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의 곳곳에 마을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더해져 사진에 신비로운 내러티브를 더해준다. 2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담고 있는 북부 핀란드의 광경. 사진 김진영
1 책의 곳곳에 마을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더해져 사진에 신비로운 내러티브를 더해준다. 2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담고 있는 북부 핀란드의 광경. 사진 김진영

어린 시절 UFO(미확인 비행 물체)를 둘러싼 이야기를 자주 듣고 봤던 기억이 있다. 1947년 미 공군에 의해 이름 붙여진 것을 시작으로 UFO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는 전 세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텔레비전 탐사 프로그램에서도 UFO 특집을 종종 방송했고 UFO만을 다룬 두꺼운 책도 집 서가에 꽂혀 있어 흥미진진하게 읽곤 했다.

20세기 말 UFO 같은 미지의 존재에 대해 사람들이 어딘가 진심으로 여겼던 것은 단지 과학 수준이 지금과 차이가 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은 기이한 세기말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혼탁한 정치·경제적 시대상 속에서 탄생한 서사(敍事)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무한한 창조 능력이 있다. 그 능력 덕분에 밤하늘에 나타난 미지의 반짝임은 곧 우주 생명체의 신호가 되는 시대였다. 

핀란드 사진가 마리아 랙스(Maria Lax)는 자기 고향인 북부 핀란드의 작은 시골 마을 푸다스야르비(Pudasjärvi)가 자신이 태어나기 훨씬 전인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UFO 서사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광활하고 인구 밀도가 낮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작은 마을. 작가는 어느 날 저널리스트였던 할아버지 소니아 랙스(Sonia Lax)가 1972년 출간한 책 ‘푸다스야르비의 UFO들(Pudasjärven Ufot)’을 통해 그저 평범하게 여겼던 이 마을이 한때 UFO가 목격되는 장소로 매우 유명한 곳이었다는 것을 접하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의 책에는 당시 UFO를 믿었던 이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주로 담겨 있었다. 이상한 빛이 하늘에서 숲을 비추고 밤중에 자신을 쫓아온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기이한 광경을 바라보며 지구에 사는 우리들 외에 미지의 존재가 저 어딘가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책을 읽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 마을의 비밀스러운 과거였다. 현재, 과거의 소동은 잊힌 채 이 작은 마을은 그저 많은 이가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스쳐 지나는 장소일 뿐이었으니까.

작가는 책에 담긴 초자연적 현상과 당시의 상황에 대해 할아버지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치매가 진행 중이던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답을 해주지 못했다. 그 대신 작가는 책에 적혀 있는 이름을 토대로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책이 출간된 지 오래 지난 터라 대부분 사람이 이사했거나 이미 세상을 떠났을 것을 염려하다 우연히 만난 한 택시 기사는 자신의 과거 목격담을 들려주고 다른 이들을 소개해줬다. 작가는 총 12명을 만날 수 있었고 이들도 자신의 지난 경험을 들려줬다. 더불어 작가는 신문보관소에서 당시 관련 기사를 찾아냈다. 다양한 이야기를 접한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당시 사람들의 시선을 상상하며 마을 곳곳을 오가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집 ‘천상의 어떤 빛 (Some Kind of Heavenly Fire)’의 표지. 사진 김진영
사진집 ‘천상의 어떤 빛 (Some Kind of Heavenly Fire)’의 표지. 사진 김진영

‘천상의 어떤 빛(Some Kind of Heavenly Fire·2020)’은 작가의 사진, 마을 사람들의 증언, 과거 신문 기사를 통해 작은 마을의 오래된 비밀을 펼쳐 보여주는 책이다. 

우선 주를 이루는 사진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담고 있는 한밤중 강렬한 색상의 사진들이다. 낮에는 놀라울 것 없이 익숙하게 지나가는 풍경들이겠지만, 모든 사물에 빛을 밝히는 해가 진 후 밤에 불을 밝히는 간판들, 지나가는 차에서 나오는 빛 등을 장노출로 포착하면 신비로운 광경이 포착된다. 으스스한 안개가 자욱한 새벽 숲의 초현실적인 풍경, 환한 빛을 뿜어내는 밤중의 주유소, 온통 눈으로 뒤덮인 가운데 신비한 빛을 뿜어내는 표지판, 커튼 너머로 밖을 바라보는 여성, 어두운 방의 냉장고에서 뿜어 나오는 기이한 빛, 강한 빛을 받은 인물의 실루엣 등 작가는 책 전반에 걸쳐 북부 핀란드의 신비로운 광경을 보여준다. 

그리고 책의 곳곳에는 마을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더해져 사진에 신비로운 내러티브를 더해준다. 다만 작가는 의도적으로 자신이 인터뷰한 사람들의 모습이나 얼굴을 사진으로 담는 것은 배제했다. 

외계인을 보았다거나 신비로운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독자가 보게 되면, 독자의 관심이 미스터리한 이야기 자체에서 이 이야기가 믿을 만한 것인지, 꾸며낸 것은 아닌지 등 신빙성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쪽으로 옮겨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책에는 인터뷰 대상의 모습 없이 인터뷰 내용만이 담겨 있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필기체로 적혀 있는 사람들의 증언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이 마을에서 우리는 신, 백만장자, 아니면 외계인 그 누구든 혹은 무엇이든 와서 우리를 이 절망에서 끌어내 주기를 늘 기다려왔다.” “어느 날 밤, 어둠 속으로 헤드라이트를 몇 번 켜보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자 그것이 나타났다.” “나는 이 빛들을 우리를 살펴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신호로, 우리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란 신호로 받아들였다.” “나는 그것이 외계인인 줄 알았지만 두렵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나에게 해를 입히고자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눈으로 보기엔 숲에 불이라도 난 것 같았다. 추운 11월 밤이었고 땅에는 눈이 쌓여 있었기에, 불일 리 없었다. 그날 밤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 세상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천상의 어떤 빛 같았다.”

이러한 증언들은 외계 생명체를 직접 보고 마주했다는 객관적 서술이라기보다 목격한 현상에 대한 해석과 감상, 두려움과 희망이 한데 얽힌 어떤 것들이다. 이 글들에 담긴 건 분명한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빛이나 대기 중의 자연적 현상을 초자연적 현상으로 읽어내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작가에 따르면 UFO 목격담이 들리던 1960년대와 1970년대는 북부 핀란드가 극심한 곤궁을 겪던 시기와 일치한다고 한다.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일을 구하기 위해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가 시골 인구의 절반이 사라져 시골에는 버려진 빈집이 산재해 있었다고 한다. 작가는 말한다. “UFO 목격담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생활방식과 생계에 불어 닥친 급격한 변화 등이 내포돼 있다. 누군가는 이 미스터리한 빛을 두려움으로, 누군가는 이를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로 여겼다.”

한 시대를 관통한 정서가 아담한 사이즈, 낡은 느낌을 주는 종이, 테이프로 붙인 자료 등 한 권의 스크랩북 같은 디자인의 책 속에 담겨 있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