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옛 터키) 사진가이자 시각 예술가인 쳄레 예실 괴넨리(Cemre Yeşil Gönenli)는 튀르키예 역사가 레샤트 엑크렘 코수(Reşat Ekrem Koçu·1905~75)가 집필한 ‘이스탄불 백과사전(Istanbul Ansiklopedisi)’을 봤다. 이 백과사전은 오스만 제국 시대부터의 이스탄불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었다. 이 책 ‘가운데 사진’을 뜻하는 ‘Fotoğraf’ 섹션에서 작가는 흥미로운 서술을 발견했다.
“오스만 제국의 제34대 술탄 압둘 하미드 2세(Abdul Hamid II·1842~1918)는 재위 25주년이 되는 때, 사면을 시행하고자 했다. 한데, 그는 누구를 풀어줄지 수감자의 사진에 기반해 스스로 정하고자 했다.” 작가는 이 언급을 보고 바로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단지 사진을 보고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그러니까 누군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작가는 이스탄불대의 희귀품 도서관에서 오래된 사진 아카이브를 뒤지다, 백과사전에서 언급된 수감자의 사진을 비로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눈에 띈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수감자들의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무거운 철제 사슬을 몸의 일부와 연결한 모습이었다.
수소문 끝에 한 역사가가 이 사진들과 관련한 사실을 들려주었다. 압둘 하미드 2세는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라의 번영을 알리는 데 사진 매체가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는 이을디즈 궁전(Yildiz Palace)에 사진 스튜디오를 짓고 각종 사진 앨범을 만들고 유포해 국가의 번영을 알렸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이 또 있었으니 그것은 공상과학소설과 범죄소설 그리고 관상학과 골상학이었다. 그는 어느 날 범죄소설에서 ‘엄지손가락 마디가 집게손가락 마디보다 긴 범죄자는 살인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는 문장을 읽는다. 범죄자에 대한 사면을 계획 중이던 그는 이 소설에 담긴 사이비 과학에 영감을 받아 엄지손가락 마디가 집게손가락 마디보다 짧은 사람을 사면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형벌을 유지하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그는 손가락이 잘 보이도록 수감자들의 사진을 찍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손가락 마디 길이라는 단 한 가지 신체적 특성에 따라 수감자가 얼마나 더 범죄형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다니 그리고 그것이 사면의 근거라니. 가시적인 신체의 특징을 통해 비가시적인 정신세계(이 경우 범죄자 유형)를 파악하려는 이 같은 사고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물론 비과학적이다. 하지만 관상학에 의거해 범죄자를 유형화해 가려내고 구분 짓고자 한 시도는 역사에 종종 있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우생학자, 인류학자, 통계학자였던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1822~1911)은 인간 집단을 특징짓는 데는 공통된 신체 유형이 존재한다고 봤던 인물이다. 그 역시 개별적인 범죄자들의 사진을 합성하면 공통적인 범죄형 얼굴을 찾을 수 있다고 믿어, 인간 유형을 사진으로 증명해내고자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압둘 하미드 2세의 시도 역시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유형학적 사고를 드러내고 이 과정에서 사진을 활용한 역사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손가락 마디 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작가는 압둘 하미드 2세가 남긴 수감자들의 사진을 토대로 ‘꿈과 현실: 용서의 안내서와 처벌의 안내서(Hayal & Hakikat: A Handbook of Forgiveness & A Handbook of Punishment)’를 펴냈다.
오래된 사진 앨범을 닮은 듯한 표지를 열면, 책 안에는 위쪽이 제본된 두 개의 소책자가 담겨 있다. 왼편의 소책자에는 ‘꿈’을 뜻하는 튀르키예어 ‘Hayal’이 쓰여있고 앞서 언급한 첫 번째 종류의 사진, 즉 손이 잘 보이도록 찍힌 수감자들의 사진이 실려있다. 오른편의 소책자에는 ‘현실’을 뜻하는 튀르키예어 ‘Hakikat’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고 두 번째 종류의 사진, 즉 철제 사슬에 억류된 수감자들의 사진이 실려있다.
‘꿈’의 소책자에서 죄수들은 용서를 기다리며 손가락이 잘 보이도록 가지런하고 공손하게 두 손을 보여준다. 이들은 자유의 꿈을 품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을 것이다. 용서받길 바라는 이들의 석방에 대한 열망이 이 이미지에 담겨 있다. 하지만 ‘현실’의 소책자에서 이들은 굵은 철제 사슬에 연결돼 짐작하건대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에 갇혀 있는 상태다. 다시는 풀려날 기회가 없을지 모를 무거운 사슬에 묶인 수감자들의 이미지는 실제 이들이 놓여있는 혹독한 현실을 보여준다.
두 개의 소책자를 한 장씩 위로 넘기면서 책을 보면, 공손하고 순응하는 손을 보여주는 신체와 사슬에 억압된 신체라는 두 가지 다른 유형의 이미지가 충돌한다. 이는 곧 두 가지 상황의 충돌을 상징한다. 왼쪽 면은 사면으로 풀려날지 모르는 희망이, 오른쪽 면은 평생 투옥될 이들의 무거운 운명이 담겨 있다. 책 안에 두 개의 소책자를 만듦으로써 책의 구조를 통해 작가는 꿈과 희망이 무겁고 지독한 현실과 충돌함을 책 전반에 걸쳐 보여준다.
“독자가 빠른 속도로 페이지를 휘리릭 넘겨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책은 어느 정도 직관적인 방식으로 설계됐다. 책의 구조에 대해 이런 결정을 한 것은 압둘 하미드 2세가 이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과도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덮을 때 꿈과 현실이 서로 부딪힌다는 점을 꿈을 나타내는 책자와 현실을 나타내는 책자가 물리적으로 서로 맞닿게 함으로써 보여주고자 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역사 속 사진이 만들어진 목적을 성찰하고, 또한 자의적이고 비과학적인 권력자의 논리가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혹독한 역사의 한 장면을 보게 된다.
이는 한편으로 먼 나라의 이야기로 여길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현실에 존재하는 부조리한 현재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는 손가락의 길이로 운명이 결정되진 않지만 우리의 자유와 억압을 결정짓는 요소들은 무엇이며, 그 요소들을 결정짓는 것은 또 무엇인지, 동시대의 지배적인 판단 체계와 사회적 구조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들 중 누군가는 꿈을 이루었을까? 아니면 현실 속에 갇혀 운명을 마감했을까. 수감자들의 사진은 남았지만 개별 수감자의 이름이나 운명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작가는 이 작업이 과거의 것일 뿐 아니라 현재에 대해 말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작업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길 희망한다는 작가의 말을 전한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