패션하우스만의 정체성을 담아 재해석한 레터맨 재킷을 경쟁하듯 런웨이에 올렸다. ‘L’과 ‘V’ 레터를 장식한 루이비통, 오프(OFF) 레터와 화살표 모양의 브랜드 로고로 재킷의 앞뒤를 장식한 오프화이트, 구찌 체인과 브랜드 로고 레터링을 장식한 구찌,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레터 D를 장식한 디올 맨, 앞판 중심에 지방시(GIVENCHY) 로고를 크게 새긴 지방시, 대형 레터 B를 앞판에 장식한 버버리 등, 학교 이름의 이니셜 대신 명품 브랜드 이름의 대형 이니셜이 장식됐다. 명품 브랜드의 심벌과 로고들이 장식된 레터맨 재킷은 단번에 패션 트렌드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인플루언서와 연예인을 매혹시켰다. 가장 ‘스타일리시’한 래퍼로 손꼽히는 에이셉 라키(A$AP Rocky)가 루이비통과 구찌의 레터맨 재킷을 입고 여러 공식·비공식 자리에 등장하고, 라프 시몬스의 레터맨 재킷을 입은 리한나 등 연예인의 모습이 파파라치 사진에 잡히며, 레터맨 재킷의 인기가 이전과 달리 더 막강해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2022년 봄/여름 시즌이 되며, 명품 패션하우스에서 시작된 레터맨 재킷의 리그는 중저가 브랜드까지 전 세계 패션 브랜드의 리그로 퍼져 나갔다. 고가의 명품 레터맨 재킷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브랜드와 가격대의 레터맨 재킷을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골라 입을 수 있게 됐다. 개성 강한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는 빈티지 매장이나 중고 매장에서 레터맨 재킷을 찾아, 이를 자신의 스타일대로 새롭게 리폼하고 장식하거나 아예 자신의 이름 이니셜이나 자신만의 심벌을 주문 제작한 ‘커스터마이즈드(customized)’ 레터맨 재킷을 입기도 한다. 

또한 로고와 엠블럼 장식이 화려한 디자인부터 단색 컬러의 심플한 디자인까지 다양해서 40~50대 이상도 레터맨 재킷을 일상의 캐주얼 룩으로 즐겨 입고 있다. 동시에 레터맨 재킷을 세련된 오피스 룩으로 연출할 수 있다. 블랙의 단색이나 블랙 앤드 화이트의 심플한 레터맨 재킷은 셔츠, 조끼, 니트 등과 스타일링해도 멋진 캐주얼 오피스 룩을 완성시켜 주기 때문이다. 슬림한 스커트 또는 반대로 실크나 새틴 스커트, 원피스와 매치시키면 여성들의 워킹우먼 룩으로 근사하다.

유행의 순환은 다시 레터맨 재킷을 오늘의 트렌드로 돌아오게 했다. 레터맨 재킷의 매력은 청춘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다.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모교의 운동선수로 활약했거나 학교 팀을 응원하며 그 문화 속에서 성장한 미국인이 아니어도, 영화와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 미국 하이틴 문화를 보며 자라온 세대들 그리고 열광하는 야구와 농구팀의 스타디움 점퍼를 수집하는 세대들의 감성까지 자극한다. 또한 ‘과잠’을 입고 캠퍼스를 돌아다녔던 국내 20~30대에게도 학창 시절에 대한 향수를 일으킨다. 얇은 패딩, 가죽 재킷, 트렌치코트, 두꺼운 모직 재킷과 니트 스웨터 등이 뒤섞이는 간절기, 지금 전 세계 패션 스트리트로 퍼져나간 레터맨 재킷의 스타일 리그에 동참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케이 노트(K_not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