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 목사고신대 신학과 및 신학대학원,현 하이패밀리 대표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송길원 목사고신대 신학과 및 신학대학원,현 하이패밀리 대표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죽음과 장례는 ‘강렬한 엔딩 신과 명대사’로 기록돼야 합니다. 저라면 죽음의 스승인 이어령 선생님의 장례식에 화환 대신 굴렁쇠를 가져다 놓았을 겁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콘셉트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라고 쓰인 작은 유리병에 흙을 담아 조문객들에게 선물로 나눠줬을 거예요.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는 말씀을 기억하면서요.”

굴렁쇠, 흙, 메멘토 모리, 선물이라는 단어로 이어령의 생애가 선명하게 요약된 장례가 눈앞에 그려졌다. 장례는 엔딩(ENDing)이 아닌 앤딩(ANDing)이라고 말하는 엔딩 플래너이자 임종 감독인 송길원 목사를 만났다. 양평 청란교회 담임목사인 그는 수목장 ‘소풍 가는 날’과 어린이 무료 묘원인 ‘안데르센 공원 묘원’을 직접 운영하는 묘지 지기이기도 하다.


목사가 어쩐 일로 임종 감독으로 나섰나.
“어머니가 한때 염장이셨다. ‘어머니의 염습’이 나의 버킷리스트였다. 목사로서는 오랫동안 가정 행복 사역을 했는데, 가정이 행복하려면 장례 문화부터 바꾸는 게 시급했다.”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나.
“최근 들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급히 화장하면서 염습이 생략되는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어머니께 물어봤다. ‘어머니, 염습은 왜 하는 거예요?’”

왜 하는 건가? 염습.
“어머니 말씀이 이랬다. ‘야야, 시골에 살 때는 겨울에 돌아가시면, 아재도 와야 하고 당숙도 와야 하고⋯, 5일, 7일이 훌쩍인데, 시신을 아랫목에 두고 군불 때면 썩고 물 흐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해서 구멍을 다 막았지. 요새같이 냉장 시설 잘돼 있으면, 사실 염습을 왜 해?’”

그 질문을 아무도 안 한 건가.
“그렇다. 다들 하니 그냥 하나 보다 했던 거다. ‘왜?’라는 질문이 결국 인문학이잖나. 그래서 또 물었다. ‘어머니, 묶는 건 또 왜 묶어요? 죄수처럼.’ ‘산속에 매장할 때 상여꾼들이 가파른 길 가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곤 했어. 시신까지 관 속에서 뒤뚱거리면 상여꾼이 힘드니까 묶었지. 지금은 차 타고 가서 화장하는데 왜 묶어? 다 헛짓거리야.’ 어머니는 장례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의식은 없었지만, 지금껏 그대로 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건 알고 계셨다. 그래서 애들 장가보낼 때도 ‘니들 스몰 웨딩 해라’ 그러셨다. 장례도 가족장으로 아름다워지려면, 스몰 장례식이 돼야 하는 거고.”

송길원은 죽음과 장례, 임종 심리를 깊이 공부해서 ‘죽음의 탄생’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책에는 ‘장례를 망가뜨린 오적’이 나온다. 그는 장례 오적(五敵)으로 ① 수의 ② 염습과 결박 ③ 완장과 굴건 ④ 국화꽃과 조화 ⑤ 이 모든 것을 모르는 ‘무지’를 꼽는다.

단적으로 과거엔 고인이 비단옷을 입고, 유족이 부모를 잘 모시지 못한 죄인이란 의미로 삼베옷을 입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고인에게 죄수복인 삼베옷을 입힌다. 원가가 몇 만원에 불과한 중국산 삼베를 수백만원에, 바가지까지 쓰며.

염습 또한 산 자들의 혐오와 불편을 막기 위함이라, 요즘 같은 장례 문화에서는 간소화돼야 한다. 미라 형태로 싸매는 복잡한 염습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 가벼운 위생 처리 후 고인을 편안히 숙면 상태로 관에 모시면 된다고.

완장이나 리본도 조선총독부 의례준칙에 따른 것이며, 국화꽃 또한 일본 황실의 꽃이다. 우리 전통 장례는 꽃보다 만장, 병풍 등을 사용했다. 꽃을 쓰려거든 생명 없는 조화나 절화 대신 화분이나 고인이 생전 좋아했던 꽃을 쓰면 된다고. 모두 정신이 번쩍 드는 제안이다.


가정 행복 NGO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가정 행복 NGO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기존의 장례 방식이 고정된 예법이 아니라면, 지금부터 새롭게 만들면 되나. 혹시 좋은 모델이 있나.
“인류의 바이블(경전)에 있다. ‘성경’의 창세기는 마지막 48, 49, 50장을 장례식으로 끝맺고 있다. 야곱은 숨을 거두기 전에 자식들을 불러 한 명씩 그에게 맞는 축복을 한다. 그리고 ‘어디에 어떻게 장사 지내라’고 꼼꼼하게 사전장례의향서를 불러준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장사를 지낸다. 다음은 용서와 화해가 남는다. 야곱의 가정사는 ‘가정폭력’의 비극이 있다. 형들이 요셉을 질투해서 이집트에 팔아넘긴 사건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동생의 복수가 두려운 형들을, 요셉이 안심시킨다. ‘당신들 자녀까지 내가 다 보살피겠다’고. 창세기 마지막 문장은 ‘요셉도 죽고 입관하였더라’로 끝난다. ‘끄트머리’라는 말이 있다. 끝이 이렇게 좋은 머리가 되는 거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장례식에서 보고 들은 체험이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맞다. 지인이 초등학교 방과 후 프로그램에서 상여에 매다는 꼭두인형을 만드는 종이접기 수업을 했다. 아이들이 적어낸 소감문이 파격적이었다. ‘친구 괴롭히지 않을래요, 공부 열심히 해서 부모님께 효도할래요’였다. 죽음이 삶에 스며들면, 삶이 우울해지는 게 아니라 행복 지수가 올라간다. 사람을 존중하게 되고 험한 소리를 안 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 고착된 병원 중심 장례 문화에서 좋은 ‘죽음 수업’이 가능할까.
“현재로선 ‘웃픈’ 현실이다.”

장례업이 비즈니스가 됐다고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비용에 거품이 너무 많다. 제단 장식, 빈소 사용료, 접객비 등등 1500만~2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이름난 대형 병원은 더하다. 장례 트랙에 들어가면 유족들은 조문객 접대하느라 혼이 빠져서 고인을 애도할 시간이 없다. 보는 눈을 의식해서 화환으로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고, 부고를 뿌려 조의금을 받는다. 큰일에 품앗이하는 그런 상부상조 문화는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점차 ‘선(先)장례 후(後)부고’가 정착돼야 한다고 얘기한다. 현장에는 초대받은 가까운 친지들만 와서 깊이 애도하고, 부고는 그 후에 올리는 거다. 지인들은 발인 날짜에 쫓기지 않고 십시일반 조의금과 위로를 보태면 된다. 디지털 조문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지금처럼 현장에서 화환과 방문자 수로 장례식을 정량 평가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냐고, 그런 장례 끝엔 유족들이 장례 수익과 유산을 가지고 크게 갈등을 겪는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가족장 위주의 ‘작은 장례식’으로 크기와 의미를 전환해야 한다. 병원에서만 장례식 하라는 법 있나? 장례식이 병원으로 간 건 30년도 안 됐다. 아파트와 공동주택이 일반화하면서 고층에서 관을 계단으로 내리는 게 어려워졌다. 엘리베이터도 안 되니 곤돌라로 관 내리다, 빨래 걷던 이웃이 혼비백산하는 일이 생긴 거다.”

임종 감독이 돼서 치른 장례는 어땠나?
“고인의 시신을 교회 정원에 마련된 안치실에 모셨다. 장례식은 교회 공동 공간에서 했다. 수의도, 상복도 평상복으로 했다. 관은 종이로, 유골함은 한지로 만들었다. 총비용이 430만원 정도 들었다. 장례의 핵심은 고인의 ‘이야기’였다. 콘셉트를 ‘함박웃음’으로 잡고 웃음이 넘치는 사진들로 메모리얼 테이블을 채웠다. 꽃 대신 효자손 꽂고 손주들 편지와 고인의 신발 등 일상 유품을 전시했다. 벽시계는 고인이 돌아가신 시각에 맞춰놓았다. 산 자들의 시간에 쫓기지 않았다. 눈물도 넘치고 웃음도 넘쳤다.”

병원 장례식에서 벗어나려면 망자의 몸을 모실 공간이 필요하겠다.
“요즘 김치냉장고 와인냉장고 다 있잖나. 좋은 장례를 위해선 시신 냉장고가 필요하다. 나는 시신 저온 냉장 장치를 ‘레스텔(Restel)’이라고 부른다. 공공기관에서 이 냉장 장치를 구비해서 빌려주면 교회나 성당, 절, 마을회관 등의 공간에서 가족 장례를 치를 수 있다. 레스텔이 있으면 ‘고인의 존엄성’이 보장된다. 레스텔로 가족장 치르면 부패 염려가 없으니 전문 염습도 따로 필요 없다. 알코올로 몸 닦고 스프레이로 물 뿌려서 머리 빗겨드리고, 흉하지 않게 살짝 분만 발라 드리면 표정이 평온해진다. 관포로 덮고 있다 ‘뷰잉’이라는 절차로, 가족과 대면 인사해야 한다. 그게 고인이 주인공인 장례, 웃으며 떠날 수 있는 작별이다.”

점점 더 고인과의 대면 장례로 가는 방향이 맞겠군.
“그렇다. 전 세계에서 비대면 장례는 일본과 우리밖에 없다. 시신 없는 장사는 전사자 유고 시밖에 없다. 시신을 싣고 화장터에 전부 몰려갈 필요도 없다. 먼지가 되는 과정을 지키는 건 고된 장례 노동이고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여건이 되면 장례 전문가가 맡아서 해주는 ‘선화장 후발인’을 권한다.”

부모님 장례 계획은 세워놓았나.
“돌아가시기 전에 ‘엔딩 파티’를 열어, 형제자매, 지인들과 정겨웠던 이야기 마음껏 나누게 해드리려고 한다. ‘천국 바캉스’라고, 콘셉트도 잡아놨다. 노래는 아버지를 위해서는 평소 흥얼거리시던 ‘섬마을 선생님’을 틀어드리고, 어머니를 위해서는 자장가를 준비했다. ‘자장자장 우리 엄마, 잘도 잔다, 우리 엄마⋯.’ 지인들에겐 장례식 사진과 두 분의 생애를 담은 ‘엔딩 노트’를 공유할 계획이다. 선장례 후부고로 폐 끼치지 않고, 조의금이 들어온다면 ‘독거노인’을 위해서 쓰려고 한다. 장담컨대 장례만 잘 치러도 행복 지수가 올라간다. 효도하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장례를 잘 못 치르면 분노가 쌓이고 사회적 비용이 올라간다.”

그야말로 좋은 장례가 우리의 장래를 보여주는 것 같다.
“힐링캠프가 따로 없다. 거짓되게 살지 말아야겠다. 어머니보다 더 잘 살아야겠다. 우리 아버지 멋있었다. 서로 사랑하고 끌어안는 계기가 되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 살아계실 때 죽음과 장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조심스럽기도 하다.
“관심사라 마다하지 않으실 거다. 나는 어머니 모시고 대학로에서 ‘염쟁이 유씨’ 연극도 보고 묻힐 곳도 함께 보러 간다. ‘종활(임종 활동)’이라고 한다. 수의는 뭐 입으실래요? 평상복은 어때요? 여쭸더니 어머니가 웃으며 그러셨다. ‘역시, 우리 장남이 최고다!’”

보통 사람의 장례식에도 추모사가 꼭 필요할까?
“물론이다. 모든 영화는 라스트신과 명대사로 기억된다. 인간의 마지막도 그렇다. 임종 감독으로 내가 추적하는 것도 바로 한인간이 남긴 명대사다. 우리는 그걸 추모사로 들어야 한다. 반목이 컸던 가족도 아이가 읽는 추모의 편지 한 장에, 서로 마음을 돌이켜서 부둥켜안는다. ‘미안하다’고 혹은 ‘고마웠다’고. 짧아도 그 한마디가 모두를 울린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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