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종호 예일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 서울대 심리학, 서울대 의학대학원 석사,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석사,‘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저자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나종호 예일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 서울대 심리학, 서울대 의학대학원 석사,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석사,‘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저자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은 한 정신과 의사의 해맑은 확대경으로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그늘을 비춘 기록이다. 자살 충동으로 정신과 응급실을 찾은 노숙자, 자폐아, 싱글맘, 트랜스젠더, 이민자, 조현병과 알코올의존증으로 눈물짓는 변호사와 의사들⋯. 각자의 곤경으로 그늘진 사람들에게 나종호는 경청의 체온을 더한다.

서울대 의학대학원,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뉴욕대 정신과 레지던트를 거쳐 현재 미국 예일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나종호. 그는 문과생으로 심리학을 공부하다 늦은 나이에 의학대학원으로 전공을 바꿨고, 동양인 남자 정신과 의사라는 마이너 정체성으로 파란만장한 뉴욕 정신 질환자들을 상대했다.

수많은 환자를 만났지만, 그가 가장 애틋한 마음으로 연구한 분야는 중독과 자살이다. 특히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부정확하게 에둘러 표현하는 한국의 언어 문화가 자살을 왜곡할 뿐 아니라 문제 해결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초여름 더위가 시작되던 날. 잘 닦은 거울처럼 무표정에도 미소가 고인 온유한 정신과 의사를 만났다. 

나종호 예일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나종호 예일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뉴욕 병원의 응급실은 노숙자들과 자살 시도자들, 자살 생각을 막아달라고 찾아온 사람들로 북새통이더라. 생경한 풍경이었다.
“뉴욕 인구의 1%에 해당하는 8만 명이 노숙자다. 벨뷰병원 환자 중 70%도 노숙자다. 정신 질환으로 밥벌이를 할 수 없어 노숙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응급실 환자의 10%는 자살 충동으로 온 사람이다. ‘자살 생각이 심해지면 응급실을 찾는다’가 일종의 사회적 의료 공식이다.”

자살을 양지로 끌어내 함께 해결책을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여전히 한국 언론이 자살을 정확히 호명하지 않고 ‘극단적 선택’이라고 표현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모호하게 은폐할수록 역기능이 더 많아지나.
“일단 자살을 ‘익스트림 초이스’라고 표현하면 미국에서는 논란이 될 거다. 과거에는 이곳 언론도 자살을 ‘저지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커밋(commit)을 썼는데, 요즘은 심플하게 ‘자살로 사망했다’고 한다. ‘선택’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 ‘극단적 선택’으로 표현하면 일단 유가족이 낙인찍힌다. 개개인의 자살 사유는 내밀해서 알기 힘든데, 차후에 ‘네 아버지는 왜 그런 선택을 했어?’ ‘왜 너는 그걸 못 말렸어?’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중적인 죄책감, 더 깊은 수렁을 만드는 거다.”

그러니 ‘극단적 선택’이라는 상상의 어휘를 쓰지 말고, 자살을 자살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단 한 사람만 나를 믿어줘도 자존감이 지켜진다고 들었다. 타인을 믿는 것도 능력인가.
“맞다. 교사 한 사람만 잘 만나도 평생 살 힘이 생긴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카를 로저스가 그랬다. 진심으로 믿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세상을 다시 살 수 있다고.”

믿음은 어떻게 시작되나.
“믿는 건 듣는 거다. 대개는 ‘다음에 무슨 말 할까, 어떻게 반박할까’를 준비하느라 잘 못 듣는다. 그런데 잘 듣는 관계가 정신 건강의 시작이다.”

그런 의미에서 판사도 의사도 그 업의 본질은 판단과 처방이 아니라, 억울하게 죽지 않도록 이야기를 듣고 주목해주는 마지막 청자가 아닐까 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인생을 장기적으로 보고 서사를 파악하는 직업이다. 평면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보는 거다. 치료하는 과정은 그래서 환자를 인터뷰하고 인생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나종호는 환자의 믿음이 의사의 전문성을 만든다고 믿었다. 의학적 해결 방식이 있는 전문가임에도 환자를 구제해야 할 ‘문제적 인간’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고맙게 동등하게 바라보는 마음은 그를 ‘결이 다른’ 의사로 만들었다.

어떤 환자가 기억에 남나.
“환자가 했던 구체적인 말들은 잊었다. 반면 환자가 어떤 기분을 느끼게 했는지는 기억난다. 중증 조현병 환자였던 샐리가 생각난다. 샐리는 자신을 사랑했고, 열심히 봉사하면서 사회가 주는 혐오를 씩씩하게 이겨냈다. 2년간 그녀와 함께한 시간이 행운이었다. 응급실에 자살 생각을 호소하며 찾아와서 샌드위치를 먹고 하룻밤씩 자고 가던 노숙자 테디도 생각난다. 테디가 어느 날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개를 데리고 다니면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걸어준다고. 뉴욕의 겨울은 혹독해서 그 강아지가 끙끙 앓던 밤, 테디가 무작정 정신과 응급실로 찾아왔다. 그 밤에, 작은 생명을 입양 센터로 보내기로 하고는 ‘엄마’처럼 서럽게 울던 모습이 기억난다.”

타인을 한 권의 책처럼 대하면 많은 문제가 사라진다고 했다.
“책 한 권을 읽으려고 해도 감정의 준비가 필요하다. 공감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공감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첫째, 타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건 가치가 있다. 둘째, 나와 다른 사람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 셋째, 스위치를 잠깐 끄고 오롯이 집중한다.”

가장 중요한 건 뭔가.
“이해하고 싶은 의지다. 환자에게 ‘담배 피우지 마세요! 술 끊으세요!’라고 백날 말해도 안 듣는다. ‘당신이 넘어질까 봐 걱정돼서 그렇다. 당신 안전이 신경 쓰여서 그렇다’라고 하면 그 순간 마음이 움직인다. 소수자 차별하면 안 된다고 아무리 말해도 안 듣는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잘 안 바꾼다. ‘노숙자는 뻔뻔하다, 위험하다’는 편견을 지적하는 것보다, 노숙자의 실제 서사를 들려주면 그때 느낀다. 아, 이 사람도 나랑 비슷한 사람이구나⋯.”

왜 어떤 사람은 편견이 더하고 어떤 사람은 덜한 걸까.
“편견은 생존에 필요한 진화의 산물이다. 뇌 용량이 정해져 있으니까 이 집단과 저 집단을 분류해서 재빨리 위험을 피하려는 거다. 중요한 건 ‘내가 편견이 있다’는 걸 인지하는 거다. 모든 개선은 인정에서 시작한다. 나도 진료실에 들어가면 편견 없이 ‘경청’하려고 매번 노력한다.”

나의 편견 정도를 어떻게 알 수 있나.
“주변에 다양한 사람이 안 보이면 문제의식을 느껴야 한다. 예전엔 놀이터에 부잣집 아이, 가난한 집 아이 다 섞여서 놀았잖나. 어른도 직업과 환경이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줄면, 그만큼 사고 영역이 좁아진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NYT)에서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해 제시한 방법은 단순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정치⋅사회적 의견이 다른 사람을 팔로우하고, 정기적으로 점심 식사에 초대하라’였다.”

한국에서는 얼마 전부터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BTI)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서로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편견 억제에 도움이 될까.
“(미소 지으며) MBTI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노동자가 부족해지면서 성격 유형에 맞춰 빠르게 직무를 맡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가장 큰 장점은 16가지 성격을 기술하는데, 나쁜 표현이 없다는 거다. 그게 다들 열광하는 지점일 테고. 다만 학계에서 MBTI에 대한 신뢰도는 전혀 없다. 성격은 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에 수천수만 가지다. 그럼에도 MBTI가 나와 타인의 장점을 보도록 도와준다는 점은 인정한다.”

벨뷰병원의 동성애자 의사와 싱글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인지적 공감의 좋은 사례였다.
“제이컵의 어머니는 싱글맘이었고, 자폐아를 힘겹게 키우고 있었다. 제이컵이 환청을 듣는다며 응급실에 찾아와서, 한 달에 며칠씩 입원하다 돌아갔다. 병원에서는 사정을 알고 눈감아줬지만, 동정만으로 계속 유지될 수는 없었다. 그즈음 동성애자 교수가 가족 면담을 잡아서 제이컵 어머니에게 물었다. ‘나도 아이를 입양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다. 아이가 없어서 어머니가 어떤 심정인지 모른다. 하지만 듣고 싶고 배우고 싶다. 어머니가 제이컵을 어떻게 키웠는지’라고 말이다. 그때 제이컵 어머니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 동성애자 교수는 1시간가량 어머니의 이야기를 정성껏 듣고 감사를 표현했고, 그런 다음 조심스럽게 자폐아 부모 모임과 외래 클리닉을 주선해줬다. 그때 정확히 알았다. 공감은 동일시가 아니구나.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아도 노력으로 이해하고 도울 수 있구나.”

우리는 영원히 타인의 아픔을 모르니, 오직 ‘타인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이 윤리의 시작이라고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그랬다. 몰라도 그 자리를 인정하려는 정직한 마음…, 심퍼시(sympathy·동정이나 연민)에서 엠퍼시(empathy·공감)로 가는 단계에서 필요한 건 그런 지적인 분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측은지심으로 시작했어도, 인지적 노력이 동반돼야 도움을 줄 수 있다. 동성애자 교수는 자폐아를 키우는 싱글맘을 동정한 게 아니라, 그 자리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싶어 했다. 편견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거다. 그래서 나는 계속 강조한다. 우울증이나 중독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지만 공감은 의지의 문제라고.”

나종호는 그렇게 하루하루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정성을 기울이는 의사로 살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대도시에서 안간힘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신과 의사로서 조언을 부탁한다.
“항상 ‘내 기분이 어떤가?’라고 물어라. 내 감정을 뒷전으로 하고 남만 챙기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 일례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봉사하는 의료진도 정신 질환 고위험군이 돼서 자살률이 높았다. 부정적인 전조 증상이 올라오면 도움을 청해야 한다. 어린이들에게도 가르쳐라. 도움을 청하는 게 약하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그리고 감정을 이야기하는 문화, 정신과 의사와 카운슬러를 찾는 문화가 더 자연스러워지면 좋겠다. 자기 관리도 자살 예방도 ‘마음을 물어주는 것’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