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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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미국 버몬트주에 있는 베닝턴칼리지의 재학생과 졸업생들을 상대로 지속적인 추적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다. 심리학자 테오도르 뉴컴과 그의 동료들은 베닝턴칼리지를 다니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생활 태도와 정치적 성향이 졸업 후 평생을 거치면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었다. 이 연구 프로젝트는 1930년대에 시작해서 50년 이상 이어졌다. 베닝턴칼리지는 1932년에 설립됐으며, 정치적 태도가 다소 진보적이기로 이름이 높은 여자 대학이라고 한다. 설립 후 4년이 지난 후에도 학생과 교수의 수가 300명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대학이다. 

교수들 대부분이 캠퍼스 안에서 생활했고, 학생 기숙사에서 생활한 교수들도 제법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재학생들이 교수 혹은 학생 상호 간에 긴밀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연구팀은 매년 학년이 올라갈 때 학생들을 인터뷰했다. 대부분의 학생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정치 및 사회적 이슈에서 보다 진보적인 쪽으로 태도가 바뀌었다. 연구팀은 25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당시 인터뷰했던 학생 중에 94%의 소재를 확인하고 그들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인터뷰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러한 경향성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아니, 대학생 시절의 태도와 수십 년이 지난 이후 태도를 어떻게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한단 말인가. 연구팀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닝턴칼리지 졸업생들과 그들의 자매들을 조사해 비교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물론 그 자매들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거나 다른 대학을 나온 여성들이었다. 

연구 결과 반세기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베닝턴칼리지 졸업생들은 그 대학을 나오지 않은 자신의 자매나 친구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인 태도와 가치를 표현하고 있더라는 이야기다. 이후 다시 25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그러니까 50년 뒤에도 그런 성향에는 변함이 없더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베닝턴칼리지가 그들에게 그런 태도를 가지도록 세뇌라도 했단 말인가. 그건 아니다. 연구팀은 그들이 대학에 입학해 새로운 태도를 갖게 되자, 그 태도와 양립할 수 있는 경력과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게 됐다고 추론했다. 쉽게 말하면, 주변의 진보적인 환경과 분위기가 자연스레 그들을 그런 방향으로 변하게 하는 ‘사회적인 압력’으로 작용했고, 그렇게 변했을 때 ‘사회적인 지지’를 받게 되면서 자신들의 태도와 행동이 더욱 확고해진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사회적 관계와 환경이 어떤 사람의 태도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동물행동학자인 콘라트 로렌츠가 이런 실험을 했다.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진 고전적인 실험이다. 청둥오리가 스스로 부화시킨 집단의 새끼들은 태어난 후에 자신의 어미를 따라다닌다. 그런데 부화기에서 태어나 장화를 신고 꽥꽥 소리를 지르는 로렌츠를 처음으로 본 오리 새끼들은, 로렌츠를 자신들의 어미인 줄 알고 졸졸 따라다닌다. 이렇게 어린 동물이 태어난 후 생애 초기 특정 시기에 어떤 대상에게 노출되면, 그 대상에게 애착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을 로렌츠는 ‘각인(imprinting)’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특정한 시기를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라고 부른다. 다만 이 결정적 시기 이전이나 이후에는 아무리 특정 대상에 노출돼도 애착은 생기지 않는다. 로렌츠의 각인이나 결정적 시기 개념을 인간에게 그대로 확대 적용하는 것이 옳은지 하는 문제를 놓고 많은 학자가 논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닝턴칼리지의 실험과 마찬가지로 로렌츠의 실험 역시 타고난 유전적 소인 이외에 후천적인 환경에 따라서 인간이나 동물의 행동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속된 말로 ‘어떤 물에서 노는가‘에 따라서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와 그가 키운 청둥오리. 사진 페이머스 사이컬로지스트(famous psychologist)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와 그가 키운 청둥오리. 사진 페이머스 사이컬로지스트(famous psychologist)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교육 이뤄져야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내 딸이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의 일이다. 학부모 중에 한 사람이 방과 후에 논술 과외를 받기 위해 자신의 아이와 내 딸을 포함해 함께 과외 팀을 짜자는 연락을 해왔다. 지도교사는 유명한 논술 강사로 이번에 팀에 합류하지 못하면 다음 기회는 없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아내는 일단 그러라고 수락했지만 나는 내심 찜찜했다. 아무리 유명 강사라고 해도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애들을 가르치는지도 모른 채 애를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 학부모에게 커리큘럼을 좀 보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강사의 커리큘럼에 제시된 책은 조선 시대 왕들의 독살 사건을 다룬 이야기, 1980년대 대학 운동권 학생의 이념 교육 때 사용하던 빈부 격차, 노동 소외 등을 다룬 소설, 동성애 내용이 담긴 동화 등이었다. 

나는 경악했고 즉각 논술 과외 팀에 합류하는 것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 학부모는 반발했다. 이미 검증이 끝난 유명 강사인 데다가, 얼마나 힘들게 만든 팀인데 이렇게 중간에 흐지부지 일을 파투(破鬪) 낼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농담이 떠올랐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의 손주와 함께 공중목욕탕에 간 할아버지가 탕 속에 몸을 담그며 한마디했다. “아, 시원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손주가 텀벙 욕조로 뛰어들었다가 식겁했다. 욕조를 뛰쳐나가며 손주가 할아버지에게 따졌다. “앗! 뜨거워, 할아버지 이게 시원하다고요?” 그렇다. 어린 손주는 아직 뜨거운 물을 시원하다고 느끼고, 또 그 뜨거움을 이겨낼 만큼 성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리 새끼에게도 제 부모를 알아볼 결정적 시기가 있듯이, 사람도 어떤 교육을 받을 민감한 시기가 따로 있는 법이다. 

2차 성징이 시작되지 않아 아직 성에 대한 개념도 확립되지 않은 어린이에게 성교육이랍시고 동성애, 자위 문제를 가르친다. 봉건왕조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나 사실관계 파악도 끝나지 않은 아동에게 군주 독살 사건부터 가르친다. 아직 자유시장경제나 일과 노동에 대한 구분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매판자본이 어떻고, 노동 소외 운운하며 가르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베닝턴칼리지의 경우처럼 성인이 되고 나서도 주변 환경에 저렇게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 아직 발달도 끝나지 않은 어린 영유아나 학령기 아동은 오죽하겠는가. 뇌과학적으로 보면 인간을 다른 영장류와 구분시키고, 인간답게 사고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대뇌 전두엽이 완전히 성숙하려면 20세가 넘어야 한다. 뇌과학은 사춘기 남녀 학생들이 왜 이리 천방지축인지를 설명해준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내용을 적절한 방법으로 적절한 사람이 적절한 대상에게 전달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 아닐까? 수업 시간에 학생 태반이 엎드려 자도 깨우지도 못하는 학교, 깨우는 교사를 고발하는 학생, 내 자식 깨운다고 항의하는 학부모, 아직 성숙하지도 못한 어린이들에게 특정 이념이나 사상을 마구 주입하려는 교사. 이런 난장(亂場)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춘추시대 공자는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는 정명론(正名論)을 펼쳤다. 21세기 나의 정명론은 제발 ‘학교가 학교답고, 선생이 선생답고, 학생이 학생답고, 학부모가 학부모다운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

김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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