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사진 위키피디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사진 위키피디아

며칠 전 필자의 콘서트에서 아주 난감한 일이 있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테마로 그의 작품을 연주하고 해설하는 자리였다. 연주가 중반부쯤 흘렀을 때 연주할 다음 작품의 제목을 말해야 하는데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당황한 필자는 마이크를 함께 연주를 했던 상대 피아니스트에게 넘겼다. 살면서 평생 입 밖으로 꺼낼 일이 있을까 싶은 정도로 이 모차르트 작품의 제목은 당황스러움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하다. 지금도 이 작품의 제목을 키보드로 두들기는 동안 식은땀이 나고 손가락이 자꾸 머뭇머뭇한다. 작품의 제목은 대략 이러하다. ‘내 엉덩이에 뽀뽀해주세요(Leck mir den Arsch)’, 다소 귀엽게 들릴 수도 있을까? 사실 아주 순화해서 번역해 본 것이다. 직역하면 어떨까? 이것은 필자의 언어가 아닌 ‘음악의 성인’ 모차르트가 남긴 것이기에 그의 성스러운 이름 뒤에 숨어 조심스레 적어본다. ‘내 엉덩이를 핥아줘.’

충격적이지 않은가? 천사와 같이 맑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하며 또 서양 음악 사상 최고의 천재로 추앙받는 이가 어떻게 이런 천박한 제목의 작품을 남겼단 말인가. 가사 또한 민망하기 그지없다. ‘빨리’ ‘깨끗하게’ ‘잘’ 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는 걸로 설명을 짧게 마무리한다. 모차르트는 심지어 비슷한 이름으로 두 개의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들은 습작이 아닌 당당히 그의 정식 작품으로 인정받기에 쾨헬이라는 학자가 모차르트 사후에 그의 방대한 작품을 정리하며 K. 231과 K. 233이란 고유의 번호를 붙여주었다.

작품을 들여다보자. 두 작품 모두 1780년대 초반 작곡으로 추정되며 모차르트가 서거한 후 그의 미망인 콘스탄체가 악보를 한 출판사에 보내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두 작품은 캐논 형식으로 우리나라의 돌림노래와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먼저 한 성부가 가사를 발음하며 멜로디를 시작하면 곧이어 다른 성부들이 순차적으로 따라 부르는 형식이다. 멜로디는 명랑하기 그지없다.

만약 필자가 가사를 모른 채 이 노래를 들었으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분명 ‘아, 역시 모차르트의 음악은 순수하고 아름다워. 이 얼마나 예술적인 작품인가. 순수한 마음을 다해 건반을 눌러야 하겠구나’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랬기에 이 작품의 가사를 본 순간 일면식도 없는 모차르트에게 배신감도 느꼈고 화도 났다. 필자가 그간 일생 알고 연주하며 믿어온 모차르트 인품에 반하는 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한 가지 물음에 봉착했다. 왜 모차르트를 순수하고 투명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은 것일까? 그의 음악을 칭하는 수많은 수식어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 천진난만함, 깨끗함 같은 단어가 포함 돼 있다. 하지만 수차례 ‘왜’를 던지며 질문과 함께 물음을 찾아보지만, 선뜻 답을 찾기가 어렵다. 그가 스스로 자신의 음악은 천진난만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그렇게 연주해야 한다라고 언급한 편지 구절 따위는 더더욱 없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순수하고, 천진난만하고 또 재기 발랄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단어로 한 사람의 예술을 총칭하고 정의하기에 그는 너무도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다채로운 성격을 내포한 하나의 인간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우리도 하나의 성격으로만 단정 지을 수 없듯이 말이다.

모차르트의 사후 그의 예술을 찬양하는 인용구가 쌓여가고 그를 미화하는 영화 등이 나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고 바람직하다고까지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것들이 그의 진정한 예술에 다가가는 데 점점 거리감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음악을 접하기 전에 그를 찬양하는 인용구를 먼저 접하면서 연주하는 사람도 그리고 듣는 사람도 그 인용구가 가져다주는 무한한 존경심에 반하지 않기 위해 모차르트의 음악으로부터 순수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감정에는 오히려 무관심해지는 경우도 충분히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종종 위대한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배운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음악의 어머니 헨델, 음악의 악성 베토벤 등등. 모두 음악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이들이지만 그들은 결코 그들 같은 대가만을 대상으로 작곡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같이 평범하게 음악을 즐기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음악으로써 우리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기 위해 작곡했을 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배에서 소리 나고,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던 인간이다. 그렇기에 작품을 연주하거나 감상하기 전 그들의 위대한 이름은 한 번쯤은 잊어버리고 마치 길 가다 처음 만나는 낯선 이와 대화하며 가까워지는 과정을 경험해 보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다른 예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전, 상대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를 먼저 듣고 만난다면, 처음 만나는 이와의 관계에서 도움이 될지 아니면 편견으로 작용할지 우리도 한번쯤 살면서 경험해 보지 않았을까. 필자도 이러한 점을 알았다면 모차르트의 엉덩이가 등장하는 작품을 접하며 그에게 묘한 배신감 따위는 느낄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해본다.


Plus Point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모차르트의 ‘Leck mir den Arsch K. 233’
노래: 유럽 실내 합창단(Chamber Choir of Europe)
지휘: 니콜 매트(Nicol Matt)

앞서 설명한 모차르트의 짓궂은 유머가 가득 들어있는 캐논 작품이다.

음악 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모차르트가 가족들에게 보낸 약 370여 편의 편지 중 10편 중 1편꼴로 엉덩이, 방귀, 배설물과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분변음욕증(scatology)이다, 과한 농담이다 등 해석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모차르트 음악의 예술적 미학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우리 같은 한 인간으로서 그의 음악을 바라보고자 이 음반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