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으로 물든 비양도. 사진 최갑수
초록으로 물든 비양도. 사진 최갑수

올여름에는 제주 동쪽 여행을 즐겨보자. 오름과 바다, 숲 등 다채로운 제주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 종달리에는 오름이 있고, 평대리에는 숲, 교래리에는 곶자왈이 있다. 성산항에서 배를 타고 가는 우도는 섬 제주가 품은 또 다른 섬이다. 

지미오름에서 내려다본 풍경. 사진 최갑수
지미오름에서 내려다본 풍경. 사진 최갑수

가장 제주다운 풍경을 꼽으라면 오름이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구릉이 이리저리 이어진 제주도의 동쪽 들녘은 오름의 천국이다. 차를 타고 가다 보이는, 평지에 불쑥 솟아오른 것들은 다 오름이다. 특히 종달리 일대에 많은데, 이들 오름 가운데 제주를 대표하는 오름이라면 아마도 다랑쉬오름일 것이다. 다랑쉬라는 이름은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고 하여 얻었다. 월랑봉(月郞峰)인데, 매끈한 곡선과 가지런한 외형으로 ‘오름의 여왕’으로도 불린다.

다랑쉬오름은 해발 382m로 꽤 높은 오름에 속한다. 등산로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가파른 풀밭을 지그재그로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20~30여 분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시야가 확 트인다. 북서쪽으로 비자림과 돋오름, 남동쪽으로 용눈이오름, 중산간의 풍력발전소 등이 잘 보인다. 멀리 제주의 북쪽과 동쪽 해안까지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발아래로는 커다란 분화구가 까마득히 내려다 보인다. 분화구는 산의 외형과는 반대로 깔때기 모양으로 움푹 패어 있는데, 다랑쉬오름의 분화구 깊이는 백록담과 같은 115m, 바닥은 지름 30m다.

구좌읍 종달리에 자리한 지미오름에서는 제주 동쪽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지미(地尾)란 이름은 ‘땅의 꼬리’란 뜻이다. 해안을 등지고 가파른 비탈을 30분쯤 오르면 정상.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서로 마주한 모습이 한눈에 잡히고 우도를 오가는 여객선과 두문포 마을도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한라산을 정점으로 제주 동쪽의 오름 군락들도 첩첩이 겹친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교래리 곶자왈. 사진 최갑수
신비로운 분위기의 교래리 곶자왈. 사진 최갑수

제주에서 만나는 신비로운 숲

구좌읍 평대리 비자림은 제주 숲의 절정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아름드리 고목 수백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비자림의 넓이는 44만6200㎡(약 13만5000평)에 달한다. 수령 300~800년의 고목 2800여 그루가 모여있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숲이다. 숲 한가운데에는 이 숲에 처음 뿌리를 내린 800년 된 조상 나무가 있는데, 키 14m, 지름 6m에 달한다. 비자나무가 1년에 고작 1.5㎝를 자란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나무는 얼마나 오랜 세월을 지켜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비자림은 산책로가 잘 닦여져 있다. 울창한 숲 사이로 햇살이 들어와 부챗살처럼 퍼진다. 숲은 싱그러운 내음이 가득하다. 비자나무 몸뚱이를 칡덩굴처럼 감은 줄사철나무와 촉촉한 나무 위에 자란 난초가 숲의 싱그러움을 더한다. 바닥에 깔린 화산송이는 발소리까지 빨아들일 것처럼 부드럽다. 비자림은 현실 세계에서 벗어난 느낌을 준다.

곶자왈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숲이다.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용암 지형, 즉 용암이 굳어가면서 쩍쩍 갈라져 생긴 돌무더기 땅을 비집고 식물들이 자라 숲을 이루었다. ‘곶’은 숲을, ‘자왈’은 돌과 가시나무 들판을 뜻하는 제주말이다. 나무와 덩굴식물, 암석 등이 뒤범벅이 돼, 수풀처럼 어수선한 숲이 빚어내는 풍경은 숨이 멎을 듯 경건하다.


지중해 부럽지 않은 제주 바다

우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섬이 꼭 소가 누운 것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완만한 언덕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해안 절벽, 홍조단괴가 부서져 생긴 독특한 해변 등 자연경관에 인간이 일군 진초록 밭과 검은 돌담, 알록달록한 지붕이 어우러져 제주 본섬과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우도 여행은 주로 천진항을 등지고 시계 방향으로 도는데,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홍조단괴해변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홍조단괴가 해안으로 밀려 나와 생겼으며, 에메랄드빛 바다와 흰 모래가 어우러져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경을 빚어낸다. 홍조단괴는 홍조류가 생리 과정에서 탄산칼슘을 축적해 돌처럼 굳은 것이다. 우도 8경에 드는 홍조단괴해변은 한때 서빈백사나 산호사해변으로 불렸는데 백사장을 이룬 알갱이가 산호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전기차로 조금 더 달리면 눈부시게 하얀 등대가 나온다. ‘망루등대’라고 불린다. 등대 옆에는 봉수대가 있다. 조선 시대 군사 통신수단으로, 위급한 사태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현무암 계단을 따라 봉수대에 올라가도 된다. 등대 옆 바다에는 원담(독살)을 재현했다. 전통 어업 방식으로, 밀물 때 바닷물을 타고 온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가두는 일종의 돌 그물이다. 하트 모양으로 쌓아서 여행객에게 인기다.

득생곶등대를 지나면 곧 하고수동해수욕장이다. 여름철 물놀이하기 좋고, 해녀와 인어공주 조형물이 유명하다. 경사가 완만하고 파도가 부드러워 아이들이 안전하게 해수욕할 수 있다. 카약을 비롯해 즐길 거리도 다양하다. 해수욕장 주변으로 이국적인 카페가 늘어서 ‘사이판 해변’이라는 별명이 있다.

우도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우도봉과 검멀레해변이다. 우도봉은 우도의 유일한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완만하지만, 반대쪽은 바다로 떨어지는 절벽이다. 검멀레는 ‘검은 모래’라는 뜻. 모래밭에 선 절벽은 얇은 퇴적층이 수천수만 겹 쌓인 바위다. 웅장한 모습이 거대한 지붕처럼 보이기도 하고, 바다로 나가는 고래처럼 보이기도 한다. 검멀레해변 가기 전,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를 주인공으로 한 테마파크도 들러볼 만하다.



▒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여행수첩

먹거리 우도는 보리와 마늘, 쪽파, 땅콩을 주로 재배한다. 땅콩이 특히 많은데, 이 때문에 어느 카페에 들어가도 땅콩아이스크림이 맛있다. 교래리는 토종닭 마을로도 유명하다. 주위에 닭고기 전문점도 많은데, 특히 교래손칼국수는 토종닭칼국수로 인기몰이를 하는 집이다. 교래손칼국수는 진한 국물 맛의 토종닭칼국수로 유명하다. 좀녀네집은 해녀들이 직접 잡은 싱싱한 해산물과 전복죽이 맛있는 곳. 동복~김녕 구간 해안도로(구좌해안로)변에 자리한다. 제주시 골막식당은 진한 육수와 굵은 중면이 어우러진 고기국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뽀얀 국물 속에 굵은 면이 담겨 있고 두툼한 돼지고기가 푸짐하게 올려져 있다.

섬 속의 섬 속의 섬 제주도가 우도를 거느린다면, 우도는 비양도를 거느린다. 그러니까 비양도는 섬 속의 섬 속의 섬인 셈. 일출 때면 해가 꼭 바다 위로 날아오르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우도와 짧은 다리로 연결된다. 비양도는 ‘백패킹 성지’로 불린다. 비양도 망대 근처에 있는 연평리야영지는 백패커라면 누구나 한 번쯤 텐트를 치고 싶어 하는 곳이다. 우도와 성산일출봉 가까이 있는 세화해변은 제주 동쪽을 대표하는 해변이다. 인근 함덕해변이나 월정리해변에 비해 한적하고, 쪽빛 바다가 여유로운 시간을 보장한다. 주변에 오름도 많아 바다와 중산간을 함께 즐기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