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으로 ‘대세 골퍼’가 된 박민지 선수. 사진 민학수 기자
노력으로 ‘대세 골퍼’가 된 박민지 선수. 사진 민학수 기자

프로 골프 대회는 100여 명의 선수가 경기 시간(대개 해가 떠 있는 시간) 중 자신에게 배정된 티타임부터 4시간 남짓한 시간을 경기한다. 나흘간 선수마다 경기하는 시간이 다 다르다. 누구는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경기하고, 누구는 해가 쨍하고 떴을 때 경기할 수 있다. 실력 못지않게 운이 따라줘야 한다. 천하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조차 자신의 최전성기 때 다른 선수가 아닌 악천후에 KO패를 당한 적도 있다. 우즈는 2002년 메이저 대회 디오픈 3라운드에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친 뮤어필드 골프 코스에서 10오버파 81타라는 1996년 프로 데뷔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적어냈다.

우즈는 그해 2개 메이저 대회를 포함해 앞서 열린 11개 메이저 대회에서 7개 대회를 우승하며 이 세상 차원을 넘어선 신계(神界)의 골퍼라 불렸지만, 자연의 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렇게 땀과 재능, 노력과 전략을 겨루는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실력이 뛰어난 선수가 매번 우승을 차지하진 못한다. 운이 작용한다. 스포츠 종목마다 실력과 운이 차지하는 비중도 다르다. 

같은 시간에 양자 대결을 벌이는 테니스는 100여 명의 선수가 서로 다른 시간대에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경기하는 골프보다 실력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실내 코스에서 경기가 열리고 많은 득점이 이뤄지는 NBA(미 프로농구)가 야외 경기장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작용하기 쉬운 MLB(미 프로야구)보다 결과를 예상하기 쉽다. 브레인 스포츠라 불리는 체스나 바둑에서는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압도적인 승률을 자랑한다. 

그렇다면 분야별로 운과 실력이 성공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투자전략가로 일하며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고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투자론을 가르치는 마이클 모부신은 ‘운과 실력의 성공방정식(원제 The Success Equation)’이란 저서를 통해 운과 실력을 구별하고 운을 다루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이 있다는 솔깃한 주장을 펼친다. 


타이거 우즈가 2019년 디오픈이 열린 북아일랜드 로열 포트러시에서 경기하고 있다. 사진 민학수 기자
타이거 우즈가 2019년 디오픈이 열린 북아일랜드 로열 포트러시에서 경기하고 있다. 사진 민학수 기자

수많은 자기 계발서가 성공한 사람에게는 그럴 만한 노력과 재능이 있었다는 전제로 성공방정식을 찾아내고 그대로 따라 하면 당신도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사람은 인과관계라는 스토리를 믿는 인지 편향을 갖고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 없다며 어떻게든 원인을 찾아내려고 한다. 이 책은 운이 우리의 삶과 성공에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치며 우리가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뮤직랩(MusicLab) 실험은 인터넷에 음악 웹사이트를 만들고 1만4000명 이상의 참가자를 모집했다. 참가자는 여러 무명 밴드가 연주한 48개 곡을 감상하고 평가할 수 있었다. 실험 참가자의 20%는 다른 참가자들이 각각의 곡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선택하는 독립 그룹에 할당됐다. 

한편 사회적 영향 그룹에 할당된 참가자는 다시 8개 그룹으로 나뉘었다. 각각의 곡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했는지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사회적 영향력이 작동하도록 했다. 실험 결과, 음악의 품질은 중요했다. 독립 조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곡은 사회적 영향 조건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 반대로 독립 조건에서 형편없다고 평가받은 곡은 사회적 영향 조건에서도 낮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사회적 영향력이 작동했던 집단에서는 심한 불평등이 생겼다. 독립 조건의 경우에 비해 사회적 영향 조건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은 곡의 점유율이 월등히 높았다. 나아가 독립 조건에서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은 곡은 어느 곡이나 히트곡이 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8개의 사회적 영향 그룹마다 히트곡이 모두 달랐다. 어느 곡이 가장 히트할지 미리 알 수 없었다. 아주 단순한 실험이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부신은 자신의 활동 분야가 운과 실력의 스펙트럼에서 어디쯤 위치하는지 이해하고 실력을 쌓는 방법을 제시한다. 매일 복권을 사면서 하루에 8시간씩 당첨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연구한다면 어떨까. 아무리 노력해도 복권 당첨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복권 당첨은 전적으로 운에 달렸다.

자동차 운전, 타자, 일반 스포츠는 어떤가. 이곳은 실력의 영역이다. 약 50시간만 연습한다면 아주 기본적인 수준의 실력은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실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노력을 더 기울여도 성과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정체기를 맞게 된다. 정상급 음악가나 운동선수가 되려면 체계적인 훈련을 반복하며 정체를 극복하고 성과를 향상시켜야 한다. 체계적인 훈련과 코치의 적절한 피드백을 통해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긴급한 상황에서 환자를 수술해야 하는 의사나 항공 산업 같은 분야에서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놓으면 똑같은 실수를 피할 수 있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완벽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우리가 언제든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고 겸허히 인정한다면 체크리스트를 활용해야 한다. 모부신은 이런 분야를 운과 실력의 중간 영역으로 분류한다. 

이렇게 인과관계가 분명한 분야에서는 체계적 훈련과 체크리스트가 큰 효과를 발휘한다. 주식 투자는 어떤가. 인과관계가 불투명하고 환경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복잡계에 해당한다. 운과 실력의 스펙트럼 가운데 운 쪽에 가까운 자리에 있다. 단기적으로 드러나는 주식 투자 성과는 실력이 절대적인 체스 게임보다는 운이 큰 영향을 미치는 포커 게임에 가깝다.

초보 투자자나 무모한 투자자도 단기간 워런 버핏을 몇 배로 능가하는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평가 시간을 10년, 20년, 30년으로 늘려나가면 결과는 달라진다. 

이러한 운의 세계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과정에 충실하고 확률적인 사고를 하라고 충고한다. 좋은 과정은 가치와 가격의 괴리를 발견해 유리한 기회를 찾아내고,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여러 가능성을 고려하며, 군중과 멀리 떨어져 독립적으로 냉정하게 의사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 책의 공동 역자이기도 한 박성진 이언투자자문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살면서 성취한 것의 대부분은 운과 실력이 함께한 결과다. 세계 최고의 투자자인 워런 버핏조차도 자신의 성공을 ‘난소복권’에 당첨된 덕분이라고 이야기한다. 1930년 아프가니스탄이 아닌 미국에서 태어났고, 남자가 대우받는 시대에 여자가 아닌 남자로 더구나 백인으로 태어났으며, 덧붙여 기업 가치 평가 능력이 엄청나게 보상받는 시대에 태어나는 행운을 가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매사에 작용하는 운의 비중을 과소평가한다. 우연과 운의 역할을 깊이 고민하지 않고는 현명한 투자자가 될 수 없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설파한 가치 투자의 핵심 원리인 ‘안전마진’과 ‘분산투자’는 운이 크게 작용하는 투자 세계에서 언제 올지 모를 불운에 대비하며 수익을 추구하는 현명한 투자자의 투자철학이다. 언제 올지 모를 ‘운칠’을 잡기 위해 ‘기삼’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생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 아니라 ‘기삼운칠(技三運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