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민화 ‘달에서 방아를 찧는 토끼’. 사진 한국현대민화협회
조선시대 민화 ‘달에서 방아를 찧는 토끼’. 사진 한국현대민화협회

‘셋셋세’라는 놀이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주로 여자 어린이들이 서로 마주 앉아 손바닥과 손등을 부딪치며 박자를 맞추고 노래를 부르는 놀이다. 일본의 ‘셋셋세(せっせっせ)’라는 손뼉치기 놀이에서 유래했다. 통상 이 놀이를 할 때 함께 부르는 노래는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로 시작하는 동요다. 

‘반달’이라는 동요도 셋셋세 놀이에서 곧잘 함께 불린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로 시작한다. 이 노래는 1924년에 윤극영이 작사 작곡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최초의 창작 동요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왜 달에는 계수나무와 토끼가 등장하는 것일까. 

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계묘년은 십이지(十二支)상으로는 토끼의 해다. 간지를 따지니 토끼가 동양적인 상징만 있는 것 같지만, 토끼는 일찍부터 가축으로 사육을 하는 등 사람과 가장 친근한 동물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동서양의 동요나 동화, 민담과 설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 중 하나가 토끼일 것이다. 

우리나라 민담 ‘영리한 토끼와 어리석은 호랑이’는 꾀 많고 영리한 토끼가 호랑이를 골탕 먹이는 이야기다. 토끼는 체구가 왜소하지만 영특하고 착한 동물로 그려진다. 토끼가 체구는 크지만 우둔하고 사악한 호랑이를 골탕 먹이는 의로운 동물로 나오는 것이다. 봉건 사회에서 나쁜 양반이나 탐관오리들에게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한 서민의 한을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풀려고 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별주부전’은 ‘토끼전’이라고도 불린다. 큰 병이 난 남해 용왕이 자신의 병을 고치는 데 토끼의 간이 필요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용왕은 부하인 별주부(자라)를 육지로 파견한다. 자라의 감언이설에 속아 용궁으로 온 토끼는 용왕에게 ‘살아있는 토끼의 간을 먹어야 내 병이 낫는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토끼는 ‘지금 내게 간이 없다. 육지의 나만 아는 모처에 숨겨 뒀다’고 기지를 발휘해 용궁을 무사히 빠져 나온다. 속은 것을 안 자라가 후환이 두려워 자살을 하려는데 도인이 나타나 용왕의 병을 낫게 할 선약(仙藥)을 전해주는 해피엔딩으로 토끼전은 끝난다. 전자가 ‘백수의 왕’ 호랑이를 속이는 토끼 이야기라면, 후자는 ‘바다의 왕’ 용왕을 속이는 영리한 토끼 이야기다. 

민담에서는 이렇게 신과 자연계의 질서에 아랑곳하지 않고, 영리하면서도 교활한 듯하고, 착한 듯하면서도 악하기도 하고, 장난을 좋아하는 이러한 캐릭터를 트릭스터(trickster)라고 한다. 트릭스터는 악당인 것 같기도 하지만 악당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민담에서는 주로 도깨비나 여우가 이런 역할을 맡는다. 홍길동이나 로빈 후드도 일종의 트릭스터라고 할 수 있다. 민담의 감초 역할을 하는 토끼가 대표적인 트릭스터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영국의 작가 루이스 캐럴이 쓴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나 실사 영화를 만들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 동화는 꿈속에서 여주인공 앨리스가 회중시계를 든 토끼를 쫓아가다 토끼 굴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린이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열광한다. 그런데 성인들은 이게 왜 이토록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잘 모른다. 왜 그럴까. 이 동화에서 주인공이 꿈을 꾸는 것은 무의식의 세계를 상징한다. 꿈속에서 토끼를 만나 토끼 굴로 들어가는 것은 본격적으로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한다. 말하자면 토끼는 여기서 무의식의 세계로 인도하는 가이드인 셈이다.

성인들은 대개 시공간의 구분이 확실한 합리적 이성의 세계에 집착한다. 합리적 이성이 지배하는 세계는 의식의 세계다. 반면에 시공을 초월하고 비합리적 상상과 공상이 지배하는 세계는 무의식의 세계다. 어린이들은 어른과 달리 비합리적인 세계에 더 열려있다. ‘이상한 나라’ 그러니까 무의식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진기한 이야기들은 어린이들이 몰입하게 한다. 합리성과 논리성만 따지는 어른 입장에서는 황당무계할 뿐인데 말이다.

동요 ‘반달’에 나오는 가사처럼 ‘달에는 왜 계수나무 아래 토끼가 살고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옆길로 좀 샌 것 같다. 옛날에는 사람의 수와 가축의 수가 그 집안이나 부족의 풍요와 번영을 상징했다. 전근대사회에서 우리나라는 소를 몇 마리 소유하고 있는가가 부(富)를 상징하는 척도였고, 중동에서는 양이나 낙타가 그것을 대신했다. 

그런 사회에서는 다산(多産)하는 동물들의 이미지가 좋을 수밖에 없다. 토끼는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다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물의 하나가 됐다. 다산의 이미지는 번영, 풍요, 행운으로 확대된다. 더구나 토끼는 사냥하기도 쉽고, 사육하기도 쉬운 일상에 가장 흔한 동물이다. 

사람들의 눈은 다 비슷비슷한가 보다. 둥근 달이 떴을 때 그 달의 무늬를 보고, 토끼의 모습이나 발자국을 연상하는 것은 동서양이 똑같았다. 아시아나 아프리카, 북미 원주민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테미스는 달과 사냥의 여신이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다이애나에 해당한다. 이때 토끼는 달의 여신을 가리키는 동물이다. 서양 회화에는 사냥을 통해 잡아들인 희생 제물로 토끼가 자주 등장한다. 

기독교 세계에서 토끼는 ‘정욕’과 ‘순결’이라는 이중적인 상징이 있다. 강한 번식력 때문에 토끼는 음욕(淫慾)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기독교의 7대 죄악은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나태, 탐욕인데 이 중에 음욕이 있다. 아담이 이브에게 사과를 권하는 장면이나,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 지옥 장면에 토끼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없어진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의 상징이 바니 걸스(bunny girls), 즉 토끼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반면 토끼가 처녀와 함께 등장하면 음욕에 대한 승리, 즉 순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등장하는 그림에 함께 나타나는 토끼는 순결의 상징이다.

우리 선인들은 토끼는 뒷다리가 길고 튼튼해서 잘 뛸 수 있기 때문에 삿된 기운으로부터 잘 달아날 수 있다고 보았다. 귀가 커서 장수하고, 또한 윗입술이 갈라진 것은 여성의 성기를 상징해 다산할 수 있는 것으로 봤다. 이처럼 토끼는 장생불사(長生不死)와 벽사(辟邪)와 다산의 상징이기도 했던 것이다. 

다산의 상징은 번영과 풍요를 넘어, 여성의 원리로 확대되고, 자연스레 정욕과 음욕으로도 확대된다. 한·중·일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달에는 토끼가 살고,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에서 떡방아를 찧는다는 이야기가 민담이나 민화로 많이 전해온다. 인도 불교 설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토끼가 자기 몸을 불태워 신에게 공양물로 바친다. 덕분에 토끼는 달을 지키면서 신령한 계수나무를 빻아서 늙지 않는 약을 만들게 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토끼가 방아를 찧어서 떡을 만든다든가, 불로불사의 약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민담과 민화의 단골 주제다. 여기서 떡방아는 음식 혹은 약을 만든다는 뜻과 방사(房事)한다는 것을 중의적으로 나타낸다. ‘달=여성=토끼’의 상징적인 등식이 여기서 나온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 호랑이해를 보내고 계묘년 토끼해를 맞으면서 우리나라가 좀 더 활기찬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나라가 부강하고 활기차지려면, 무엇보다 젊은 인구가 늘어나야 한다. 세계 최고의 저출산 국가, 세계 최고의 초고령화 사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로 2023년을 보낼 수는 없다. 곰 같은 남편, 여우 같은 마누라, 토끼 같은 자식이 있는 ‘즐거운 나의 집’이 엄청나게 많아졌으면 좋겠다. 올해 계묘년 토끼의 해를 맞아 토끼가 우리 대한민국에 다산과 번영과 풍요와 행운을 한꺼번에 몰고 오는 길상의 동물, 행운의 마스코트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