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핸디 경영사상가 영국 옥스퍼드오리엘대 고전문학, 역사, 철학,  전 영국 왕립예술학회 회장,  전 세인트 조지 하우스 학장,  전 영국 런던대 경영심리학 교수 사진 인플루엔셜
찰스 핸디 경영사상가 영국 옥스퍼드오리엘대 고전문학, 역사, 철학, 전 영국 왕립예술학회 회장, 전 세인트 조지 하우스 학장, 전 영국 런던대 경영심리학 교수 사진 인플루엔셜

찰스 핸디가 손주들을 위해 쓴 자애롭고 공적인 서간문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를 읽게 된 건 행운이었다. 신의 공의를 공리적 전통으로 구현한 영국인답게 그는 21통의 편지로 자본주의와 인본주의의 어긋난 균형을 맞추고, 생활인으로서 우리의 자세를 반듯하게 교정해준다. 그는 기술혁명이 일어나도 사람의 지혜는 변하지 않는다고 우리를 다독인다. 아내와 페르시아 유적지를 여행하며, 키루스 대왕의 담대한 관용과 위임이 오늘날 다국적 기업의 표본임을 깨닫는다. 와인을 곁들인 저녁 식사에는 네 명 내외의 친구를 초대해야 발언권이 보장된다는 충고도 곁들이면서.

일터의 현자는 ‘워라밸’이라는 조어도 지적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삶과 더 적은 일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일을 더 적절하게 조합하는 것이라고. 핸디 부부는 노년에 이르렀을 때, 1년을 절반으로 나눠 6개월은 남편이 사진가인 아내의 전시회를 돕고, 6개월은 아내가 남편의 강연 매니저로 일했다.

핸디는 다국적 석유 회사의 임원을 지냈고 런던경영대학원에 MBA 과정을 창립하고 가르쳤다. 그는 또 시대를 꿰뚫는 혜안과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에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다. 세기의 경영사상가를 이메일로 만났다. 90세의 인생 구루(guru⋅스승)는 생의 마지막 몇 달을 남겨둔 채로, 기꺼이 인터뷰에 응했다. 그의 아들 스콧 핸디가 아버지의 육성을 정리한 기나긴 녹취록을 보내왔다. 


찰스 핸디. 사진인플루엔셜
찰스 핸디. 사진 인플루엔셜

건강은 어떠신가.
“지금 나는 인생의 마지막 몇 개월을 보내고 있다. 어떤 책임도 고통도 느끼지 않고 평화롭게 누워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다. 인생의 끝이 이렇게 좋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놀라울 정도로 행복하고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을 거의 성취했다. 얼마 전엔 아프리카에서 ‘영국의 찰스 핸디 교수 앞’이라고 적힌 편지 한 통도 받았다. 반송 주소도 서명도 없었다. 단지 ‘찰스 핸디, 정말 감사합니다’라고만 쓰여 있었다. 내가 느끼는 건 하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는 것.”

등대지기였던 외조부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이 생각하나.
“아일랜드 전역의 등대를 관리하셨던 외조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나는 그분께 듣고 싶었던 것을 손주들에게 전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바쁘더군. 운동 시합과 시험 결과에 집중하느라, 내 말을 들을 시간이 없었다(웃음). 그래서 책을 썼다. 그 애들이 자기 일을 갖고, 직장 생활을 할 즈음이면 ‘할아버지의 생각’이 궁금해질 테니까. 쓰다 보면 알게 된다. 인생에서 내가 배운 것이 무엇인지.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뒤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된다.”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무엇인가.
“인생은 배움의 여정이다. 코너를 돌면 뭐가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배움이라는 보상이 따른다.”

선생이 경험한 행복은 어떤 상태였나.
“할 일이 있고 사랑할 사람이 있고, 기대할 것이 있는 상태다. 내 삶의 모토다.”

찰스 핸디(오른쪽)가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인플루엔셜
찰스 핸디(오른쪽)가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인플루엔셜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단연코 ‘사랑할 사람’이다. ‘좋은 친구’는 ‘연인’만큼 좋다. 어떤 연인은 이기적이라 당신에게 돌려주는 것을 싫어한다(웃음). 운 좋게도 내 아내 엘리자베스는 최고의 친구였다. 배움과 위로를 주는 ‘베프’! 아내는 신중했고 적정한 선을 지켰다. 나를 비판했지만 동시에 ‘당신이 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라고 일깨웠다.”

관계의 황금분할을 만드는 비법이 궁금하다.
“인생은 위험의 연속이기에, 급격한 코너를 돌 때마다 ‘걱정하지 마. 괜찮아질 거야. 기회를 보자. 웃자’라고 격려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관계는 다 ‘양방향’이다. 기업과 관계이든 인간관계이든 양쪽이 다 공정하다고 느껴야 거래가 지속된다. 서로가 원하는 걸 얻어야 한다. 당신이 맞닥뜨린 행과 불행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상대에게, 당신도 합당한 ‘관심’과 ‘염려’를 돌려주어라. 공생에 무임승차는 없다. ‘기대치의 균형’은 투명한 계약이다. 상대가 원할 때, 그들의 삶에 나를 몰입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연결될수록 외로워지는 요즘 세상에서 어떻게 그런 진짜 조언자를 삶에 초대할까.
“아내와 나는 인생 전반에 걸쳐 두 명의 친구와 가깝게 지냈다. 점심도 함께하며 자주 어울렸다. 난처한 직장 문제를 의논하고, 서로가 처한 곤경에 대해 조언했다. 당신을 돕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진짜 친구다. 그들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정기적으로 만나 의견을 구해라.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기가 정말 성공하길 바라는 사람의 조언만 받아들인다. 그래서 ‘당신 틀렸어요’라는 아내의 말을 나는 순순히 수용했다. 혹 당신이 팀원의 조언자가 되려거든 당신이 그들 편이라는 걸 먼저 납득시켜라. ‘비난이 아니라 도움이 되고 싶다’는 진심을. 경험상 직장 상사는 나를 돕기보다 이용하는 데만 급급했다.”

인간은 관리돼야 하는 자원이 아니라는 말도 충격이었다.
“사람은 자원이 아니다. 일하는 인간은 욕구와 자율성이 있는 독특한 주체다. 사물은 관리되어야 하지만, 사람은 격려와 용기로 움직인다. 사람을 물건 취급하면, 사람은 물건처럼 행동하게 돼 있다. 단어가 중요하다. 많은 인사 담당자가 자신을 인적 자원의 관리자(HR)라고 여기는데, 하루빨리 관리자에서 조력자로 인식을 전환하기 바란다. 리더십은 적절한 사람을 뽑아 잘 해낼 수 있는 조건과 이해할 만한 기준을 제시하고, 성취한 경우 보상하는 행위다.”

돈 문제에서는 언제부터 자유로워졌나.
“나는 여러 번 직업을 바꿨다. 석유 회사 간부에서 교수로, 프리랜서 작가로. 직업을 바꿀수록 즐거움은 커지는 대신 소득이 줄더군. 하지만 아내와 나는 만족했다. 우리 부부는 소득에 맞게 생활 수준을 조절하는 훈련이 돼 있었다. 물건은 수리해 오래 사용했고, 부족하지 않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돈에 초연하라는 말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의 너무 많은 시간을 쏟지 말라는 거다.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고, 원치 않는 일을 계속하면, 영혼이 망가진다.”

'각자도생’과 ‘머니러시(수입을 다변화하고 극대화하고자 하는 노력)’의 날이 길어지다 보니, 젊은이들은 하고 싶은 일보다 돈이 되는 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원하는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선택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직업은 일종의 징역형 선고처럼 평생 여러분을 쫓아다닐 수 있다. 우리는 생계를 위해 일하지만 일 이상의 존재다. 내가 석유 회사에서 일할 때 경리 부서의 한 젊은 여성 직원이 그러더군. ‘언젠가 내가 하는 일이 나 자신의 일부인 날이 오면 좋겠어요’라고⋯. 수년 후 그 여성은 등반대를 이끄는 산악인이 됐다. 파티에서 만난 한 여성은 자신을 텔레비전 각본가라고 소개했다. 한 편도 제작된 적 없지만, 주중에 그 일을 하려고 일요일엔 생계를 위해 달걀 포장을 한다고. 일요일의 달걀 포장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일인 거다. 인간은 늦더라도 자기가 진정 원하는 일을 찾아가게 돼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맞다. ‘타인을 위해 당신이 가장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 나도 강연을 잘 마치고 손뼉 치는 사람들과 눈 맞춤할 때 살아있다는 희열을 느꼈다.”

기술의 변화에는 차분히 대처하라고 했다. 무슨 뜻인가.
“변화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등잔으로 불을 밝혔고 디젤 엔진으로 우물의 물을 퍼 올렸다. 나 또한 들불처럼 일어나는 기술혁명을 목격했지만, 삶의 근원적인 질문은 바뀌지 않더라. 무엇이 공정한가? 친구는 누구인가? 사랑과 용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에 대한 답은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 배웠다. 통상 새 기술이 일상이 되는 데는 30년이 필요하다. 자율주행차가 그 예다. 본격적인 인공지능(AI) 시대가 되면 많은 인간이 IA(Individual Assistant⋅인공지능의 개인 보좌관)가 될 거다. 인간의 역할은 창작가(Crea-tors), 간병인(Carers), 관리인(Custodians)을 뜻하는 3C로 국한될 거라고도 한다. 어떤 범주에 속하든 기술과 실업에 대한 해답은 다양한 형태의 자기 고용이다. 노동이 계속되려면 노동 형태가 달라져야 한다. 나는 일찍부터 ‘포트폴리오 라이프’라는 대안을 얘기했다. 어떤 기술로 남에게 도움을 줄지, 미리부터 탐구하고 설계해라. 보수를 받는 구체적인 일과 무보수지만 유익한 일을 적절히 배치하면서.”

경영사상가로서 선생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무엇인가.
“경영사상가로서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친구가 정말 중요하다’는 거다. 강한 힘이 느껴지는 전성기 시절이나 지금처럼 움직일 수 없는 마지막 때나 말이다. 당신을 찾아오는 친구에게 아낌없이 애정을 표현해라.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우선하면 이익은 자연히 따라온다. 이익을 먼저 챙기면 주변 사람들부터 떠날 거다. 일터에서 신뢰할 만한 사람을 만나면, 그들에게 자유를 줘라. 놀라운 충성심과 혁신을 보게 될 거다. 지금이라도 그런 싹이 보이는 사람을 만나거든, 애정의 끈으로 묶어둬라. 비용이 든다면 지불해라. ‘정직한 친구’는 최고의 투자처다.”

친구가 내 장례식의 추도 연설을 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고 했다. 어떤 효과가 있나.
“좋은 기억의 순서를 알 수 있다. ‘찰스 핸디는 멋진 사람이었습니다’로 시작되겠지. 어떤 업적을 남겼나보다 손주들과 아이처럼 놀고, 아내에게 웃음을 선물하고, 아픈 이웃에게 좋은 친구였다는 점이 떠오를 거다. 성공에 목마른 젊은이들에게 나는 진심으로 조언한다. 살아가는 것의 대부분은 거의 우정에 관한 것이라고. 인생은 결국 관계다. 좋은 기억과 좋은 기분의 하모니다.”

사회 갈등과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격동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국인 친구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
“삶의 끝에 남는 질문은 두 개다. 누구를 도왔나? 얼마나 배웠나? 타인을 위해 당신이 가장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라. 나는 진심으로 당신이 잘되길 바란다.”

인생의 마지막 쿼터에 이르러 정말 한 줌의 아쉬움도 없나.
“아쉬움이라니! 내겐 더 이상의 책임도 지불할 청구서도 없다. 침대에 누워있다 보면, 생의 좋았던 시간만 떠오른다. 세상엔 내가 누린 좋았던 것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새소리, 봄에 피는 꽃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나무들⋯. 기쁨은 절대 셀 수 없는 것들이다. 숫자가 없으니 정말로 멋진 기분이다. 천국이 이런 곳 아닐까.”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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