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다 도모히로 작가 ‘마이너리티 디자인’ ‘빡빡한 세계를 느슨하게 하다’ 저자
사와다 도모히로 작가 ‘마이너리티 디자인’ ‘빡빡한 세계를 느슨하게 하다’ 저자 사진 사와다 도모히로
사와다 도모히로 작가. 사와다 도모히로
사와다 도모히로 작가. 사진 사와다 도모히로

그는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카피라이터였다. 재능도 있어 일본 도쿄 시부야역에 그의 광고 카피가 도배되기도 했다. 보람찬 날들이 계속될 줄 알았지만, 아들이 생후 3개월 만에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아들에게 장애가 있는 것을 알고 강점만으로 싸우기를 그만두었다. 모든 강점과 약점을 그러모아서 ‘소수자 시장’을 개척했다.

‘운동치’들을 위한 대체 스포츠 ‘유루 스포츠’를 비롯해 사와다 도모히로의 역발상이 히트시킨 아이템들이 일본 사회에 건강한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유루이는 ‘느슨하게’라는 뜻의 일본어로, 유루 스포츠는 기존 스포츠의 경쟁적인 면을 최대한 없앤 개념이다. 뛰지 않고 기어 다니면서 하는 럭비 경기가 유루 스포츠의 일종이다. 예컨대 거칠게 공을 다루면 응애응애 울음소리가 나는 ‘갓난아기 농구’, 가운데 구멍이 뚫린 라켓을 쓰는 ‘블랙홀 탁구’, 손에 미끌미끌한 비누를 묻혀서 하는 ‘핸드소프볼’, 고령화 문제를 역으로 활용한 할아버지 아이돌 그룹 ‘지팝’, 지체장애인의 ‘보는 기능’과 시각장애인의 ‘걷는 기능’을 서로 빌려주는 신체 공유 로봇 ‘닌닌’⋯.

“약점을 버리고 강점만으로 경쟁했다면 지금도 광고 카피밖에는 못 썼을 겁니다”라고 그는 고백한다. 소수자의 ‘사회적 시력’으로, 섬세한 역발상 시장을 개척한 ‘마이너리티 디자인’의 사와다 도모히로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아들의 장애를 이해하기 위해 200여 명의 사람을 만났다고 들었다.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물어봤나.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을 할지. 어떻게 성장했는지, 꿈은 무엇인지. 다른 분을 소개해줄 수 있는지…, 정말 큰 공부가 됐다. 정말 중요한 정보는 사람에게 있었다. 검색하는 대신 사람을 만나 질문하면, 디지털에 없는 정보가 술술 흘러나온다. 조금씩 아들의 인생이 그려졌다.”


‘장애가 있다=불쌍하다’는 등식 대신 다른 해법이 생겼다. 못하는 일을 억지로 하는 대신 사회를 더 좋게 바꾸면 된다⋯, 그 해법이 마이너리티 디자인이었다.


마이너리티 디자인의 수혜자는 누군가.
“누군가의 약점 덕분에 사회 구성원 전체가 수혜를 누릴 수 있다. 구부러진 빨대는 누워서 생활하는 환자를 위해 발명됐지만, 누구나 편리하게 쓰고 있다. 소수자를 기점으로 보면 세계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디자인할 수 있다.”

책에서 장애가 있는 내 아이와 ‘운동치’라는 내 약점이 겹치면서, ‘혹시 잘못은 운동이 한 거 아닐까?’라고 생각했다는 부분에서 웃으며 무릎을 쳤다.
“사회복지를 공부해보니 두 가지 모델이 있다. ‘의료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 뇌성마비로 휠체어를 타는 사람에게 ‘곤란의 원인은 당신에게 있으니 재활해서 건강한 상태로 만듭시다’가 의료적 모델이고, ‘곤란의 원인은 사회에 있으니 문턱을 없애고 엘리베이터를 만듭시다’가 사회적 모델이다. 

그렇다면 운동을 못하는 건 내 탓이 아니라, 운동 경기 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있다. 나는 나를 위해 내 능력을 쓰기로 했다. 운동을 못하는 내 아이와 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만들자. 그래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 버블 축구다. 거대한 튜브를 장착한 선수들이 축구를 한다면? 해보니 서로 부딪힐 때마다 튕겨 나가고, 스릴과 폭소가 쏟아졌다.”

어쩌면 나를 위해 일할 때 가장 쓸모 있고 아름다운 물건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교육에서는 학생이 무언가를 못할 때 ‘네게 책임이 있다’ ‘노력해서 극복해야 한다’고 한다. 나도 체육을 정말 못해서 선생님이 ‘더 달려야 해’라며 연습을 시켰지만, 전혀 빨라지지 않았다.

당시 나는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는 존재다. 물고기가 강에서 좀처럼 나아가지 못한다면, 물고기뿐 아니라 물살이 거센 강에도 책임이 있는 거다. 유루 스포츠라는 새로운 강이 생겨나자 나와 아들 같은 약한 물고기들도 술술 헤엄칠 수 있게 되었다. 물고기가 아니라 강을 바꾸면 모든 사람이 ‘물 만난 물고기’가 될 수 있다.”


물고기가 아니라 강을 바꿔야 한다는 말은 대담하고 힘이 있었다.


약자도 즐길 수 있으려면 스포츠에 어떤 설계가 필요한가.
“핸디캡을 공유해야 한다. 가령 버블 축구는 몸에 대형 튜브를 끼고 한다. 잘하는 사람도 못하는 사람도 공통의 ‘핸디캡’을 갖고 있으니 다 함께 웃고 즐기게 된다. 그래서 나는 더 다양한 핸디캡을 생각했다. 핸드볼을 하는 데 공이 미끌미끌하면? 비누를 뜻하는 ‘핸드 소프’와 ‘핸드볼’을 합쳐서 핸드소프볼이 탄생했다.

또 어느 날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집에서는 기어 다니며 생활한다는 것을 보게 됐다. 그 순간 아이디어를 내서 애벌레 옷을 입고 기면서 하는 ‘애벌레 럭비’를 만들었다. 경기해보니 비장애인보다 하반신 마비자가 훨씬 빠르고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줬다.

중요한 건 다들 애벌레로 변신해서 맘껏 웃음과 땀에 흠뻑 젖었다는 거다. 서로의 핸디캡과 실수에 한없이 너그러워졌다. 공에 충격 감지기가 달려 ‘응애응애’ 소리를 내는 아기 농구도 있다. 이 경기는 공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아기 다루듯 움직여야 한다. 속도를 못 내니 모두가 서투른 사람이 되고, 모성이 있는 사람이 유리하다."

모두를 서툴게 만드는 이유가 있나.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출발선을 긋기 위해서다. 그러면 누구나 긴장하지 않고 자기만의 경주를 할 수 있다. 주류 세계 승리의 룰을 무효화하면 스포츠는 즐거운 카오스가 된다. 기존의 스포츠 룰이 강하거나 빠르거나 높은 사람이 피라미드 위쪽에 있었다면, 잘 기거나 모성이 있는 사람에게도 기회가 생기는 거다.

유루 스포츠는 운동 약자를 우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까지 최강자만 살아남는 방식을 바꿨다. 승리하는 방식이 다양해지도록. 그래서 상어만 살기 좋은 바다가 아니라 새우도 문어도 살 만하도록.”


시합에 참여한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이기면 기쁘다. 져도 즐겁다’.
넘어지고 구르면서 웃다 보면, 점수도 실수도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된다. 사와다 도모히로는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라 모든 일을 좀 더 느슨하게 만든 것뿐이라고 했다.


주류 질서 안에 소수자를 세우는 것에서 모든 일이 시작되는 것 같다. 의족 패션모델과 할아버지 아이돌 그룹은 어떻게 탄생했나.
“사람이든 물건이든 활용되지 않은 감춰진 매력이 있다고 믿고 있다. 각자의 내면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신대륙’이 있다고. 의족을 한 여성에게는 패션이라는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신대륙이 있다. 할아버지들에게는 그 독특한 저음을 살려서 EDM(클럽, 페스티벌, 파티에서 사용되는 전자음악을 통칭하는 장르) 같은 음악과 접목할 수 있는 신대륙이 있었다.”


‘발견되지 않은 신대륙’을 찾기 위해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신체 공유 로봇 ‘닌닌’도 그런 인식으로 만들어졌다.


신체 공유 로봇 ‘닌닌’은 가장 인간적인 ‘휴머노이드’의 모델이 될 것 같다. 어떻게 장애인들이 서로를 돕는다는 호혜적 발상을 했나.
“시각장애인 지인이 신호등 앞에서 늘 불안에 떤다고 해서 놀랐다. 음성 안내기도 비가 오면 들리지 않는다고. 가까운 사람이 곤란을 겪는다고 하면,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시각장애인의 어깨에 앉은 작은 로봇 ‘닌닌’이 ‘빨간 불이야’ ‘택시 오니까 손 흔들어’ 같은 정보를 알려준다. 안내자는 인공지능(AI)이 아니다. 누워서 생활하는 장애인이 모니터를 보고 말해주는 거다.

‘보디 셰어링 시스템’으로 시각장애인은 ‘닌닌’의 안내를 받으며 홀로 거리를 걸을 수 있고, 지체장애인은 외출한 듯한 경험을 한다. 그 덕에 닌닌을 사용해본 시각장애인들은 ‘헤어지려니 쓸쓸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어 기뻤다’는 감상을 들려준다. 앞으로는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가 ‘닌닌’ 속에 들어가 손주와 함께 여행을 떠날 수도 있을 거다.”

‘닌닌’은 곧 개인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할 거라고 했다. 아들의 장애 이후 ‘모든 약점은 이 사회의 가능성’이라는 사와다 도모히로의 생각은 점점 더 확고해졌다. 바야흐로 약점의 우주가 열렸다. 주류 세계에 균열이 생길수록, 세상은 더 친절해지고 다양해지고 재밌어졌다.

약점이 사회적 자원이라면 주위에 다양한 소수자 친구가 있을수록 경쟁력도 커지겠군.
“그렇다. 누군가의 약점과 누군가의 강점이 손을 잡을 때 다양성의 불꽃이 일어난다. 소수자는 우리 사회의 핵심 잠재력이다. 불편을 감지하는 사회적 시력이 탁월하다. 그들이 ‘이건 위험해요’ ‘이건 이렇게 고치면 더 좋아요’ 개선점을 알려주고 우리가 잘 받아들일수록 사회는 더 다정해지고 안전해진다.”

핸디캡이 있는 소수자를 너무 포커스하면 시장 자체가 작아지진 않을까.
“그 반대다. 알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의 소수자다. 모든 개인 안에는 다수성과 소수성의 양자가 공존하고 있다. 통계를 보니 일본 1억 명 인구의 절반 이상이 ‘운동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시장이 놓치고 있던 ‘구멍’이 있었던 거다. 약점을 노출하면 소수자를 중심으로 계속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진다.”

정말 내가 편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일해도 괜찮은가?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용기인가.
“용기보다 정직이다.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면 안 된다. 나 또한 일하는 방식을 새롭게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일해야 한다’는 기존의 납품 노동 개념으로 되돌아갈 뻔한 순간이 있었다. 상식대로 사는 게 편하니까. 하지만 자문자답하면서 찾아낸 내 내면의 답은 같았다. 내가 편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일해도 괜찮다.”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관여하는 모든 사람이 생태계가 어떻게 성장해갈지 몰라야 한다. 육아와 마찬가지다. 아이의 성장을 계획할 수 있고 계획대로 자란다면, 부모는 육아에서 손을 뗄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아이가 어떤 변화를 겪고 어떻게 성장할지 모르기 때문에 부모는 육아에 대한 동기를 잃지 않을 수 있다.”

살면서 누구에게 가장 큰 영향 혹은 영감을 받았나.
“아들이다. 그만큼 나를 극적으로 (거의 하룻밤 만에) 변화시킨 사람은 없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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