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강구안. 사진 최갑수
통영 강구안. 사진 최갑수

봄날 통영을 찾았다. 바람은 잔잔했고 바다는 배부른 고양이처럼 순했다. 봄 햇살은 이마를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통영에 있는 동안, 짧은 시간이었지만 넉넉하고 평안했다. 마른 오이처럼 오그라들었던 마음은 반듯하게 펴졌고 날카롭게 날이 섰던 정신도 한결 누그러졌다.

서울을 빠져나온 지 네 시간. 통영에 들어서자 마음이 먼저 부스럭거린다. 비로소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든다. 충무대교를 넘어 미륵도로 향하는 산양해안도로에 올랐다. 달아공원과 해양수산과학관, 충무마리나리조트로 이어지는 이 길은 국내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해안도로다.

길은 심전도 눈금이 요동치듯 오르락내리락한다. 산 허리를 꺾어 돌면 아담한 포구가 나타나고, 다시 고갯길을 넘으면 푸른 바다가 눈앞에 열린다. 길가에는 어느새 동백이 낭자하게 피었다. 대단위 군락은 없지만, 길가에 소담하게 핀 봄꽃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눈을 즐겁게 한다.


달아공원 가는 길에 만난 일몰. 사진 최갑수
달아공원 가는 길에 만난 일몰. 사진 최갑수

산양읍으로 접어드는 갈림길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돌면 통영만이다. 달아공원과 통영수산연구소를 지난다. 달아공원은 통영 바다를 한가로이 바라보기에 좋은 곳. ‘달아’라는 이름은 이곳 지형이 코끼리 어금니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달구경 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공원 입구 도로변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대고 5분 정도 완만하게 닦인 공원길을 올라가면 관해정이라는 정자가 나오는데, 이곳에 서면 이름을 갖지 못한 작은 바위섬에서부터 재도, 저도, 송도, 학림도, 곤리도, 연대도, 만지도, 오곡도, 추도 그리고 멀리 욕지열도까지 수십 개의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섬 이름을 안내하는 대형 지도가 한쪽에 설치돼 있는데 실제 섬과 이름을 짝지어가며 보는 재미도 있다. 관해정에 앉아 바라보는 일몰도 일품이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아마도 사는 것이 답답하게만 여겨질 때, 지나가지 않아야 할 것들이 지나가고 있는 듯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 결국 우리네 스산한 마음을 위로해 줄 것은, 말없이 생채기를 어루만져 주는 것은 이런 풍경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은 아닐는지. 

통영의 눈부신 봄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어디 이뿐일까. 봉평동의 전혁림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통영의 눈부시게 푸른 바다와 강렬한 햇빛을 볼 수 있다. 한국 추상화의 대가로 꼽히는 전혁림 화백은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 미술학교 한번 변변히 다니지 못했지만, 미국의 한 미술 잡지에 한국 10대 화가로 꼽히기도 했다. 1977년부터 고향 통영으로 내려와 통영과 다도해를 화폭에 담았다. 전혁림미술관은 전혁림 화백의 작품 70여 점을 전시한 곳. 전혁림 화백의 아들인 전영근 화백이 운영하고 있다. 건물 외벽의 타일은 전 화백의 그림을 기초로 디자인했는데 연한 하늘빛부터 검푸른 빛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푸른빛이 인상적이다.

그의 그림은 보다 보면 온통 푸른색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통영 바다의 강력한 푸른색이 그를 사로잡았으리라. 전 화백은 전시관의 한 게시물에 “통영 앞바다는 저 멀리 스칸디나비아나 지중해, 알래스카에서 밀려온 파도가 아닐까 싶었다”라며 “내 그림에 나타나는 파란색의 이미지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라고 써놓았다.

통영이 배출한 예술가는 전혁림 화백뿐만이 아니다. 시인 유치환과 김춘수, 작곡가 윤이상이 통영에서 났다. 김춘수 시인은 통영이 “내 시의 뉘앙스가 되고 있다”라고 했고 윤이상은 미륵도를 “우주의 소리를 들은 곳”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박경리, 시조시인 김상옥의 고향도 통영이다. 화가 이중섭도 한때 통영에 머물며 ‘통영 풍경’ ‘복사꽃 핀 마을’ 등의 그림을 그렸다.

통영에 왔다면 청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남망산공원으로 오르는 입구에 그의 시 깃발이 세워진 시비가 서 있다. 남망산 정상에 오르면 통영항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중턱에 있는 남망산조각공원에서는 세계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통영 시내의 청마거리도 돌아보자.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의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스민 곳이다. 청마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정운 이영도에게 연서를 썼다. 건너편 이층집은 정운이 살았던 곳. 사모하는 연인의 집이 바라보이는 우체국에서 편지를 쓰는 청마의 마음은 얼마나 애달팠을까. 그 마음만큼이나 붉은 우체통이 우체국 정문 앞에 놓여 있다.

통영우체국 옆에 있는 청마의 부인 권재순씨가 운영하던 충무교회 내의 문화유치원도 그대로다. 정운에게 띄운 연시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탄생했다니 청마거리를 걸으며 상상하는 이들이 가슴 졸이는 러브스토리는 한 편의 영화 못지않다. 


전혁림미술관 전경. 사진 최갑수
전혁림미술관 전경. 사진 최갑수

아름다운 봄섬, 소매물도

통영까지 갔다면 소매물도에도 가보자. 섬은 작다. 반나절이면 돌아볼 수 있다. 선착장에서 내려 섬 정상인 망태봉까지는 30분. 고작 120m밖에 되지 않는다. 망태봉 오르는 길은 오솔길이다. 동백나무가 드문드문 심겨 있고 흑염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등에 땀이 밸 때쯤이면 망태봉에 닿는다. 망태봉에서는 등대섬이 내려다보인다. 광고나 관광 안내 포스터에서 봤던 그 풍경이다.

등대섬의 등대는 1917년 8월 5일 첫 불을 밝혔다. 1940년부터 등대지기들이 들어왔는데 아직도 네 명이 거주하고 있다. 소매물도와 등대섬이 하나의 섬은 아니다. 50m 정도 떨어져 있다. 물이 빠지는 썰물 때는 자갈 바닥이 드러나지만 밀물 땐 배를 빌려 타고 건너 들어가야 한다. 관광지가 아닌 까닭에 상륙선은 따로 운행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소매물도에 오면 시인이 된다. 심장에선 꽃이 피고, 돌멩이의 숨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된다. 이게 바로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하려는 본능이 숨어 있으며 풍경은 때로 이 사실을 깨우쳐준다. 우리가 애써 풍경 속으로 떠나려는 부정할 수 없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여행수첩

먹거리 뱃사람들의 도시답게 통영에는 해장국도 먹을 만한 것이 많다. 통영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은 시락국. 시래깃국을 일컫는 사투리다. 시락국은 장어머리를 고아낸 국물에 된장을 풀고 끓이는데, 산초(제피) 가루와 김 가루, 잘게 썬 고추와 부추 무침을 먹는 사람 입맛대로 넣는다. 뜨끈한 국물이 맵싸한 산초가루의 향과 어우러져 시원한 맛을 낸다. 시락국과 함께 통영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해장국은 졸복국이다. 작은 붕어 크기의 졸복을 넣고 미나리, 콩나물과 함께 우려낸 국물은 진하면서도 담백하다. 충무김밥은 맨 김으로 싼 밥과 무김치 그리고 시락국이 전부다. 길 떠나는 어부들을 상대로 팔던 음식이어서 젓가락 대신 이쑤시개를 사용한다는 것도 특징. 시락국은 서호시장 입구 대장간 골목에 있는 원조시락국이 유명하다. 졸복국은 만성복집과 풍만식당이 잘한다. 통영문화마당 앞에는 ‘원조’를 내건 충무김밥집이 늘어서 있다.


▒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최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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