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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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뒤바뀐 삶, 설명서는 없음’은 미국의 저명한 비평가 게일 콜드웰의 자전적 에세이다. 게일 콜드웰은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다. 훗날 치료법이 나와 수술받았지만 이후 오랜 시간 수술 후유증에 대한 두려움과 신체적 통증으로 고통받았다. 그런가 하면 그의 50대는 상실로 점철된다. 친구의 죽음, 부모의 죽음 그리고 반려견의 죽음까지. 6년 사이에 소중한 존재들과 너무 많은 이별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상실에 대해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콜드웰은 삶이 행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들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 일들이 별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힘든 일은 언제나 계속되기 때문이다. ‘작은 지옥’은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상시 대기 중인 불행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가 얼마나 꾸준히 조정을 연습했는지, 그로 인해 근력 손실에 얼마만큼 선방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통증 때문에 제대로 걷거나 허리를 숙이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서 힘이 넘쳐나는 25㎏짜리 썰매견을 돌보는 나날이 얼마나 고된지, 그러면서도 행복했는지 이야기한다. 언제 어디에서나 등장하는 ‘작은 지옥’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지옥이 없는 길로 가는 것(그건 불가항력이다)이 아니라 점점 더 적은 힘으로도 지옥을 건널 수 있게 되는 것, 즉 변화하는 것이다. 변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바꿔 말해 엔딩이 필요하다. 끝은 경험이고 변화다. 

엔딩에 이르면 많은 작가가 ‘현자’가 된다. 모든 날이 다 좋았고 모든 것이 다 의미 있었다고 말하는 식이다. 돌아보는 행위가 무슨 마법의 제스처라도 되는 걸까? 한때는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결말들을 언제나 조금씩 의심하는 편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도 모든 것이 다 중요하다는 얘기로 끝난다. 모든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경험이라 불리는 거대한 것으로 변해 결국에는 삶 자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김없이 ‘현자’ 타임. 그런데 이번엔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 들었다. 돌아보는 행위가 마법의 제스처였던 것이 아니라 변화가 곧 마법이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변하면 과거는 달라 보일 수밖에 없다. 끝은 변화의 완수다. 변형과 변화가 삶이 행진하는 방식이며, 불행을 불행으로만 보지 않게 되는 것이야말로 삶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방식이다.

가끔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살다 보니,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아플 때 약을 먹는 것처럼 분명하달까. 문학이 아니라면 우리는 누구에게서도 이만큼 구체적으로 인생을 배울 수 없다. 살아가면서 겪어야만 하는 상실과 후회, 절망과 좌절, 나아가 늙고 병들고 죽는 그 모든 그늘진 시간을 견뎌 내기 위해서는 정보를 처리하고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이 아니라 감정을 처리하고 관계 속에서 자신과 타인이라는 존재를 습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작은 지옥’은 대개 우리 마음속에 있고, 그 마음 지옥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실패의 왕좌들만큼 적당한 친구가 없다. 위대한 작가란 위대한 실패자에 다름 아니고, 위대한 실패자는 그 자체로 새로운 길의 개척자다. 그들의 여정은 우리로 하여금 고통스러운 사건을 변화라는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을 읽으면 기적처럼 희망이 생긴다거나 순식간에 대단한 위로를 받게 된다는 것도 과장일 수밖에 없다. 책을 통해 대비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벌어질 일은 벌어지고 만다. 문학을 읽는다고 해서 일어난 일을 바꿀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문학을 읽는 걸까. ‘드라이브 마이 카’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영화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는 좋은 문학 작품이란 한 사람이 성실하고 용감하게 자신의 삶과 마주한 결과라고 말했다. 자신의 비극과 마주한 기록은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자신의 상처를 견딜 만한 것으로 인식하게 해 준다. 변화엔 좋고 나쁨이 없다. 그러니 누구도 대신 의미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의미는 오직 변화의 당사자만이 만들 수 있다. 문학을 통해 우리는 의미 찾기를 연습한다. 변화에서 좋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게 된다. 모든 엔딩은 변화에 대한 변론이자 변화를 향한 의지다.

콜드웰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끝을 향할 때쯤, 그는 ‘과거의 나에게 말했으면 좋았을 다섯 가지’를 언급한다. ① 아빠는 당신이 듣지 못하는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② 신체와 더불어 살아가기 ③ 걱정되고 주눅 들고 불안할지라도 당당하자 ④ 모든 것,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중요하다 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살아 있음의 기적을 기억하자. 그리고 이 모든 걸 포함하는 마지막 문장, “추억은 컴퓨터의 메인보드와 같다. 많은 경험으로 추억을 쌓으면 언제든 되돌려 받는다”.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를 믿는다. 이제 나는 내 추억을 믿는다. 언젠가 그 모든 일이 내게 말을 걸어올 거라고, 그날 그 고통을 변화로 바라보게 할 거라고, 반드시 무언가를 되돌려줄 것이라고 믿는다. 변화라고 생각하면 끝은 언제나 시작일 수밖에 없다.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평론 당선,한국문학평론가협회젊은 평론가상

Plus Point

게일 콜드웰

사진 문학동네
사진 문학동네

미국 작가이자 비평가다. 1951년 미국 텍사스주 애머릴로에서 태어났다. 텍사스대에서 미국학 석사학위를 받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1981년 서른 살에 작가가 되고자 보스턴으로 향했다. 1985년부터 2009년까지 ‘보스턴 글로브’의 북 리뷰 편집자로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했고, 2001년 현대인의 삶과 문학에 대한 탁월한 통찰과 관찰을 인정받아 퓰리처상(비평 부문)을 받았다.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먼 길로 돌아갈까?’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