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로미(왼쪽) 선수, 김새로미 선수.  사진 김아로미·김새로미 선수 소속 매니지먼트사
김아로미(왼쪽) 선수, 김새로미 선수. 사진 김아로미·김새로미 선수 소속 매니지먼트사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그런 점에서 프로골퍼는 늘 영혼을 잠식당하는 존재가 아닐까, 취재하는 입장에서도 염려하게 된다. 축구나 야구처럼 팀 동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실수를 해도 팀이 이긴다면 조금은 묻힐 수 있고, 나는 평범했지만 동료의 빛나는 플레이로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골프는 덩그러니 내 이름만 걸려 있다. 100여 명이 출전하는데 매번 일등부터 꼴찌까지 적나라하게 등수를 매긴다. 그것도 절반에 들지 못하면 주말 본선에는 뛸 수도 없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유일한 쌍둥이 골퍼인 김아로미·김새로미(24) 프로를 만날 때, 궁금했다. 절반의 영혼이란 말은 실제 한날한시에 태어난 이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불안도 절반으로 가를 수 있는 것인지.


부모님 따라간 연습장서 골프와 인연 

1998년 1월 8일 부산의 한 병원에서 김아로미와 새로미는 30초 간격으로 태어났다. 둘의 이름은 다르지만 언제나 초심을 잃지 말고 살라는 같은 뜻을 담아 부모님이 지었다고 한다. 어머니 이경미씨는 “친구처럼 서로 의지하며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처음부터 언니 동생 호칭은 하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다. 

일란성 쌍둥이인 둘은 언뜻 보면 외모가 똑같다. 키도 나란히 171㎝다. 이들이 골프와 인연을 맺은 것도 같은 날이다. 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가 골프를 취미로 시작했다. 부산 송정동에 초창기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회원인 전문치 프로(KPGA 등록번호 13번)가 운영하는 연습장에 다녔다. 컨테이너로 만든 1층엔 가정집, 2층엔 연습 타석이 있었다. 타석에서 그물까지 5m 남짓했다. 어머니 이경미씨의 말이다. “쌍둥이가 있다고 하니까 프로님이 한번 데리고 오라고 했다. 두 아이에게 한 박스에 80개씩 공이 들어 있는 네 박스를 주고는 너희들 마음껏 치고 싶은 대로 치라고 했다. 똑딱이 볼도 배우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정말 다 치고 오니까 프로님이 ‘그럼 내일도 같은 시간에 와라’고 했다. 손에 물집이 생기면 하얀 테이프를 붙이고 가고, 비가 와도 가고 그러니까 ‘너희들 근성 있구나. 골프 제대로 배워볼래’ 했다.”

아로미와 새로미도 그때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우리는 뭐든 같이 했다. 사회체육센터에 다니면서 스케이트,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 수영도 했고. 처음 간 골프 연습장에서 네 박스를 치라고 했지만 놀이하듯 하니까 하나도 힘이 안 들었다. 다음부터는 학원 다니듯 하루 두세 시간 재미있게 치고, 다 치고 나면 삽으로 공을 주워 담는 것도 재미있었다.”

이제는 어엿한 KLPGA투어 프로가 된 아로미와 새로미가 부산에 내려가면 전문치 프로는 “이쁜이들 왔구나” 하면서 반긴다고 한다. 골프를 정식으로 배우고부터는 기본 에티켓과 매너를 강조해서 가르친 사부님이다. 

애초 놀이 삼아 골프를 시작한 이들이 전국 대회에 나간 것은 초등학교 6학년이 돼서였다. 2009년 대전에 있는 유성CC에서 열린 제1회 박세리배 전국초등학교 골프대회가 그 무대였다. 둘 모두 선천적인 ‘원시성 난시’ 때문에 한때 골프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워낙 골프가 재미있었다고 한다. 

마냥 골프가 즐거웠던 아로미와 새로미도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세계 주니어 골프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하다는 한국 시스템이 주는 중압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레슨을 하던 프로는 “국가대표를 해야 KLPGA 1부투어에 들어갈 수 있다”며 부담을 주었다. 사실이 그렇기도 했다. KLPGA투어를 거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활약하는 고진영, 김효주, 이정은6(선수 등록명) 등 대부분 선수가 주니어 시절 치열한 경쟁을 뚫고 아마추어 국가대표를 지낸 선수다. 

대한골프협회가 주요 대회 성적을 근거로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선발하는 아마추어 국가대표(연간 남녀 각각 6명)가 되면 연간 200일에 이르는 무료 훈련과 각종 해외 대회 참가 등의 기회가 생긴다. 아로미는 고3 때 국가대표 상비군(국가대표 바로 아래 단계로 약간의 지원을 받음)에 선발됐고,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새로미는 고3 때 프로로 전향했다. 그런데 아로미와 새로미가 일등부터 꼴찌까지 성적을 매기는 골프 대회에서 나란히 같은 조에서 경쟁하면 어떻게 될까?

이들은 아마추어 시절 같은 대회에 나가더라도 같은 조에서는 거의 만나지 않았다. 중1 때 부산에서 열린 대회에서 어색하게 함께 경기했던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리긴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경기위원회에서 형제자매가 함께 경기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프로가 돼서는 2018년 KLPGA 2부투어인 드림투어에서 같이 경기를 했다. 아로미와 새로미는 “첫 티잉 구역에 올라가는데, 웃음을 참으려고 하는데, 너무 웃겨서 ‘뱀 샷(땅에 깔리는 샷)’을 했다. 둘 다 성적은 별로 안 나오고 오버파를 쳤다”라고 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유일한 쌍둥이 골퍼인 김아로미(오른쪽), 김새로미 프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기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유일한 쌍둥이 골퍼인 김아로미(오른쪽), 김새로미 프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기자

둘은 2017년 KLPGA 정회원이 됐지만 함께 1부투어에서 뛰는 건 올해가 처음이다. 아로미가 정규투어에 처음 진입한 2019년엔 동생 새로미가 2부투어인 드림투어에 있었다. 새로미가 2020년 정규투어에 올라오자 아로미가 드림투어로 떨어졌다. 아로미가 정규투어를 함께 시작한 것은 둘의 골프 인생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아로미가 지난해 시드 순위전 31위로 시드를 획득하고 새로미가 상금 약 1억9000만원(41위)으로 정규투어 시드를 유지하면서 같은 무대에서 뛰게 됐다. 

똑같다는 착각이 들게 하던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서서히 다른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예 대조적으로 보였다. 이들은 서로를 “아로미는 ‘초코빵’, 새로미는 ‘안전빵’이다”는 농담을 했다. 스윙 스타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골프 스윙에는 임팩트 시 힘을 집중하는 ‘히터’ 스타일과 템포와 회전을 중시하는 ‘스윙어’ 스타일이 있다. 

아로미가 있는 힘껏 클럽을 휘두르며 초코빵처럼 ‘핵달달한’ 장타의 꿈을 향해 돌진하는 파워 히터라면, 새로미는 발레를 하듯 예쁘게 보이는 스윙으로 안전한 곳만 찾아 다니는 달콤한 스윙어라는 것이다.

성격도 다르다. 아로미는 스스로 예민한 고양이 같다고 했고, 새로미는 자신을 무슨 일이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금붕어라고 했다. 이들을 가르치는 이정은 프로는 “아로미와 새로미는 스윙도 성격도 하나로 합쳐서 반으로 나누어 놓으면 이상적인 골퍼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올 시즌 목표는 현실적이다. 가능하다면 프로 첫 우승의 꿈을 이루고 싶지만 우선 ‘함께 살아남는 것’이 목표다. 초반 네 개 대회에서 아로미는 한 차례, 새로미는 두 차례 컷을 통과했다. 만족스러운 출발은 아니지만 올 시즌 34개 대회가 치러지는 만큼 여전히 기회는 있다. 주니어 시절에 아로미가 여러 차례 우승하며 앞장 섰다면, 프로에서는 새로미가 지난해 두 차례 준우승과 두 번의 홀인원으로 탄력받고 있다.

아로미는 “3년 만의 투어 복귀라 아직 긴장되고 떨린다. 그래도 새로미랑 같이 뛸 수 있어서 좋다”라고 했고, 새로미는 “성적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즐겁게 할 것만 하면서, 기회가 오면 잡는 식으로 시즌을 하고 싶다”라고 했다. 아로미는 “서른다섯까지” 새로미는 “서른다섯 넘어서도 조금 더” 선수로 뛰고 싶어 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다른 듯하던 둘이 또 하나로 수렴됐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서인지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다. 그런데 가정을 이뤄도 바로 옆집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골퍼가 겪는 불안과 아쉬움을 비롯해 길고 짧은 면이 고루 섞여 있는 둘을 하나로 합해서 둘로 나눈다면 과연 이상적인 골퍼가 될까? 사실상 한 몸처럼 통하는 이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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