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통 사람들’의 한 장면. 사진 IMDB
영화 ‘보통 사람들’의 한 장면. 사진 IMDB

구름이 드리운 하늘과 잔잔한 수평선 위로 파헬벨의 ‘캐논’이 연주된다. 수채화 같은 풍경이지만 카메라는 곧 낮은 바람을 타고 잎을 떨구는 해변의 나무들과 금빛 낙엽이 흩어진 오솔길을 비춘다. 한적하게 굽은 도로를 따라가면 불행 같은 건 절대 발을 들이지 못할 것 같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에 도착한다. 그러나 깊어가는 가을이다. 모진 겨울이 시작될 터였다.

다크서클이 짙게 늘어진 소년이 흠뻑 땀에 젖어 악몽에서 깨어난다. 같은 시각, 극장에서 연극을 즐기던 베스는 옆에서 졸고 있는 남편을 못마땅하게 쳐다본다. 변호사로 일하는 캘빈은 성실하게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40대 가장이다. 퇴근 후엔 집에서 피로를 풀고 싶지만 사교적인 아내의 다양한 요구를 거절한 적 없다. 그것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우선 조건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남편의 역할이 버겁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돌아온 캘빈은 아들 콘래드의 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알아챈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의 방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침실로 들어간다. 캘빈은 걱정스러운 손길로 아들의 방을 노크하고 자상하게 밤 인사를 건넨다. 아이는 대체 며칠째 잠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의 눈엔 고통이 가득 들어차 있다.

다음 날 아침, 캘빈은 어떻게든 대화의 문을 열고 밥 한 숟가락이라도 먹여 학교에 보내려 하지만 콘래드는 생각이 없다며 책만 들여다본다. 아내는 달래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아이가 손도 대지 않은 접시를 빼앗아 방금 만든 토스트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쑤셔 넣는다. 남편은 그런 아내의 행동이 당황스럽고 화도 나지만 입을 꾹 다문다. 대체 이 가정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원래는 네 식구였다. 바다로 물놀이를 갔던 두 아이 중 큰아이는 익사했고 작은아이만 살아 돌아왔다. 사고였는데도 형의 죽음에 책임을 느낀 콘래드는 괴로워했다.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고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도 받았다. 베스는 콘래드를 품어주지 않았다. 큰애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그녀의 마음에는 원망과 미움이 가시덩굴처럼 자랐다. 소리 내어 말하진 않았어도 온몸으로 아이를 밀어내고 있었다.

세 식구가 한자리에 모일 때마다 쩍쩍 갈라지는 얼음조각 위에 서 있는 것만 같다. 아내는 모든 게 정상이라는 듯 행동한다. 때로는 콘래드가 아예 없는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깨진 유리 조각 같은 아들과 칼날 같은 아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보려 캘빈은 안간힘을 쓴다. 그도 아들을 잃고 가슴이 찢어졌지만, 목 놓아 울지 못했고 괴롭다고 소리친 적도 없었다. 

이 위기의 가족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대로 살아가도 되는 것일까? 아니, 괜찮은 척 계속 살아갈 수는 있는 것일까? 


가족 문제니까 가족 안에서 해결한다 

멀리서 보면 행복해 보이기까지 해서 모두가 부러워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절벽 위를 달리면서도 전혀 두렵지 않은 척, 완전히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척, 안정과 화목을 가장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세상은 그들을 ‘보통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몸에 병이 나면 주위에 도움을 청하고 약국을 찾고 병원에 가는 걸 당연히 여긴다. 그러나 마음이 아프면 숨기기 바쁘다. 대부분의 부부 문제나 자식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못하고 곪아 터지는 이유다. ‘내 문제니까 내가 해결한다. 가족 문제니까 가족 안에서 해결한다. 그러지 못하면 무능한 사람인 걸 증명하는 꼴이 된다. 나와 우리 가족이 불행하다는 걸 절대로 광고하진 않겠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힘껏 이를 악문다. 

가족은 때로 너무 깊은 상처를 주고받는다.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베스와 캘빈이 보던 연극처럼 계산기를 두드리면 그동안 몇 번쯤 사랑을 나누었는지는 알 수 있겠지만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커피에 설탕은 몇 스푼을 넣는지, 매일 사용하는 화장품이 무엇인지는 관심조차 없다. 그래서 가족은 가장 절박한 순간, 가장 먼 타인이 되기 쉽다.

자식의 상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부모가 지켜줄 거라는 믿음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베스와 달리 캘빈은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고, 그의 사랑을 신뢰하고 조언을 받아들인 콘래드는 정신과 심리 상담을 통해 성장의 기회를 얻는다. 아이는 느끼고 배우고 깨닫는다. 문제의 핵심은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엄마가 아니라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아들의 긍정적인 변화를 반기며 캘빈도 현실을 직시할 용기를 낸다. 자기를 가두고 변화하기를 거부하는 건 가장 강한 척하는 베스다. 반짝거리는 집, 능력 있는 남편, 똑똑하고 잘생긴 자식들, 그에 대한 남들로부터의 찬사와 부러움의 시선, 그것이 그녀를 살아가게 했고 그 자부심이 그녀를 지켜왔다. 그런데 큰아이를 잃고 흩어져버린 행복의 퍼즐을, 베스는 처음부터 다시 맞춰 완성할 자신이 없다.

주디 게스트의 동명 소설을 각색, 로버트 레드포드가 1980년에 발표한 감독 데뷔작이다. 53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과 함께 콘래드를 연기한 티모시 허튼이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베스 역의 매리 타일러 무어는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안았다. 젊은 시절의 도날드 서덜랜드와 엘리자베스 맥거번을 만나는 즐거움도 크다. 

이 영화 이후 파헬벨의 ‘캐논’이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다. 캐논(canon)은 그리스어로 곧은 자(尺)를 뜻한다고 한다. 이후 기준과 측정, 법칙과 규범이란 의미로 확대됐다. 음악에서는 주제를 모방하여 화성을 대위시키는 형식을 말한다. 반복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캐논은 다양하게 변주하여 연주된다. 

우주와 자연은 꼿꼿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지만 별과 바람, 하늘과 바다, 꽃과 나무처럼 피고 지고, 뜨고 저물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변화하고 순환한다. 인생도 만남과 이별, 성공과 실패, 상실과 회복이 쉼 없이 자리바꿈을 하며 변주되지만 ‘태어나 배우고 깨닫고 죽는다’는 원래의 주제는 잊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캐논’을 들으며 편안하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만큼은 지독한 상처와 쓰라린 절망조차 내려놓게 된다.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