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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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의 뇌는 아직 발달이 완료되지 않은 미성숙한 뇌야! 인간으로서의 사고와 품격을 유지하게 해주는 전두엽이 성숙하려면 대개 스물네댓 살은 돼야 하거든! 자네들의 뇌는 배고픈 혹은 성난 침팬지처럼 스스로를 이성적으로 제어하기 힘들다는 말일세.”

내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심리학을 강의할 때 늘 의도적으로 던지는 말이다. 그러면 이 착한(?) 친구들은 그다음 주 강의 시간에 만나자마자 내가 대뜸 “안녕! 자네들은 무슨 뇌?” 하면 “침팬지 뇌요!” 하고 이구동성으로 화답해준다. 물론 이 상황은 내가 자신들에 대한 애정으로 충만하다는 걸, 이 말이 결코 자신들을 침팬지 수준으로 격하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대학생이 이렇다면 10대 사춘기 학생들은 어떨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번에 통합진보당(통진당) 출신의 한 인사가 중고생들을 모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를 준비 중이라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사회적 파장이 크다. 알다시피 통진당은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내란 선동 혐의로 2014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해산된 반국가 단체다.

어이없게도 이 시위를 배후 조종하는 ‘촛불중고생시민연대’라는 조직의 대표는 중고생이 아닌 25세 청년 최준호라는 자다. 놀라운 것은 그가 내세운 조건이다. 그는 중고생들에게 ‘교복을 입고 깔고 앉을 공책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다. 드레스 코드는 나이 어린 학생들조차 반정부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는 코스프레를 하기 위한 것이고, 공책을 깔고 앉는 행위는 교육 가치를 부정하는 상징적 행위로 연출하려는 것일 게다.

이 조직의 내부 강령을 보면 기가 막힌다. 철없는 중고생을 꾀기 위한 황당한 유인책들로 가득하다. ‘학생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행동한다’면서 화장(化粧)할 자유, 휴대전화 수거 금지, 두발 자유, 복장 자유를 주장한다. 또한 ‘놀 권리와 쉴 권리를 찾기 위해 행동한다’면서 PC방과 노래방의 중고생 출입 시간 제한 폐지를 요구한다. 더 나아가 ‘중고생의 성적(性的) 자기 결정권’을 명분으로 숙박 시설 이용과 자취 생활 등에 관한 자유를 요구한다.

통진당 잔당 세력의 이런 몰상식한 행태를 두고, 서울시교육청에 많은 양식 있는 이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정치적 목적이 있는 단체는 봉사 활동 인정 기관이 아니며, 봉사 활동 인정 기관에서 주관하는 활동이라도 정치 집회 등은 봉사 활동 취지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인정되지 않는다”는 공문을 각 학교에 발송했다.

북쪽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세력이 감히 남침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중2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긴 지도 오래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남쪽 중학생들이 대체 어떤 돌발 행동을 보일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웃자고 하는 소리겠지만, 이 말이 뇌과학적으로 보면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니다.

우리나라 초·중등생 나이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이성적인 판단과 사고를 하는 데 관여하는 전두엽의 전전두피질(前前頭皮質)이 전혀 성숙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아주 느린 속도로 이제 막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순간을 즐기고 쾌락을 추구하는 호르몬인 도파민이 왕성하게 분비되면서 그들의 행동을 강하게 추동한다. 모든 행동이 즉흥적이고 무비판적이다. 세심한 고려 따위는 안중에 없다.

고교생 나이에 접어들면 사정이 나아질까? 한 뇌과학자는 이들을 ‘젊은 야만인’이라고 부른다. 이들 역시 전전두피질이 성숙하려면 아직 멀었다. 신체는 성인과 마찬가지로 발달했지만, 어린아이 같은 충동성은 여전하다. 미래에 대한 설계도 어설프고, 자기 관리도 미비하다.

이 시기에 테스토스테론이나 에스테로겐 같은 성호르몬 분비는 극적으로 상승한다. 성호르몬의 급격한 변화는 이 시기 청소년들의 경쟁 본능을 자극한다. 이들의 경쟁은 기본적으로 또래 집단에서 자신의 상대적인 지위를 높이는 데 집중된다. 이 시기 청소년들은 또래 집단의 동성에게 돋보이고,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목숨을 건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번식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 ‘값비싼 신호’를 보낸다고 표현한다.

남자아이들에게 값비싼 신호는 위험한 스포츠(extreme sports)나 모험적인 행동, 알코올 남용, 흡연, 마약 복용 등 무모하고 저돌적인 행동 남발로 나타난다. 아버지의 스포츠카나 대형 오토바이를 몰래 가지고 나와 도로를 과속으로 질주하다 대형 교통사고를 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 시기 여자아이들의 값비싼 신호는 바비인형처럼 예쁘고 날씬한 몸매로 상징된다. 미래에 엄마가 되어 아기를 낳고 양육하기 위해 축적되기 시작한 신체의 피하지방은 그들에게 값비싼 신호를 보내는 것을 방해하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이런 미래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몸매 유지를 위해 병적인 체중 감소, 심지어는 거식증을 겪는 아이도 종종 보인다.

이 또래 아이들에게는 부모에게서 독립하려는 욕구가 분출되면서 부모와 사사건건 충돌하는가 하면, 또래 집단과는 왕성하게 교류를 하면서 서로 간에 소속감을 확인한다. 경쟁을 통한 독립과 협력을 통한 소속 욕구가 다이내믹한 긴장감을 연출하면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 패턴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열정과 힘은 있는데 브레이크는 없어”

어떤 프랑스 문화인류학자는 동서양의 문헌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해보니, 사춘기라는 것은 없더라는 이색적인 주장을 편다. 지금처럼 10대 사춘기 청소년들이 성인기에 도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데 비해, 고대 사회에서는 10대도 똑같이 성인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사춘기의 질풍노도(疾風怒濤) 같은 혼돈과 방황은 현대에 만들어진 신화 같은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의 주장에 적합한 인물을 찾는다면 백년전쟁 당시 15세기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 잔 다르크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조국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하고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그녀가 영국군에 잡혀 죽을 때, 불과 19세였다.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화랑으로 이름을 남긴 관창도 마찬가지다. 서기 660년 백제와 전투에서 빛나는 공을 세우고 계백의 5000결사대와 싸우다가 전사했을 때 관창의 나이 불과 16세였다.

하지만 이런 구국 소년, 소녀 영웅의 존재에 대한 기록은 신화나 전설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한 희소한 사례 몇 건이 과연 청소년 세대를 상징하는 대표성을 띨 수 있을까. 오늘날의 뇌과학이나 신경과학이 밝혀내고 있는 과학적인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닭 한 마리가 울었다고 해서 반드시 새벽이 오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의 청소년들은 근대 이전의 사회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한 환경 속에서 각종 내적, 외적 스트레스를 겪으면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갑자기 이성적이 되고 무모함이 사라진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뇌과학자 바버라 스토로차의 표현처럼 누군가가 그들 전두엽의 이성적 사고를 대신할 ‘대리 전두엽’ 역할을 해야 한다.

UC 샌디에이고의 심리학과 교수 제이 기드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열정과 힘은 있는데 브레이크는 없다. 아마 스물다섯은 돼야 제대로 된 브레이크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대학생도 제대 후 복학하거나 졸업할 무렵에야 겨우 전두엽의 형성이 완성될까 말까다. 하물며 어린 사춘기 중고생을 상대로 과학의 탈을 쓰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정치 선동을 일삼는 자들은, 참으로 과학에도 반하는 반사회적인 불순 세력이 아닐 수 없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