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메리칸 셰프’의 한 장면. 사진 IMDB
영화 ‘아메리칸 셰프’의 한 장면. 사진 IMDB

요리는 죽어 있던 식재료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만드는 사람의 손맛과 정성이 담긴 음식은 먹는 사람의 일부가 되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 포만감 못지않게 눈과 코와 혀로 느껴지는 감각은 음식이 주는 또 다른 기쁨이다. 성공이나 사랑 같은 추상적인 행복 말고 아름다운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생생한 인생의 보람이 또 있을까?

칼 캐스퍼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일류 요리사다. LA의 고급 레스토랑은 그의 요리를 즐기려는 손님들로 북적이고 고객을 만족시키는 그를 사장도 흡족해한다. 음식 평론가가 그의 요리를 맛보겠다고 찾아오는 것도 당연했다. 칼은 설렌다. 새로 개발한 요리로 평론가의 감탄을 받아낼 자신이 있었다. 세상은 또 한 번 그를 최고의 셰프라고 인정할 터였다. 

그러나 사장은 새로운 요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야심 차게 선보인 메뉴가 고객에게 외면당한 전력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칼은 도전의 기회라고 설득하지 못한다. 사장의 명령대로 지난 5년 동안 많은 고객을 만족시킨 요리를 내놓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는, 열정마저 담기지 않은 음식이 요리 평론가의 신랄한 미각을 감동시킬 리 없었다. 

끝까지 읽어내기 힘들 정도의 혹평은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 번진다. 무슨 악연이 있어서 남의 인생과 노력을 이토록 무참히 깎아내리는 것일까? 평론가가 요리에 대해 뭘 안다는 것인가? 칼은 서운하다 못해 화가 난다. ‘내가 최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내면에 숨어 있었는지도 몰랐다. 요리에 인생을 바치느라 좋은 남편도, 좋은 아빠도 되지 못했다. 형편없는 요리사로 취급받는다면, 이혼 후 가끔 만나는 어린 아들에게도 체면이 서지 않는다. 

익명의 악플 때문에 고통받는 어떤 유명인들은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고작 타인의 평가에 휘둘려 삶을 포기하다니, 안타깝지만 당하는 입장이 되면 절박해진다. 밝고 강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어둡고 연약한 면이 있다. 칭찬의 말과 글은 당연하게 여겨질 뿐, 큰 파장을 일으키진 않는다. 반면 사소한 비난, 무례한 악의와 욕설은 가시나무로 자라 마음을 찌른다. 

칼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평에 반응하지 말라는 지인들의 조언은 위로가 되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추락한 명성을 되찾을까, 마음이 급해서 아들과 한 약속도 잊는다. 아빠가 최고라는 걸 반드시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조바심은 모처럼 만난 아들과의 시간조차 즐기지 못하게 한다. 다 때려치우고 푸드 트럭이나 할까? 그러나 ‘일류 레스토랑의 일류 셰프’라는 타이틀을 버리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칼은 아들이 만들어준 트위터 계정을 열어 본다. 평론가의 악평을 많은 사람이 공유한 걸 보고 있자니 억누르고 있던 분노가 다시 솟구친다. 휴대전화로 주고받는 문자 메시지 같은 것이겠지, 생각하고 칼은 비평가에게 반박의 글을 보낸다. 

조금이나마 복수를 한 것 같아 마음이 후련했지만 다음 날, 수없이 리트윗된 그의 글은 또 한 번 인터넷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수많은 네티즌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류 요리사와 유명 평론가 사이에 벌어진 전쟁은 소셜미디어(SNS)의 속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칼의 패배로 간단히 끝나버린다.

칼은 직장에서도 해고당한다. 그의 자리는 부주방장에게 맡겨진다. 칼은 당황스럽다. 최고 레스토랑의 최고 셰프는 반드시 칼, 자신이어야 했던 거 아닌가? 더 인정받기 위해, 더 뜨거운 갈채와 더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얻기 위해 달려온 인생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남았을까? 고작 그런 자리를 지키겠다고 밤낮없이 일하느라 가정을 잃고 아내와 아들을 놓쳐버린 것일까? 

칼은 방학을 맞은 아들과 여행을 떠난다. 오랫동안 목을 매고 살았던 직장과 자존심을 하루아침에 빼앗기고 상처 입었지만, 뜻밖에도 해방감이 찾아온다. 칼은 체면과 허세와 자존심을 내려놓고 중고 푸드 트럭 앞에 선다. 자욱하게 쌓인 먼지를 털고 두껍게 쌓인 기름때를 벗겨낸다. 썩은 음식 찌꺼기를 버리고 낡은 조리 기구를 뜯어낸다. 

텅 비우고 나니 여유가 생긴다. 자신이 원하는 것들로만 인생을 채우기로 결심하자 희망도 보인다. 그는 잊고 있었다. 요리가 즐겁다는 사실을. 자신이 좋아서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볼 때 느끼던 기쁨이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는 것을. 

명성을 얻고 나서 그가 새롭게 내놓은 요리를 고객이 좋아하지 않은 이유였을 것이다. 칼은 비로소 자기를 묶어놓고 꼼짝달싹 못하게 했던 사슬에서 풀려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집착 때문에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 것도 같다. 무엇보다 그의 곁에는 사랑하는 아들이 응원하고 있지 않은가! 자, 힘을 내서 다시 시작해볼까? 혹시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 

‘아이언맨’을 연출했던 존 파브로가 각본을 쓰고 제작, 감독, 주연까지 해냈다. 실제로 일만 하느라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해 미안했다는 감독의 가족 사랑을 요리사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관계에 흐뭇하게 녹여낸 것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다. 

“급할 건 없어요. 한발 뒤에서 기다려요. 다른 건 생각하지 말아요. 지금은 이게 당신의 전부예요. 이거 망치면 세상이 끝나는 거예요.”

흉내만 내는 게 아니라 진짜 음식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던 감독은 미국 전역에서 푸드 트럭 성공 신화를 쓴 한인 요리사 로이 최에게 자문을 받고 요리도 배웠다. 스크롤이 거의 다 올라가고 화면이 꺼질 즈음, 그에게 샌드위치 굽는 법을 알려주며 로이 최가 들려주는 요리 철학은 다른 어떤 대사보다 인상적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더 많이 일했어야 하는데, 더 많은 돈을 벌었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더 많이 웃지 못한 것을, 더 깊이 사랑하지 못한 것을, 더 자주 행복을 느끼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한다. 성공을 안겨줄 세간의 인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매일 매 순간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면, 행복한 나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따뜻하고 유쾌하고 맛있는 영화다. 천고마비의 계절, 다이어트 계획은 잠시 내려놓고 참을 수 없는 식욕을 자극하는 영화 한 편,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해도 좋지 않을까?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