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너머의 비밀스러운 공간을 활짝 개방해 축제의 장으로 거듭난 강원도 속초의 ‘칠성조선소’. 사진 칠성조선소
담 너머의 비밀스러운 공간을 활짝 개방해 축제의 장으로 거듭난 강원도 속초의 ‘칠성조선소’. 사진 칠성조선소

속초에 새로운 명소가 생겼다. 중앙시장의 닭강정 얘기가 아니다. 줄을 선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시장 골목보다 요즘 더 유명한 곳이 있으니, 바로 옛 조선소를 이색 문화공간으로 뒤바꾼 ‘칠성조선소’다. 6·25전쟁 때 함경남도에서 내려온 할아버지가 속초에 자리잡으며 세운 조선소를 물려받은 손자는 수산업과 조선업의 쇠퇴로 쇠락해진 이곳을 축제의 장으로 변모시켰다. 한때 펑크록 밴드의 멤버이기도 했던 그는 미국에서 배 만드는 법을 배운 후 조선소 한쪽에서 카누와 카약 같은 레저 선박을 만들었다. 그러다 올 초 아내와 함께 이곳을 살롱과 박물관으로 개조해 새로 문을 열었다.

국내 최초의 조선소 뮤직 페스티벌이 개최된 지난 5월, 한동안 조용했던 조선소는 유명 뮤지션들과 인파로 들썩거렸다. 강산에, 새소년, 국악 록밴드 씽씽, 인기 있는 연남동 클럽 ‘채널1969’의 DJ들까지. 음악 좀 들어본 이들이라면 깜짝 놀랄 만한 막강 라인업이 흥을 띄웠다. 강원도 명물로 채워진 먹거리 마당과 속초의 서점들이 참여한 이색 장터도 열렸다. 무대 앞에 자리를 깔고 앉은 관객들은 조선소의 앞마당 역할을 하는 청초호의 푸른 물결과 바람을 타고 넘실대는 음악을 밤새 즐겼다. 

“원래 조선소는 공공장소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일터였고 시끄러운 소음을 거쳐 배가 만들어져 나가던 담 너머의 비밀스러운 공간이었습니다. 이런 곳을 개방해 함께 즐기는 상상을 해보곤 했고, 그건 누구에게나 설레는 일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칠성조선소 뮤직 페스티벌을 준비해온 이들의 얘기다. 바다를 품어 보기 좋은 데다 무거운 배가 만들어지던 데라 그 성질이 단단하고 듬직해 확실히 여럿이 모여 놀기에 매력적이다. 여름마다 연례행사처럼 우후죽순 펼쳐지는 음악축제는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지만 장소가 특별하니 모든 게 신선하게 다가온다.

축제가 끝난 요즘도 칠성조선소는 전국 각지에서 소문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인다. 흥미로운 건 잔뜩 멋을 낸 차림으로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공간을 둘러보며 추억을 곱씹으며 즐긴다는 점이다. 서울 성수동의 공장 지대나 을지로 인쇄골목 일대처럼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 젊은이들의 놀이터가 된 경우는 많지만 젊은이부터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세대가 어울리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


DMZ에서 열리는 이색 음악축제

오는 6월 21일부터 24일까지 철원 비무장지대에서 처음 열리는 ‘DMZ 피스 트레인 뮤직 페스티벌’도 기대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장소로 유명한 노동당사와 DMZ 월정리역, 철원팔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한탄강 한복판의 고석정을 무대로 하는 음악축제다. 영국의 전설적인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 출신의 글렌 매트록을 비롯, 팔레스타인에서 온  ‘제노비아’, 일본 인디 록밴드 ‘미츠메’ 등 해외 뮤지션들과 김수철, 크라잉넛, 차승우, 장기하와 얼굴들 등 한국 록 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국내 뮤지션 그리고 현대무용가 차진엽의 공연 등이 예정돼 있다. 

서울 도봉구 창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플랫폼창동61’에서 콘퍼런스와 사전 공연을 먼저 치른 후, 서울에서 철원까지 가는 기차 안에서 라이브 퍼포먼스로 본격적인 축제를 시작하는 구성도 색다르다. 게다가 무료다! 단 150명만 탑승 가능한 피스 트레인 패스, 3만원의 유류권을 제공하는 피스 카 패스, 역시 공짜로 이용 가능한 피스 셔틀버스 패스의 사전 예약은 이미 빛의 속도로 마감됐다.

서태지와 아이들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의 배경이었던 철원 노동당사. 사진 DMZ 피스 트레인
서태지와 아이들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의 배경이었던 철원 노동당사. 사진 DMZ 피스 트레인

시기도 기가 막히다. 한국의 대통령과 북한의 국무위원장이 뜨거운 포옹을 나눈 직후 남북 분단의 상징인 DMZ에서 열리는 음악축제라니.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의 바람이 거세던 1969년, 전 세계의 히피들이 총 대신 꽃과 음악을 저항의 무기 삼아 평화를 외쳤던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연상될 정도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DMZ 피스 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은 지난해 한국을 찾은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영국 서머싯 피턴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음악축제)’의 메인 프로그래머인 마틴 엘본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DMZ를 방문해 끊어진 철로와 멈춰서 있는 기차를 본 그는 “여기가 바로 세계적인 음악축제를 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이고 (지금이 바로) 적절한 때”라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 남북 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진행은 급물살을 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철도공사, 강원도, 서울시, 철원군까지 나서서 행사를 추진했다. 흥행은 당연해 보인다.

서울에서는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리는 ‘스마일러브위크엔드’가 있다. 오는 7월 14·15일 양일간 개최되며, 앞서 언급한 두 축제에 비해 잔잔한 편이다. 정승환, 멜로망스, 9와 숫자들 등 부드럽고 달콤한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들로 라인업을 채웠다. 주말 나들이 삼아 한번 가볼 만하다. 한동안 버려져 있던 마포 석유비축기지를 문화 플랫폼으로 재탄생시킨 터라 장소 자체가 주는 매력이 상당하다. 

1973년 중동전쟁으로 인한 1차 석유파동 이후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구축된 이 석유비축기지는 1급 보안시설로 41년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돼 왔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완공된 후엔 위험시설로 분류돼 ‘2002 한·일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차갑게 잊혀 갔다. 약 2년간의 준비를 거쳐 지난해 가을 개관한 문화비축기지에서는 때때로 서커스 공연과 미디어아트 전시, 다원예술 프로그램, 거리예술마켓이 열리고 있다.

축구장 22개 규모라는 이 거대한 공간은 6개의 탱크와 야외무대로 구성돼 있는데, 송유관 등 당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매봉산 능선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엔 소나무와 잣나무, 상수리나무숲이 우거져 있고, 문화비축기지 맞은편엔 월드컵공원이 있다. 양화대교를 건너면 선유도공원까지 동선이 이어진다. 월드컵공원이나 선유도공원은 예전엔 쓰레기 매립장, 수돗물 정수장이었다. 월드컵공원 내 노을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캠핑을 즐기는 것도 좋다. 문화비축기지와 월드컵공원 주차장 사이에 맹꽁이 열차 탑승장이 있으니 굳이 걸어가지 말고 편안하게 문명의 이기를 누리길 바란다.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캠핑장까지 거리가 꽤 있는 데다 워낙 커서 길을 잃기 쉽다. 맹꽁이 열차 자체도 재미있어 놀이공원에 온 기분이 난다. 축제의 계절, 여름을 조금 더 특별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 이미혜
패션·미술 칼럼니스트, 문화기획자, 보그코리아 컨트리뷰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