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스코티 셰플러(오른쪽)가 전년도 우승자 마쓰야마 히데키(일본)와 그린 재킷 수여식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PGA투어
올해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스코티 셰플러(오른쪽)가 전년도 우승자 마쓰야마 히데키(일본)와 그린 재킷 수여식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PGA투어

혜성처럼 나타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남자 골프 세계 1위 스코티 셰플러(26·미국)는 2월 14일(이하 현지시각) 피닉스 오픈(총상금 820만달러)에서 연장전 끝에 패트릭 캔틀레이(미국)를 제치고 첫 정상에 오르며 세계 15위에서 10위로 올라선 데 이어 3월 7일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총상금 1200만달러)에서 2위 그룹을 1타 차이로 제치고 2승째를 거두며 세계 5위로 도약했다. 그리고 3월 29일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델 테크놀로지스 매치 플레이(총상금 1200만달러) 결승에서 케빈 키스너(미국)를 4홀 차로 이기며 정상에 올라 세계 1위에 등극했다. 셰플러는 생애 첫 우승을 이룬 시즌에 메이저 대회를 한 번도 치르지 않고 세계 랭킹 1위가 된 첫 선수가 됐다. 그리고 마침내 4월 11일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총상금 1500만달러)에서 2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를 3타 차로 제치고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그린 재킷을 입었다. 지난 57일간 여섯 대회에 출전해 네 번 우승한 셰플러가 벌어들인 상금만 887만2200달러(약 110억원)에 이른다. 

이 혜성 같은 사나이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PGA투어를 통해 셰플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나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로열 오크스 컨트리클럽을 다니면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긴 바지와 깃 셔츠를 즐겨 입었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놀리곤 했다. 하지만 나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로골퍼가 되겠다는 꿈을 지닌 나는 연습 때도 투어 프로처럼 하고 싶었다. 농구와 라크로스 등 다양한 운동을 즐겼지만 늘 PGA투어에서 경기하는 날을 꿈꿨다.” 

셰플러는 세 여자 형제가 있고 어머니가 바깥에서 일하고 아버지가 가사를 맡아 하는 가정에서 자랐다.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 밑에서 셰플러는 마음껏 하고 싶은 운동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우리 4남매를 정말 훌륭하게 키워주셨다. 우리는 모두 골프를 치며 자랐다. 그들 모두 나에게 건네는 응원과 도움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나는 항상 승리욕이 넘쳤고 도전적인 성격이었다. 경쟁은 항상 재미있었고, 대회를 우승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지만 순위는 크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다. 대회 참가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델 테크놀로지스 매치 플레이에서 우승한 뒤 아내와 함께한 스코티 셰플러. 사진 PGA투어
델 테크놀로지스 매치 플레이에서 우승한 뒤 아내와 함께한 스코티 셰플러. 사진 PGA투어

1997년 우즈 영상 보며 꿈 키워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리는 마스터스는 ‘꿈의 무대’로 불린다. 세계 랭킹과 마스터스 역대 챔피언 등 일정 자격을 갖춘 90명 안팎의 골퍼만 초청을 받는다. 여러 골프장을 돌아가면서 경기하는 다른 메이저 대회와 달리 1934년 첫 대회 이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만 열린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은 매년 마스터스가 열리는 4월이면 진달래, 목련 등 다양한 꽃들로 꽃 대궐이 되고 융단처럼 깨끗하게 관리된 페어웨이,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는 빠르고 굴곡진 유리알 그린으로 유명하다. 대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그린 재킷, 전년도 챔피언이 역대 챔피언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는 ‘챔피언스 디너’,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과 역대 챔피언들이 자신의 지인을 캐디로 초청해 함께 경기하는 ‘파3콘테스트’ 등 다양한 명물로 세계 최고의 대회로 자리를 굳혔다. 그리고 역대 챔피언에게는 평생 출전권이 주어진다. 그래서 세상에는 마스터스에서 뛰어 본 골퍼와 그러지 못한 골퍼로 나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우승의 감격은 어땠을까? 

“나는 어릴 때 항상 마스터스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꿈꾸곤 했다. 사실 처음 초대장을 이메일로 받았을 때 눈물이 났다. 대학 시절 이곳에서 경기를 할 수 있었고, 항상 이 코스를 사랑했다. 이 코스를 참 좋아한다. 사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이 경기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종 라운드를 3타 차 선두로 경기를 시작했는데 앞으로 그보다 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순 없었다. 그래서 기회를 날려버리기 싫었다.”

셰플러는 경기 당일 아침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고 기자회견에서 털어놓았었다. 얼마나 중압감이 컸기에 그랬을까? 

“최종 라운드 아침에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내 메레디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준비된 건지 잘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 스스로 준비되지 않은 것 같다. 조금 부담스럽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녀는 ‘왜 스스로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인생에 대해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실 것이고 신이 나를 이끌 것이다. 만약 오늘이 나의 날이면, 그냥 나의 날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82타를 치면 그것 또한 신의 뜻이다. 나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 자신이 곧 골프 점수는 아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셰플러의 골프 인생에 전환점이 될 마스터스 우승에 이르기까지 어떤 전환점이 있었을까? 

미국 텍사스대 골프팀에서 활약했던 셰플러는 2019년 미 PGA 2부 투어에서 2승을 올렸고, PGA투어에 진출해 2020년 신인왕에 올랐다. 이후 2020년 PGA챔피언십 공동 4위, 2021년 마스터스 공동 18위, 2021년 US오픈 공동 7위, 2021년 디오픈 공동 8위 등 메이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드라이버와 아이언 샷 능력과 비교해 마무리 퍼팅이 부족해 좀처럼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PGA투어 성경 공부 모임에서 베테랑 캐디 테드 스콧을 만났다. 스콧은 버바 왓슨과 2012·2014년 두 차례 마스터스 우승을 일군 경험이 있다. 분위기를 잘 읽고 노련하며 실없는 농담으로 긴장을 풀어준다. 그와 함께하면서 집중력을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퍼팅에서 템포를 조절하는 능력을 배우게 됐다. 틈만 나면 25센트 동전을 퍼터 헤드 뒷면의 파인 부분에 올려놓고 연습한다. 퍼팅 템포가 흐트러지면 동전은 여지없이 떨어진다. 이런 연습을 거쳐 어떤 순간에도 나만의 템포를 유지하면서 퍼팅을 하게 됐다.” 

올해 마스터스에는 타이거 우즈가 지난해 2월 목숨을 잃을 뻔한 교통사고 이후 처음으로 정규 투어 대회에 나와 72홀을 완주했다. 수많은 갤러리가 그를 따라다니며 응원했고 “땡큐! 타이거”를 외쳤다. 성적은 컷을 통과한 선수 중 꼴찌에 가까웠지만, 우즈는 불굴의 인간 의지와 골프 사랑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셰플러도 우즈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우즈가 골프계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PGA투어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가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즐겨보며 꿈을 키웠다. 1997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하이라이트로 본 기억이 난다. 그는 큰 차이로 앞서가면서도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영상 속 우즈의 모습이 항상 나 자신에게 다짐하는 모습이다. 언제나 타이거에게 고맙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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