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지의 제왕’ 장면들. IMDB
영화 ‘반지의 제왕’ 장면들. 사진 IMDB

마법의 반지가 있다. 반지만 있으면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 투명 인간도 될 수 있다.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고 갖고 싶은 걸 다 가질 수 있다. 훔쳐볼 수도 있고 비밀을 캐낼 수도 있다. 빼앗을 수도 있고 때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 다만 반지의 주인은 따로 있다. “대신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가 반지를 주며 귀에 속삭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프로도는 그런 능력이 숨겨진 반지를 떠맡게 된다. 그의 삼촌 빌보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확히는 알지 못했지만, 손가락에 반지를 껴보고 싶은 욕망을 누른 채 주머니에 넣고만 다녔다. 그 덕에 반지를 얻었던 젊은 날의 모험을 추억하며 평생 유쾌하고 평온하게 살았다. 하지만 111번째 생일잔치를 마친 그는 조카 프로도에게 반지를 남기고 훌쩍 집을 떠났다. 더 이상 반지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고 느꼈던 것이다.

반지에는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엄청난 어둠의 힘이 깃들어 있다. 반지를 만든 암흑의 군주는 마법사 사루만을 시켜 사악한 세력들을 결집시키고 있었다. 오래전 잃어버린 절대 반지만 되찾으면 저항 세력은 굴복하고 악의 세계화는 완성된다. 이 모든 걸 꿰뚫어 본 선의 마법사 간달프는 프로도를 급히 피신시킨다.

프로도를 따라나선 세 명의 친구들, 샘과 메리아독과 피핀은 얼마나 험난한 여정이 될지도 모르고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신났다. 그러나 곧바로 추적자들의 공격을 받는다. 반지가 존재하는 한 악의 공격을 피할 수 없고 세계는 언젠가 무너질 터였다. 반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요정과 마법사, 난쟁이족과 인간의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연다.

착한 요정도, 선한 마법사도, 충성스러운 기사와 백성을 사랑하는 왕도 ‘저 반지를 가질 수만 있다면!’ 하고 침을 삼킨다. 악을 물리치는 데 그 반지를 이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욕망을 정당화시켜 보기도 한다. 반지의 노예가 될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꿈틀거리는 검은 유혹을 이겨내는 게 쉽지 않다.

반지를 파괴하기로 한다. 도끼로 내려쳐도 깨지지 않는 반지는 암흑 군주가 지배하는 땅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화산 불로만 녹여 없앨 수 있다. 프로도가 파괴할 책임을 맡는다. 반지를 빼앗으러 올 적들에게서 프로도를 지킬 기사들이 자원한다. 프로도와 세 명의 친구들을 포함, 아홉 명의 반지 원정대가 마침내 모르도르의 화산을 향해 출발한다.

적들은 사방에서 출몰하고 발밑에서는 죽음이 뱀처럼 혀를 날름거린다. 가장 믿고 의지했던 간달프가 괴물과 싸우다 천애 절벽으로 떨어져 생사를 알 수 없게 된다. 믿음직했던 보로미르는 참았던 욕망을 기어이 터뜨리며 반지를 내놓으라고 달려든다. 프로도는 절체절명의 순간, 반지를 사용해 모습을 감추고 도망친다.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는 곧바로 암흑 군주에게 위치를 추적당한다. 프로도와 원정대는 훨씬 더 큰 위험에 빠진다. 들이닥친 사루만의 군대는 프로도를 찾지 못하고 메리아독과 피핀을 대신 잡아간다. 아르곤과 레골레르와 김리는 그들을 추적한다. 샘은 배신자와 추적자들을 피해 고군분투하던 프로도를 마침내 찾아내고 그와 동행한다. 어둠 속에서는 살금살금, 작고 앙큼한 골룸이 그들을 따라간다. 여기까지가 1편의 이야기다.

영화 ‘반지의 제왕’은 J.R.R. 톨킨이 1954년에 발표한 동명의 장편소설이 원작이다. 피터 잭슨 감독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1년에 한 편씩, 세 편으로 나누어 발표했다. 원작을 해치는 영화가 많지만 ‘반지의 제왕’은 독자의 상상력을 뛰어넘은 풍광과 전쟁의 스펙터클한 장면들, 종족의 특징을 강조한 각각의 모습은 원작 소설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무엇보다 앤디 서키스가 뛰어난 모션 캡처 연기로 완성한 골룸은 영화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골룸은 친구를 죽이고 반지를 빼앗은 뒤 나쁜 일만 하다가 고향에서 추방당했다. 어두운 동굴에 숨어 살면서도 반짝이는 반지만 바라보면 행복했다. 그사이 수백 년이 흘렀지만, 반지의 마법 덕에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다. 그러나 몸과 마음은 말라비틀어지고 쪼그라들었다. 그런데도 골룸은 여전히 중얼거린다. “내 보물, 내 소중한 보물. 그건 내 거야!”


“악은 늘 우리 마음속에 산다” 

프로도는 탐욕스러운 사람들에게서, 골룸에게서 그리고 악의 마왕에게서 반지를 지켜내야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작고 연약한 프로도일까? 왜 근육질의 용사나 칼 잘 쓰는 기사, 고귀한 혈통의 왕족이나 신비한 힘을 가진 요정과 마법사가 아닐까? 왜 어린아이처럼 작고 나이보다 어려 보이며 아이들처럼 순수한 호빗족이 세상의 평화를 지켜내는 엄청난 임무를 맡게 된 것일까?

악은 힘이나 지식으로 이길 수 있는 외부의 적이 아니다. 악은 늘 우리 마음속에 산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성경’ 구절이나 인간의 정신이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다시 어린아이로’ 탈바꿈해야 진정한 삶의 주인이자 인생의 창조자가 될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골룸으로 사느냐, 프로도로 사느냐의 문제는 쉽지 않다. 세상을 구해도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신만을 위한 길, 넓고 높고 편한 길을 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다. 선악의 구분이 모호해져서 눈앞에 있는 마법의 반지를 사용하지 않고 버린다면 바보가 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반지의 제왕’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왕관이나 황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거대한 악과 목숨 걸고 싸운 보통 사람들, 프로도와 샘, 메리아독과 피핀의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온갖 어려움을 참아내며 든든한 길동무가 되어준 샘에게 “우리는 뭘 믿고 의지해야 하는 거지?” 하고 프로도가 묻는 장면이 있다. 그때 샘은 낮고 작고 연약하지만 절대반지보다 단단하고 강한 신념을 망설임 없이 이야기한다. “이 세상에 선(善)이 있다는 믿음이죠. 그건 싸워서 지킬 만큼 귀한 거예요.” 골룸의 길과 프로도의 길이 나뉘는 교차점이다. 정말 듬직하고 매우 예쁜 샘이다.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김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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