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의 노랫말처럼 우리 인생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36개 언어로 번역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콰이어트’로 내향인의 저력을 입증했던 수전 케인이 달콤 씁쓸함의 가치를 담은 책 ‘비터스위트’로 돌아왔다. 책에는 그동안 우리가 부정적으로 여겨왔던 슬픔의 신비와 슬기로움에 대한 증거가 차고 넘친다.
혹시 당신도 행복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는 편인가? 감동적인 TV 광고를 보면 눈물이 핑 도는가? 슬픈 음악을 들으면 고양감이 드는가? 가슴 아프다는 말에 강한 울림을 받나? 몇 가지가 해당한다면 달콤 씁쓸한 기질의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기쁨과 쾌활, 공격성과 승리, 완벽함이 지배하는 세상에 브레이크를 걸며, 세상을 움직이는 진짜 힘은 슬픔과 갈망의 하모니라고 주장하는 수전 케인의 인터뷰를 만나보자.
그는 건국 이후 아메리칸드림을 지탱해온 승자 중심의 미국 문화, 번영 신학, 강제된 쾌활함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고 지적하며, 학교와 기업, 리더가 ‘슬픔의 통로를 터줄 때 놀라운 기적이 벌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연민의 시대, 우월감을 버리고 슬픔을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다. 프린스턴대학과 하버드대학 법대 우등 졸업생이었던 케인은 33세에 월스트리트의 42층 건물에서 로펌 변호사로 일하다, 내적인 갈망을 좇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비터스위트’는 10년간에 걸친 그의 저작물이다.
‘비터스위트’, 일명 달콤 씁쓸함이란 무엇인가.
“갈망과 사무침과 슬픔의 감정에 잘 빠지는 성향이다. 삶에는 빛과 어둠, 출생과 죽음, 달콤함과 씁쓸함이 서로 붙어있다는 아이러니를 인정하는 태도다.”
멜랑콜리(melancholy·장기적이고 흔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 기질을 타고나는 사람이 따로 있나.
“연구에 따르면 5~20%의 아기는 삶의 찬란함뿐 아니라 불확실성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기질로 나타났다. 고도의 반응성을 타고 난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 테스트가 있다.
만약 당신이 단조풍의 슬픈 음악에 빠져든다면, 비 오는 날에 위안과 영감을 느낀다면, 음악과 미술⋅자연의 아름다움에 강하게 반응한다면 당신은 달콤 씁쓸한 기질의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당신이 찾은 이 감정의 핵심은 무엇인가.
“멜랑콜리의 핵심은 교감을 향한 열망과 귀향을 향한 바람이다.”
나약함이 아니고?
“멜랑콜리는 고요한 힘이자 파워풀한 존재 방식이다. 달콤 씁쓸함은 고통에 대응하는 법을 알려준다. 슬픔을 창의성, 초월, 사랑으로 전환한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멜랑콜리를 우울증과 나르시시즘으로 깎아내렸다. 실제로 우울이라는 병리적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
“중요한 질문이다. 두 상태는 자주 혼동된다. 우울증은 일종의 막힘이다. 어둠, 상실, 절망, 열등감, 좌절에 꼼짝없이 막힌 기분이다. 달콤 씁쓸함은 어둠만이 아니라 빛도 의식한다. 상실만이 아니라 사랑도 의식한다.
이질적 상태를 동시에 볼 수 있기에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호기심과 즐거움을 느낀다. 플라톤도 찰스 다윈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도 재즈 가수 니나 시몬이나 레너드 코헨도 멜랑콜리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위대한 시인과 철학자, 예술가와 정치가는 우리와는 다른 먼 곳을 바라본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구에 불시착한 것 같은 태도랄까. 그들의 눈은 무엇을 보는 걸까.
“완벽한 세계(본향), 그 갈망을 일반인보다 뼈저리게 느끼는 것 같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저 무지개 너머 어딘가’를 찾는 것도 근원은 같다. 현실에 없는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향한 갈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게 인간성의 본질이다. 수많은 종교에서 에덴, 메카, 시온에 영성을 부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수전 케인은 멜랑콜리의 핵심 감정인 슬픔과 갈망은 엄청난 추진력을 만든다고 첨언했다. 우리가 ‘월광 소나타’ 같은 곡을 연주하고 화성으로 보낼 로켓을 만드는 것도 뿌리는 갈망이라고.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가 대장정에 나서도록 견인한 추진력도 향수였다.
‘해리포터’에서부터 ‘말괄량이 삐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사랑하는 소설 주인공이 대부분 고아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실을 겪은 후 아이들은 갈망의 모험을 떠난다.
슬픔은 어떤가? 당신은 영화 ‘인사이드아웃’에서 ‘슬픔이’의 탄생에 일조한 걸로 알고 있다.
“나는 당시 미국의 영화 제작사인 픽사에서 내향적인 영화 제작자들의 재능 활용에 대해 간부 회의를 주재하며 피트 닥터 감독을 만났다. 그에게 ‘슬픔의 과학’을 가르쳐준 사람은 캘리포니아대학 심리학과 교수 켈트너다. 켈트너는 유년기에 가정 파탄을 겪고 사랑하는 동생과 사별하며 자기 정체성의 핵심 요소를 슬픔이라고 정의했다.
슬픔이의 힘은 실로 거대하다. 소심이는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버럭이는 이용당하지 않게 보호해주지만, 슬픔이는 연민을 자극해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느끼게 해준다. 피트 닥터의 말대로 슬픔이가 없었다면 ‘인사이드아웃’은 망했을지도 모른다.”
슬픔은 어떻게 연민이 되나.
“연민은 본능이다. 슬픔보다 먼저다. 켈트너의 책 ‘선의 탄생’에 요약돼 있듯이 인간은 서로의 어려움에 반응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아기는 뇌가 완전히 발달하면 산도를 통과하지 못하기에 모든 동물 중 가장 취약한 상태로 세상에 나온다. 오랜 시간 의존적인 어린아이를 돌보기 위해 인간은 연민을 키워야 했다. 인간은 그 연민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진전시킨다. 슬픔을 느끼면서도 곤궁에 처한 타인을 돌보는 능력으로 지금의 문명에 이르렀다.”
‘적자생존’이 아니고?
“적자생존은 백인 상류층의 우월성을 선동한 사회진화론자 허버트 스펜서와 그의 동료들이 처음 사용했다.
다윈은 오히려 온화하고 멜랑콜리한 영혼이었다. 자연의 잔인성에도 불구하고 아픈 고양이를 핥아주는 개, 눈먼 동무에게 먹이를 가져다주는 까마귀 등에게 주목했다. 다윈에게 더 맞는 구호는 ‘선자생존’이다. 그는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이라는 책에서 가족과 인류를 넘어 다른 종까지로 연민 작용을 확대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고귀한 일이라고 주장했으니까.”
연민의 분량은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무엇인가.
“우월감이다. 내가 특별하다는 우월감은 남들의 슬픔은 물론 자신의 슬픔에도 반응해주지 못한다.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굶고 있는 아이를 봐도 연민의 신경계인 미주신경에 불이 붙지 않는다.”
당신은 미국의 긍정 문화, 긍정 심리학, 강제적 쾌활함, 번영 신학 등을 비판했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현재의 우월한 미국을 만든 힘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왜 하필 지금, 그 ‘슬픔의 권리’를 찾아야 하나.
“언급한 것처럼 미국의 긍정 문화는 미국의 번영에 중요한 근원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격렬한 문화 전쟁과 분열의 근원이기도 하다.”
나는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아메리칸드림의 속물성과 판타지, 몰락의 슬픔을 느꼈다. 당신은 미국 명문대를 지배하는 승리의 분위기, 쾌활함과 투지가 문화적인 압박이 만들어낸 허황한 이미지라는 걸 어떻게 알아냈나.
“멜랑콜리를 연구하면서 프린스턴대학 재학생들을 면담 조사했다. 그들이 답을 주더군. 노력하지 않아도 승자처럼 보여야 한다고. 공부를 조금밖에 안 한 것 같은데 시험은 잘 봐야 하고, 농담도 잘하고, 개성적이되 틀에 맞출 줄도 알아야 했다는 거다. ‘노력이 필요 없는 완벽함’이라는 허구 위에서 젊은 승자들은 ‘모든 것이 좋다’고 웃으며 병들어 간다.
마냥 행복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직장에서도 절대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고 화장실에 가서 울라고 지시하는 긍정의 횡포가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결속을 이루고 싶다면, 진실을 말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면의 패자와 승자를 같이 포용해야 한다.”
특별히 슬퍼하는 리더가 화내는 리더보다 더 높은 충성심을 끌어낸다는 발견이 인상적이었다.
“리더가 화내지 않고, 슬픈 감정을 드러낼 때 구성원은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느낀다. 진정성은 충성심을 분발시킨다. 그것이 뮌헨기술대학의 연구가 슈바츠 뮐러가 화내는 리더와 슬퍼하는 리더를 실제로 비교·분석한 결과였다. 직원들은 ‘프로젝트가 망가지다니 화가 나는군!’이 아니라 ‘이런 일이 있다니 슬프군!’이라고 반응하는 상사에게 동기부여를 받았다.”
일터에 슬픔의 감정이 필요한가.
“꼭 필요하다. 멜랑콜리는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셰일 오일의 굴착 시설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로 활약한 릭 폭스도 마초적 문화를 깨고, 팀 내에 상담가를 초빙해서 고통스러운 유년, 문제 많은 결혼 생활, 아픈 자식 이야기를 공유하도록 도왔다. 서로의 고통을 정상으로 여기는 문화가 퍼지자 생산성은 높아지고 사고 발생률은 84%나 줄었다. 재정, 이혼 등 개인적 고민에 서로 마음 써주고 슬픔이 흐르도록 열어주는 문화를 만든 미시간주의 진료비 수금팀과 미드웨스트 빌링팀 연구 사례도 있다. 팀은 이전보다 수금 속도가 두 배 이상 빨라졌고, 이직률은 2%대로 떨어졌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디폴트는 ‘편안한 슬픔’이다.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다는 건 문제가 아니다.”
알랭 드 보통은 한국인이 멋진 멜랑콜리를 갖고 있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희망도 두려움도 공유할 줄 안다고. 마지막으로 더 높은 차원의 슬픔의 기쁨을 누리기 원하는 한국인을 위해 조언을 부탁한다.
“알랭 드 보통의 말에 공감한다. 나도 한국인의 그런 면을 좋아한다. 당신들은 이미 더 높은 차원의 연민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한국 영화와 음악은 아름답고, 파국의 상실을 견뎌내고, 빛과 어둠, 슬픔과 기쁨을 다 포용하고 있다. 덧붙여 조언하면 ‘사무침’에 가 닿기 위해 여러분이 단조 음악을 가까이하길 권한다. 슬픈 음악에 공명하면 사회 인지 감수성이 높아진다. 세계의 민요 중엔 멜랑콜리를 반영한 곡이 가장 많다. 바흐와 모차르트의 많은 곡,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들으면, 패배와 불완전함과 깨어짐이 얼마나 큰 관대함으로 우리를 묶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