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남동부 도시 메디카에서한 우크라이나 여성이담요로 감싼 아기를 안고걸어서 국경을 넘고 있다. 사진 AP연합
폴란드 남동부 도시 메디카에서한 우크라이나 여성이담요로 감싼 아기를 안고걸어서 국경을 넘고 있다. 사진 AP연합

오른손이 번개처럼 날카롭게 움직이며 화음을 내자, 왼손이 격정적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다. 음악은 지칠 줄 모르고 더욱 거친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곧이어 등장하는 선율이 비통함을 느끼게 한다. 이 곡을 듣자, 필자의 머릿속에는 뜬금없이 이런 단어가 떠오른다. “또 이 곡이야?”

이 물음은 음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귀찮음, 지겨움 등의 감정이 포함된 것이다. 전문 연주자로서 밝히기 부끄러운 내용이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기에 솔직하게 고백해본다. 바로 프레데리크 쇼팽의 피아노 연습곡 Op. 10 제12번 ‘혁명’을 들을 때다. 

이 작품은 쇼팽의 명곡 중의 명곡이고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대중적인 곡이다. 그만큼 아름답고 그의 예술성이 탁월하게 표현됐다는 방증이라 하겠다. 하지만 피아노 학원에서 바이엘 1번을 시작한 이후 30년 동안 필자는 이 작품을 수없이 많이 쳐왔다. 입시, 콩쿠르, 연주회 등에서 다른 이들의 연주도 족히 만 번은 들은 것 같다. 이 작품을 들으면 이미 스포일러를 접한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영화에서 어떤 놀라운 장면이 나오건 말건 이미 시들해진 관객이 무의식적으로 팝콘에 손을 가져가는 것처럼, 필자의 마음은 더 이상 이 곡에 담긴 어떤 격정, 비통의 감정에도 동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듣는 이가 지겨움을 느낄 정도로 유명한 쇼팽의 곡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1830년 쇼팽은 20세의 나이였다. 그는 직감했다. 성공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폴란드 바르샤바가 아닌 더 큰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곳은 당시 예술의 중심 합스부르크제국의 수도 빈 그리고 특히 프랑스 파리였다. 파리는 세계 최고의 예술가들이 모이는 핫스폿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는 11월 4일 친구 티투스 보이체호프스키와 바르샤바를 떠나 빈으로 향했다. 하지만 빈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빈 사교계의 대단한 환영도, 음악가로서의 명성도 아닌 고향 폴란드가 당시 러시아의 압제에 반발해 봉기를 일으켰다는 소식이었다. 이른바 ‘11월 봉기(사관학교 혁명)’였다. 

이 두 청년은 심히 동요했다. 친구 보이체호프스키는 자원 입대하기 위해 급히 고국으로 돌아갔다. 쇼팽도 합류하려 했지만 주위 사람들이 그의 허약한 건강 상태를 염려해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빈에 남았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비관하며 무기력에 휩싸였다. 수개월간의 빈 체류 중에 단 두 번 독주회를 했다는 기록만 전해진다. 

그는 빈을 떠나 다시 파리로 향하던 중 1831년 9월, 잠시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체류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가 러시아군에 함락됐고, 압제에 항거하고자 일어난 저항 운동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가 일기장에 적은 내용으로 당시 그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겠다. “오 신이시여.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이 이 설욕을 거절했어요. 모스크바의 죄가 아직 충분하지 않아서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모스크바 사람이어서인가요?”

바로 이때쯤 그는 피아노 연습곡 Op. 10 제12번 ‘혁명’을 작곡했다. 물론 부제가 있는 쇼팽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부제는 그가 붙인 것이 아니라, 후대인이 붙인 것이다. 하지만 당시 상황으로 그리고 곡의 작품 내용으로 비추어 봤을 때 그 누구도 이 작품이 쇼팽과 그의 고국이 처한 상황에서 영감받았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쇼팽은 피아노곡을 200곡 이상 작곡했다. 그중에 격정적인 작품이 이 한 곡만 있지는 않다. 하지만 쇼팽 특유의 섬세함, 민감함 등으로 인해 많은 작품에서 격정적인 감정이 찰나의 순간에 스쳐 지나가는 것에 비해 이처럼 시종일관 거칠고 격정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곡은 드물다. 마치 모차르트 음악에 있어 지배적인 단조 조성의 작품이 드문 것처럼 말이다. 

쇼팽이 ‘혁명’을 지었을 당시가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어서일까. 이 곡은 요즘 들어 또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러시아는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필자가 머물렀던 독일 함부르크에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시내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고 함부르크 시기가 게양되던 시청사를 비롯해 도시를 상징하는 엘브필하모니 그리고 거리 곳곳에 우크라이나 국기가 내걸렸다. 많은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혼신의 노력을 다해 일궜던 고귀한 평화의 가치가 심히 위협받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국외 탈출을 위해 기차역으로몰린 우크라이나 피란민 행렬. 사진 로이터연합
국외 탈출을 위해 기차역으로몰린 우크라이나 피란민 행렬. 사진 로이터연합

한 번은 늦은 저녁 함부르크 중앙역에서 출발지도, 행선지도 표시돼 있지 않은 한 기차가 정차하는 모습을 본 적 있다. 곧이어 정차한 기차에서 많은 이가 하차하기 시작했다. 기차 앞에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이들을 안내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에는 극도의 피곤함, 안도감, 슬픔 그리고 무기력함이 교차하는 듯했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피란민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필자의 마음에 슬픔을 넘어 분노, 격정의 감정이 칼날을 세우고 마음을 찢는 것 같았다. 

필자가 탄 열차가 움직이면서 함부르크 중앙역 옆에 있는 인공 호수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시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낯선 땅에 도착하던 피란민의 모습이 계속 눈에 아른거렸다. 그것은 마치 쇼팽 ‘혁명’의 격정적인 왼손 반주 움직임처럼 마음을 휘저었다. 이 작품의 배경 스토리를 오래전부터 알았음에도 이 곡의 절실한 메시지와 감정은 시간이 지나며 필자의 마음에서 무뎌지고 무뎌졌다. 늘 입으로 외치는 ‘평화’라는 단어도 필자의 입가에 껍데기처럼 남지는 않을지 문득 두려워졌다.

부디 하루빨리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지 않고, 인권이나 도덕의 가치가 다시 빛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plus point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프레데리크 쇼팽
피아노 연습곡 
Op. 10 제12번 ‘혁명’
피아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쇼팽의 피아노 연습곡 Op. 10 제12번 ‘혁명’은 1833년 발표되었다. 그의 동료 프란츠 리스트에게 헌정된 이 작품은 연습곡의 의미인 손가락 테크닉을 연마하는 것을 넘어 일반 음악 작품 못지않은 예술성이 담긴 독창적인 장르라 할 수 있다. 피아노 국제 콩쿠르 및 주요 음대 입시에도 필수 곡으로 지정될 만큼 전공자들에게도 테크닉 및 예술적 난도가 최상이지만 ‘혁명’ ‘이별곡’ 등 음악적인 서정성이 있는 작품도 많아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음반으로 이 작품을 소개한다.


▒ 안종도
연세대 피아노과 교수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안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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