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작품들. 맨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또 다른 빛을 향하여, 나와 마을, 도시 위에서. MarcChagall.net·아트시
샤갈의 작품들. 맨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또 다른 빛을 향하여, 나와 마을, 도시 위에서.
사진 MarcChagall.net·아트시

우리는 끝을 두려워한다. 끝의 환희를 모르기 때문이다. 끝이 환희의 순간이 되려면 마지막이라는 개념에 들어서지 말아야 할 감정이 있다. 아쉬움과 미련 그리고 후회다. 아쉬움이나 미련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포함되면 마지막은 가능한 한 미뤄야 할 것, 오면 안 되는 것, 와도 안 보고 싶은 것이 되고 만다. 끝이 무섭다는 말은 그 순간에 맞닥뜨려야 할 부정적 감정들이 두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끝이라는 순간에 묻어 있는 아쉬움과 미련의 감정을 떼어 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한 가지가 있긴 하다. 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즉 순간순간을 그 자체로 완성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과정이 끝을 향한 과도기이거나 끝을 전제한 불완전한 상태일 때, 끝은 무언가를 입증하고 증명해야 하는 ‘결과’의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끝을 결과로부터, 종착지라는 생각으로부터 해방시키자. 그럼 끝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어진다. 내일을 대하듯 끝을 대할 수 있다. 

마르크 샤갈의 엔딩에는 어둠이 없다. 어둠은 물론이고 어둠의 그림자조차 없다. 사람들에게 샤갈은 사랑의 화가로 기억돼 있다. 샤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끌어안은 연인이 마을 위를 날고 있는 그림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시 위에서’라는 제목의 그림에서 하늘을 나는 연인은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그들의 사랑이 그들을 여기보다 더 좋은 데로 데려다주고 있는 것만 같다. 바닥으로부터 살짝 떨어진 채 공중에 떠 있는 연인이 키스하는 그림도 잘 알려져 있다. ‘생일’이라는 그림이다. 달콤하고 몽환적인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가 평생 동안 캔버스 위에서 찾아 헤맨 것이 다름 아닌 사랑이 알려주는 비밀스러운 감정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샤갈의 마지막 작품은 ‘또 다른 빛을 향하여’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캔버스 위에는 그림 그리는 어느 화가가 있고, 천사가 화가의 머리를 만지고 있다. 화가가 그리는 그림 속에는 어느 다정한 연인이 꽃을 들고 있으며 화가의 등에는 한 쌍의 날개가 돋아나 있다. 그림 그리기를 마치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듯한 모습이다. 그림에서 눈을 떼고 제목을 본다. 또 다른 빛을 향하여. 그림 속 화가는 이곳을 떠나 다른 빛을 향해 훨훨 날아갈 것 같다. 이 그림을 다 그리면 여기와 다른 곳으로 훨훨. 샤갈은 정말로 이 그림을 그린 다음 날 영면에 들었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샤갈이 죽음에 대한 기대마저 품고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찍이 샤갈이 자신의 마지막을 생각해 왔다는 건 나 혼자만의 오해는 아니다. 샤갈은 이 그림을 그리기 20년 전에 동명의 시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 시의 마지막 연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신이시여, 밤이 찾아왔습니다./ 당신은 날이 밝기 전에 제 눈을 감게 할 것이고/ 그리고 저는 하늘과 땅 위에/ 당신을 위한 그림을 다시 한번 그릴 것입니다.” 기다리던 밤이 찾아왔을 때 샤갈은 ‘당신’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눈을 감았다. 샤갈이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던 건 맞지만 나는 그가 쓴 ‘당신’이 신에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신은 그가 살았던 이번 생애 대한 지칭에 더 가깝다. 그의 마지막 그림은 이번 생을 위한 그림, 이번 빛을 위한 그림이다. 그는 이제 다른 빛을 향해 갈 것이다.

이런저런 일상생활을 하다 우연히 샤갈의 그림을 만나는 순간이면 나는 훌쩍 공상에 빠진다. 이 세계를 다 살아낸 그는 어디로 갔을까. 끝이라는 순간을 일말의 절망감도 없이, 다만 환하고 설레는 이미지로 그렸던 그는 자기 그림 속 연인들처럼 사랑의 힘에 몸을 싣고 좋은 곳에서 좋은 곳으로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을 것 같다. 인생은 샤갈처럼. 사랑과 함께 평생을. 

샤갈의 마지막 그림이 보여 주는 환희의 엔딩을 해피엔딩과 헷갈리면 안 된다. 해피엔딩이라는 말은 단순히 엔딩의 한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유종의 미’라는 개념이 자리한다. ‘유종의 미’에는 원인에 응당한 결과가 주어지는 인과응보나 권선징악 같은 개념도 들어가 있다. 한마디로 누적의 개념이다. 모두가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는, 만족하는 아름답고 순한 결말을 가리켜 우리는 해피엔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환희로운 끝, 다가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끝은 과거의 결과도 아니고 미래의 원인도 아니다. 그 자체로 완전한 순간일 뿐이다. 유종의 미가 아니라 오늘의 미가 있을 뿐이다. 행복한 끝이 아니라 행복한 지금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이야말로 끝을 결말과 종착지라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제도 잊고 내일도 잊자. 그것이 샤갈의 끝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진실이다. 평생에 걸쳐 사랑을 믿었던 샤갈의 마지막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지혜다.


plus point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사진 위키피디아
사진 위키피디아

1887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프랑스 화가이자 판화가다. 1910년 파리로 이주했으며 이 시기에 그린 작품으로는 고향의 풍경을 표현한 ‘나와 마을’이 대표적이다. 1914년 러시아로 돌아갔으며 혁명 후에는 미술 행정의 요직을 차지하기도 했으나 1922년 다시 파리에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으로 이동했으나 그리 만족스러운 삶을 살지 못했고 1947년에 프랑스로 돌아왔다. 

샤갈의 작품 주제는 중력의 법칙을 벗어난 영원의 사랑이다. 샤갈에게 인간이나 동물을 비롯해 연인들은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인다. 사랑의 신화를 표현한 이 이미지들은 신선하고 강렬한 색채와 만나 샤갈 예술 세계의 매력을 이룬다.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 평론가상

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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