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퀸’의 한 장면. 사진 IMDB
영화 ‘더 퀸’의 한 장면. 사진 IMDB

2022년 9월 8일(이하 현지시각),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영면에 들었다. 영화 ‘킹스 스피치’에서 보았듯 말더듬이라는 장벽을 안고도 성실하게 왕의 운명을 살았던 조지 6세처럼, 그의 장녀였던 여왕도 26세에 왕관을 물려받은 이래 70년간 영국과 왕실을 품위 있게 지켜왔다고 평가받는다.

1997년은 여왕이 시대의 급변을 절감한 해였다. 5월 1일, 18년 만에 보수당이 패하고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총리로 당선됐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국의 왕이었지만 개혁파 총리가 반가울 리 없었다. 심지어 그의 아내는 왕실 폐지론자였다. 다이애나 스펜서가 죽은 건 8월 31일 새벽이었다. 두 사건은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 대중의 기대와 맞물리면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변화의 바람, 그 한가운데로 여왕을 몰고 간다. 

당시 여왕은 왕실의 전통에 따라 스코틀랜드에서 가족과 함께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 어린 두 왕세손의 어머니였던 다이애나의 죽음은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하지만 일반인의 경우에도 애인과 휴가를 보내다 교통사고로 죽은 전 며느리를 시집이 나서서 애도하진 않는다. 하물며 왕실의 법도에는 죽음에도 절차가 있고 슬픔에도 예법이 있다. 서둘러 런던으로 돌아갈 일도, 공식 성명을 낼 일도 아니었다. 여왕은 그렇게 생각했다.

TV에는 온종일 다이애나의 모습이 나왔다. 울고 화내고 슬퍼하고 분노하며 다이애나를 추모하는 사람들을 반복해서 비추었다. 그녀를 잃은 슬픔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여왕과 왕실에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여왕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의 도리를 하라, 압력이 거세졌다. 왕실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여론까지 들끓었다.

귀족 가문 출신이기는 했지만 다이애나는 평범의 재를 털고 왕세자빈이 된 신데렐라였다. 하지만 ‘왕자님과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와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불륜과 별거와 이혼, 유명인들과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에 극적인 죽음까지 더해지면서 대중의 상상력과 말초적 감정을 폭발시킬 막장 드라마의 요소가 완성된 셈이었다. 

어떤 것이 이익인가, 누구를 편드는 게 이득인가, 저쪽의 약점을 어떻게 이쪽의 장점으로 만들 것인가, 계산하는 게 정치다. 언론은 다이애나의 죽음을 진보 세력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 대중의 분노를 부채질한다. ‘국민의 왕세자빈’이라며 발 빠르게 다이애나를 추켜올린 총리실도 대중 앞에 나서야 한다고 왕실을 종용했다.

영화 ‘더 퀸’. 사진 IMDB
영화 ‘더 퀸’. 사진 IMDB

“왕관을 쓴 자, 하루도 편할 날 없다”

여왕은 왕실이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고 믿었다. 전통과 품격을 지키며 살아온 것을 자부했다. 그런데 며느리를 구박하고 내쫓은 야박한 시어머니라며 손가락질당했다. 다이애나의 죽음을 아파하지도 않는다며 비난이 쏟아졌다. 인정머리 없는 왕실은 필요 없다며 적대감을 드러내는 국민을 처음 접한 여왕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여왕의 고민은 깊어진다. 결국 오랜 전통과 왕실의 법도를 깨고 런던으로 돌아온다. 버킹엄궁에 조기를 게양하고 다이애나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기로 한다. 상실감에 빠진 민심을 위로해야 한다는 총리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장례식 전날인 9월 5일, 여왕은 이례적으로 대국민 연설을 한다. 

“명예롭게 살아온 그분에게 우린 국민의 비위나 맞추라고 협박했어. 이 나라의 군주가 왕실에 먹칠한 사람을 조문하고 있는 거야.”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여왕을 보며 총리는 뜻밖에도 화가 난다.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으며 궁지에 몰린 왕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총리는 여왕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국민 세금으로 무위도식하는 노인네는 당해도 싸다’고 조롱하는 아내, ‘억지로 등 떠밀려 나온 표정을 보라’며 비아냥대는 언론과 보좌진들에게 여왕을 변호하는 사람이 300년 영국 헌정사상 가장 급진적이라고 평가되던 총리인 건 아이러니다. 

“가만있어도 왕정은 사라질 거야. 내 자리는 하루아침에 없어지겠지.” 세상의 변화를 절감하며 여왕은 쓸쓸하게 말한다. 14개로 갈라진 뿔을 왕관처럼 썼지만, 그 늠름한 아름다움 때문에 사냥꾼의 제1 표적이 되는 사슴이 여왕의 입장과 마음, 왕실의 현실과 미래를 대변한다. 

‘위선에 저항하다 보니 고통이 따랐다’고 다이애나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전통과 예법을 고집하는 왕실과 맞서는 그녀가 용기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직설적인 감정 표현만 진실일까? 기쁨과 슬픔을 속으로 감추고 삭이는 것은 거짓일까?

“요즘 사람들은 감동과 눈물을 원하지. 하지만 난 느낌을 표현하지 못해. 그저 가슴에 간직할 뿐. 그렇게 배웠어. 국민도 그런 여왕을 원하는 줄 알았지.” 전통의 수호자로 평생을 살아온 여왕이었다. 모두가 ‘예스’ 할 때 ‘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귀한 것처럼, 가볍고 단순하고 쉬운 것만 선호하는 시대, 품위와 전통과 예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존재도 필요한 게 아닐까, 영화는 질문한다. “이건 여왕님을 위한 거예요.” 

왕실을 원망하는 글이 적힌 카드와 다이애나를 추모하는 꽃다발이 산처럼 쌓인 궁 앞을 돌아보던 여왕에게 어린 소녀가 꽃을 건넨다. 그렇게 집단 히스테리처럼 번져가던 대중의 슬픔은 조금씩 잦아든다.

‘위험한 관계’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이 만든, 품격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식민 지배 역사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는 영국 왕실이지만 여왕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을 담았다. 여왕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더 크라운’을 쓴 피터 모건이 시나리오를 맡아 골든 글로브 각본상을 받았다. 여왕을 연기한 헬렌 미렌도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평등하지 않다. 인간은 저마다 자신의 생을 살아갈 기회를 얻는다는 면에서만 평등하다. 셰익스피어는 “왕관을 쓴 자, 하루도 편할 날 없다”고 했지만 누군들 편하게만 살아갈까. 부모의 이름을 가진 자, 그 의무를 감당해야 하고 과장과 부장과 사장의 명함을 가진 자, 그 책임을 다해야 하듯.

여왕도 시대의 변화에 상처 입고 고민하며 외로울 때가 있었다. 하물며 우리들, 범인(凡人)의 삶이야….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