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정호수의 가을. 2 피톤치드 향 가득한 국립수목원 탐방로. 3 허브아일랜드 산책로. 4 광릉. 사진 최갑수
1 산정호수의 가을. 2 피톤치드 향 가득한 국립수목원 탐방로. 3 허브아일랜드 산책로. 4 광릉. 사진 최갑수

남양주에서 포천으로 이어지는 47번 국도에서 국립수목원으로 향하는 98번 지방도로 갈아타자 분위기가 싹 바뀐다. 어수선한 간판은 사라지고 쭉쭉 뻗은 전나무들이 몰려온다. 차창을 내리면 밀물처럼 밀려오는 시월의 공기. 차갑고 싱그럽고 달짝지근하다.

차창 밖 전나무 뒤로는 서어나무와 떡갈나무가 스친다. 지나치며 언뜻 보아도 보통 나무들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나무들은 일제강점기에 시험림으로 심어진 것들이다. 그러니까 100년을 훌쩍 넘긴 나무들이라는 말이다.

광릉숲의 정확한 명칭은 국립수목원이다. 경기도 포천 소흘읍에 있다. 국립수목원은 한때 광릉숲으로 더 많이 불렸는데, 그 이유는 수목원 가까운 곳에 광릉이 있기 때문이다. 광릉은 조선 7대 임금인 세조와 그의 왕비 정희왕후를 모신 곳이다. 세조가 누군가. 조선의 왕 가운데 가장 잔인했던 이다. 조카의 왕위를 빼앗고 수많은 신하의 목숨을 앗아갔다. 서슬 퍼랬던 생전의 모습은 죽어서도 이어졌다. 누구도 함부로 능 주위의 숲을 침범하지 못했다. 조선 왕실은 광릉을 중심으로 사방 15리(약 3600㏊)의 숲을 능에 속하는 것으로 지정해 조선 말기까지 철저하게 보호했다. 한국전쟁 때도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았고 이후에도 자연재해나 인위적인 훼손이 없었다. 그러다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7년에 광릉수목원으로 조성됐다. 1999년에 국립수목원으로 승격됐고 2010년에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그러니까 이 숲은 540년 동안 온전히 보전되고 있는 것이다.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정확히 아홉 시가 돼서야 숲에 들어설 수 있었다. 국립수목원에는 1분도 일찍 들어갈 수 없다. 정해진 인원만 들어갈 수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 해야만 한다. 입장객 수를 넉넉히 받아 예약하는 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입장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꼭 오고 싶은 사람만 들어 오라는 뜻일 것이다. 실제로 수목원에 한 걸음 들어서면 왜 이렇게 방문을 귀찮게 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홉 시면 해가 중천에 떴을 시간. 하지만 숲속은 어둑어둑하다. 공기도 서늘해서 숲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소름을 오스스돋게 만든다. 수목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길은 인공호수인 육림호에서 산림동물보존원(동물원)까지 이어지는 전나무숲 구간이다. 길이는 약 1.7㎞. 1927년 오대산의 월정사 전나무의 종자로 조림한 것이 지금은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당시 5년생 전나무를 심은 것이라니 수령이 90년은 넘는다. 신화 속 거인족처럼 커다란 나무들이 살고 있다.

국립수목원은 시험림까지 포함한 면적이 총 2118㏊(약 660만 평)에 달한다. 우리에게 공개된 수목원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마저도 제대로 둘러보려면 최소 3시간쯤은 잡아야 한다. 아이나 부모와 함께라면 육림호까지만 다녀와도 된다. 느린 걸음으로 30분 거리다. 영롱한 햇살이 내려앉는 작은 호수 주변으로 예쁜 나무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수목원에서 광릉이 지척이다. 광릉은 행정구역상으로 남양주시 진접읍이다. 조선 왕족의 무덤은 현재 119기. 그중 왕과 왕비의 무덤은 42기인데, 500년 넘는 한 왕조의 무덤이 이처럼 온전하게 보존된 것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그래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매표소를 지나면 신록 고운 숲길이 시작된다. 국립수목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정감 있고 친근하다. 길옆 숲에는 한 가족이 자리를 펴고 소풍을 즐기고 있다. 진초록의 숲속에서 자리를 펴고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가족의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가을빛 담은 호수 허브 향 가득한 농원

포천을 대표하는 관광지는 산정호수다.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됐을 정도로 일찌감치 관광 명소로 이름을 날렸다. 원래부터 산 위에 있던 호수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인 1925년 농업용수를 활용하기 위해 광덕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막아 저수지를 축조하면서 생긴 인공호수다. 저수지가 행정구역상 산정리에 있어 ‘산정(山井)’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산정호수를 가장 잘 감상하는 방법은 호수를 도는 둘레 5㎞의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 명성산의 암릉과 망봉산, 망무봉 등이 호수 위에 반영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매혹적이다. 일부 구간은 물 위에 나무 데크 탐방로를 설치해 놓았는데,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무렵 이 탐방로를 걸으며 바라보는 수면 에 비친 산의 풍경이 아주 그만이다.

허브아일랜드는 형형색색의 꽃과 달콤한 허브 향이 가득한 곳이다. 신북면 삼정리 산 언덕배기에 1만 평의 넓이로 조성돼 있다. 1998년 문을 열었으니 꽤 내력이 깊다. 허브 아일랜드는 이름 그대로 ‘허브 섬’. 모두 2000종에 달하는 허브가 농원을 뒤덮고 있고 다양한 아이템의 허브 관련 시설이 즐비하다. 

입구를 지나면 하얀색 2층 목조건물이 나타난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아기자기한 카페와 곳곳에 놓인 예쁜 장식물 등이 동화 속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여행객들은 너도나도 카메라를 꺼내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독일의 마을을 테마로 조성했다. 허브박물관과 허브식물박물관, 허브꽃가게, 허브공장, 허브아일랜드공방 등 허브를 보고 체험하는 공간과 함께 허브카페, 허브베이커리, 허브레스토랑 등 허브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여행수첩

비둘기낭. 사진 최갑수
비둘기낭. 사진 최갑수

먹거리 파주골순두부는 직접 콩을 갈아 부드러운 두부를 만들어낸다. 두부와 어울리는 무채 등 몇몇 밑반찬을 내놓고 두부, 된장찌개 등을 곁들이는데, 뭉근하게 끓인 순두부가 아주 맛있다. 포천 먹을 것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이동갈비다. 이동면 장암리에 이동갈비 거리가 만들어져 있다.

용암이 빚어낸 비경 최근 들어 주목받는 여행지는 주상절리와 협곡이다. 내륙에서는 좀체 만나기 힘든 풍경으로 수만 년 전 북한 땅인 평강 오리산에서 용암이 분출하면서 빚어놓은 것이다. 구라이골을 비롯해 대교천 현무암협곡, 교동가마소, 화적연, 멍우리주상절리대, 아우라지베개용암 등이 있는데, 포천시는 이런 현무암 명소에 ‘포천 한탄 8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행객이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곳은 영북면 대회산리에 자리한 비둘기낭과 지일리에 자리한 화적연이다. 비둘기낭은 새둥지를 닮은 현무암 협곡인데, 언뜻 보기에는 평지 같으나 나무 데크 탐방로를 따라 가까이 접어들면 40m 높이의 수직 낭떠러지가 있다. 화적연은 진경산수화로 이름 날린 겸재 정선(1676~1759)이 자신의 서화집 ‘해악전신첩’ 속에 그려 넣은 곳이다. 강물 한 가운데 거대한 바위 하나가 떡 하니 누워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