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일(현지시각) 마스터스 골프에 출전한 임성재가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파72)에서열린 대회 3라운드 4번홀에서벙커샷을 날리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4월 9일(현지시각) 마스터스 골프에 출전한 임성재가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파72)에서열린 대회 3라운드 4번홀에서벙커샷을 날리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약하는 ‘아이언 맨’ 임성재(24)는 필드에 서면 좀처럼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다.

아이언 맨이란 별명은 PGA투어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대회(연 35개 안팎)를 소화하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미국 언론이 붙인 별명이다. 아이언샷의 정확성이 뛰어나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진지함이 몸에 밴 임성재가 골프장에서 파안대소하며 즐겁게 지낸 순간이 있었다. 4월 7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파3 코스에서 열린 마스터스 개막 이벤트 파3 콘테스트는 임성재 가족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는 전 세계 골프 선수 누구나 서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다. 임성재는 2022년 마스터스에서 첫날 단독 선두로 출발해 마지막 날 공동 8위로 마치며 톱 10에 올랐다.

임성재는 2019년 아시아 선수 최초 PGA투어 신인왕, 2019~2021년 3년 연속 페덱스 순위 30위 이내만 출전하는 시즌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 진출, 2020년 처음 출전한 마스터스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며 한국 남자골프의 대표적 스타로 성장했다. 임성재는 2020년과 2021년 마스터스에 출전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마스터스의 명물이라고 불리는 파3 콘테스트가 열리지 못했다. 파3 콘테스트는 마스터스 역대 챔피언과 출전 선수들이 자신의 가족과 지인을 캐디 삼아 함께 출전하는 명물 이벤트 대회다. 

임성재의 아버지 임지택(56)씨와 어머니 김미씨는 아들이 마스터스 무대를 밟은 지 3년 만에 마스터스의 독특한 항공점프 슈트 스타일의 캐디복을 입었다. 파3 콘테스트에선 선수 대신 캐디가 티샷하거나 퍼트를 하는 ‘대타 찬스’가 있다.

아들의 골프백을 메고 캐디로 나섰던 임지택씨는 9번 홀(119야드)에서 아들 대신 골프클럽을 잡았다. 아버지 임씨는 “골프채를 잡아본 게 14년 전이라서 잘 맞을지 자신이 없었다. 지난주 스크린 골프에서 쳐보니 5번 아이언으로 110야드밖에 나가지 않아 걱정했다”고 엄살을 부렸는데, 티샷한 공은 홀 1.5m에 붙었다. 임성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면서 동료 선수와 손바닥을 마주치며 즐거워했다. 그린 주변을 가득 메운 팬들의 함성도 쏟아졌다. 임성재 다음 조로 티샷을 기다리던 스코티 셰플러(올해 마스터스 우승자)와 샘 번스도 달려와 축하했다. 임씨는 “맞는 순간 손에 짜릿함이 느껴졌다. 아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임성재는 “파3 콘테스트에 참가하고 싶다는 아버지의 꿈을 이뤄 드리게 돼 효자가 된 것 같다”고 기뻐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임성재(가운데) 선수와 임 선수를 키운 ‘골프 대디’ 임지택(왼쪽)씨, 임 선수의 어머니 김미(오른쪽)씨. 사진 심원섭 제이알 사우스베이 골프 대표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임성재(가운데) 선수와 임 선수를 키운 ‘골프 대디’ 임지택(왼쪽)씨, 임 선수의 어머니 김미(오른쪽)씨. 사진 심원석 제이알 사우스베이 골프 대표

좋은 짝 만나면 얼른 자리 내줄 생각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에 있던 아버지 임지택씨와 국제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국의 골프 대디 문화는 어디까지 왔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이들 부자는 미국 애틀랜타에 집을 얻어 같이 살고 대회에도 늘 붙어 다니지만, 빈틈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살갑다. 이전 골프 대디 문화와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골프 대디는 한국 골프의 독특한 문화 가운데 하나다. 골프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자신을 따라 골프를 시작한 자식의 성공을 위해 생업을 포기하다시피 하며 기사 겸 로드 매니저 역할을 하는 헌신과 이에 보답하려는 자식들의 노력은 세계 골프의 불모지였던 한국 골프가 단기간에 세계 정상권으로 성장한 비결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지나친 간섭과 성적에 부담을 주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한국 골퍼들이 일찌감치 골프에 싫증을 느끼는 번아웃(탈진) 증후군의 원인으로도 지적된다. 

임성재의 골프는 이렇게 출발했다. 아버지 임지택씨는 건설 회사에 다니던 30대 때 골프를 시작했다. “거실에 골프채를 놓고 다녔다. 그때 한 살인지 두 살인지 됐을 때 걸음마를 배우던 성재가 내 골프클럽을 집어서 휘두르는 모습이 기억난다. 그래서 대형마트에서 플라스틱 골프채를 사줬다”고 했다. 임성재가 정식으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건 여섯 살 때다. 아홉 살 때 첫 대회에 나가 77타를 기록했다. 그전엔 90타를 깬 적이 없었다. 다른 학부모들은 이런 임성재를 두고 “정말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싸움닭 기질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 임씨는 “평소엔 내성적이고 조용하며 차분한 스타일인데 경기에 들어가면 성격이 확 바뀐다”며 “승리욕이 대단해서 어릴 때부터 경기에서 마음에 드는 샷이 안 나오면 흐르는 코피를 틀어막고 연습했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울거나 화를 냈다. 그런 기를 꺾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결과적으로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성재 자신도 “나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고 골프 외에 다른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임성재는 제주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다 중·고등학교는 천안에서 다닌 사연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하루는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들 성적이 떨어져 이렇게 놓아두면 앞으로 큰일 난다는 이야기였다. 아이가 혹시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는 이야기도 했다. 임성재 아버지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아이가 골프를 좋아하는 것뿐이지 머리는 좋다. 억지로 공부시키는 것보다 성재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면 아이도 행복하고 우리도 행복하다.” 임성재가 좋아하는 골프에 흠뻑 젖어서 살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부모의 이해가 있었다. 

아들과 아버지가 의기투합하는 분야가 또 있다. 데이터 골프다. 임지택씨는 “데뷔 초기부터 저스틴 토머스 톱 랭커들의 과거를 추적해서 성재와 비교한다. 프로 첫해 성적, 무명 시절에 어떻게 지냈는지 이력을 살펴보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톱 랭커가 됐는지 알 수 있다. 횡축을 시간, 종축을 성적으로 봤을 때 톱 랭커들의 그래프는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런 걸 중간 점검하며 아들에게 ‘한번 잘 해보자’라고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는다”고 했다. 

임성재의 강점은 정확한 드라이버 샷과 롱 아이언 샷이다. 특히 4·5번 아이언을 잘 다뤄 긴 파3 홀에서 버디 확률이 높다. 약점은 웨지 샷으로 짧은 거리 컨트롤 샷이 최정상급 선수들에 비해 떨어진다.

PGA투어 홈페이지엔 선수들의 통계가 놀라우리만큼 상세하게 정리돼 있다. 임성재는 그 통계를 연구하면서 매년 약점을 보완해나간다. 그린 주변 10야드 이내의 스크램블링(온 그린을 하지 못했을 때 파나 파보다 좋은 스코어를 작성하는 것) 능력이 최하위권이었지만 체계적인 훈련으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임지택씨는 “아들을 오래 품어두기보다 상금 관리나 성적 관리에 도움을 주고 본인이 맘에 들어 하는 짝이 생기면 빨리 결혼시키고 우리는 빠질 생각”이라고 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