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영국은 마거릿 대처의 보수주의 정책으로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있었다. 나라의 기간 산업은 국유화되었고 철저한 통화주의 정책은 최하층 계급의 대규모 실직을 낳았다.
당시 20대 후반이던 폴 그레이엄(Paul Graham) 역시 마땅한 돈벌이가 없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대부분은 아닐지라도 많은 내 친구와 나는 실직 상태였다. 이렇다 할만한 직장을 찾을 수가 없던 시절이었다. (중략) ‘대처리즘’은 어떤 이론적 원칙이기 전에, 그저 내가 마주한 개인적 현실이었다.”
실직자들에게 실업 수당을 주던 당시 영국의 사회복지 시스템은 본래 60만 명 정도를 감당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실직자 수가 1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이 시스템은 과부하 상태가 되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실업 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현재 실업 상태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준비한 뒤 지역 사무실에 방문해 인터뷰해야 했다. 문제는 실직자 수의 폭등이었다. 몇 시간을 넘어 하루 종일 기다려야 했고, 인터뷰 예약 시스템은 마비되다시피 했다.
경제적 폭력과도 같은 현실 속에서 실업 수당을 받기 위해 사회복지 사무실을 방문해 대기하고 끝없는 인터뷰를 거치는 것은 그레이엄에게도 일상 중 하나였다. 본래 시민 복지의 상징과도 같은 이 사무실들이 이제 시민의 삶이 붕괴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그는 깨달았다. “이것은 기록되어야만 하고 사진 찍혀야만 했다. 누구도 하고 있지 않았기에 그것은 내 몫이었다.”
‘복지 그 너머에(Beyond Caring)’는 그레이엄이 1984년부터 1985년까지 영국의 국가적 실업 위기 속에서 런던, 리버풀, 맨체스터, 버밍엄, 브리스톨 등 영국 전역의 사회복지 사무실(Social Security and Unemployment Office)에서 복지 시스템이 붕괴된 현실을 시각적으로 조사하고 기록한 사진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진집이다.
그레이엄이 관찰하고 기록한 내용에 따르면, 사람들은 몇 시간은 기본이고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고, 효율적인 서비스를 하는 곳은 없었다. 어떤 사무실은 너무 작은 나머지, 나선형으로 줄을 선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열악하고 각박한 현실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시간을 기약 없이 낭비하더라도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 책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경제적 안정이 상실된 상황에 놓인 이들이 사무실의 대기실과 복도에서 상담받기 위해 끝없는 기다림을 견뎌야만 하는 상황이 담겨 있다. 어떤 이들은 의자에 앉아 쪽잠을 청하고, 젊은 어머니는 아이에게 젖병을 물린다. 부가 설명 없이도 사진은 이들이 하염없는 기다림 속에 놓여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다 어렵사리 자기 차례가 오면 상담실에서 상담을 받는다. 어린 아기를 데려온 젊은 엄마가 상담받는 동안 유모차는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다. 상담소에는 “매일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있으니, 구직을 원하시면 내일 다시 전화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무의미한 희망의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
대기실 바닥에는 담배꽁초, 성냥, 버려진 캔, 종이컵, 쓰레기 등이 굴러다닌다. 아무도 치우는 행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 말이다. 사진 비평가 데이비드 챈들러(David Chandler)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들은 지루함(boredom)의 부산물이자 불만족(discontent)의 부산물이다.” 희망 없는 기다림 속에 바닥에는 쓰레기가 쌓여갈 뿐이다.
그레이엄은 이러한 현실을 당시 영국 다큐멘터리의 주를 이루던 흑백이 아닌 컬러로 표현했다. 따분하고 칙칙한 인테리어를 보여주는 것은 그의 의도 중 하나였다. 특히 그는 이 사무실들이 모든 희망이 걸러진 채 형광등만이 점멸하는 공간 같다고 느꼈다.
사진의 내용뿐 아니라, 사진 형식에서 눈에 띄는 것이 더 있다. 이 중 하나는 통상적으로 균형 잡혔다고 말하는 형식에서 벗어난 사진이 많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수직과 수평이 한쪽으로 위태롭게 기울어졌다거나 천장이나 바닥이 장면을 굉장히 많이 차지하고 있다거나 하는 점 등 말이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바로 그레이엄이 처음에 공식적인 촬영 허가를 요청했지만 이를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촬영이 금지된 공간에서 비밀스러우면서도 대범한 촬영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카메라를 가지고 사회복지 사무실에 들어가되, 렌즈를 들여다보지 않은 채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보지 않고 찍는 방식이었다. 카메라를 눈에 대고 찍지 않는다면 딱히 그를 제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의 생각대로, 그는 6×7판형의 제법 큰 중형 플라우벨 마키나(Plaube Makinal) 카메라를 사용했지만, 조심스러우면서도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단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눈에 띄는 행동을 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는 자신의 촬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모든 사진을 렌즈를 들여다보지 않고 찍었다.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작업해야만 했다. 카메라를 의자에 두거나, 내 목에 걸어두거나, 또는 바닥에 둔 채로 사진을 찍었다. 그 덕분에 삼각대 없이 매우 느린 셔터 스피드로 작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수직과 수평이 기울어지고, 바닥이나 천장이 많이 포함되는 등 각 사진이 우연적인 구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촬영 방식을 염두에 두고 그의 사진을 보면, 우리는 각 사진이 찍힌 방식과 높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그가 카메라를 바닥에 두고 찍은 사진은 우리가 고개를 깊이 숙여야만 볼 수 있는 대기하는 사람들의 발이나 쓰레기로 지저분한 바닥을 묘사한다.
또한 그의 말대로 사진은 안정적인 구도를 가지기보다 위태롭게 기울어져 있다. 공간적 방향 감각을 상실한 듯한 카메라의 시선은 사진에 담긴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삶의 방향 감각 상실과 일치한다. 위태로운 카메라의 시선이 사진의 완성도를 해하기보다 오히려 고통스럽고 불안한 이들의 상태를 강조해 표현한다. 낮고 기울어진 카메라의 시선은 이들의 기다림이 희망 없는 것일 수도 있는 암울한 현실을 전한다.
그레이엄의 시선은 은밀하지만 대범한 스파이와도 같다. “사람들이 겪은 어려움을 보여주고, 복지 시스템이 서둘러 개혁되길 바라면서” 사회 취약 계층의 모습과 절차를 준수하는 관료제 체제 사이에서 현실을 날카롭게 증언하고 포착한다.
▒ 김진영
패사진책방 ‘이라선’ 대표,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