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25일 낮 12시 미국 뉴욕 맨해튼 북쪽 외곽 묘지. 참배객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이날은 한국 근대 미술의 거장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의 서거 30주기였다. 그가 숨을 거둔 맨해튼 웨스트사이드 73번가 아파트 근교의 묘지에서 사람들이 고인을 기리는 동안 서울 종로구 부암동 210-8번지 환기미술관에서는 이 위대한 영혼의 추모전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시가 ‘김환기 30주기’展이었다.

 이번 전시의 1부는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2004.10.12~11.14)로 진행됐고, 2부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2004.11.23~2005.2.6)라는 부제로 진행중이다. 4개월에 달하는 전시 기간에는 드로잉에서 회화와 공예 그리고 유품을 아우르는 260여점을 헤아리는 전시물들이 선보였다. 김환기 작품 세계 전체를 완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단순히 위대한 화가의 위대한 예술에 대한 예측 가능한 감탄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한층 새롭다.

 그렇다면 ‘김환기 30주기’展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 고국에 남겨진 네 아이들이 추운 겨울 김장이나 했을까를 염려하며 절절히 썼다는 편지, 특별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무작정 호적상의 이름이 싫어서 지었다는 호 ‘수화’,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궁둥이를 어루만졌다던 잘 생긴 조선 백자’에 대한 심미안, ‘이 한 해에 있어서 우리 화단에 일등 빛나는 존재로 정진’을 당부했던 후배 화가 이중섭에 대한 각별함, 뉴욕 작업실에 놓아 두었다던 사랑하는 부인 김향안 여사의 작은 초상화 등등. 이번 전시에서 우리는 작품 외에 전시된 다양한 유품들을 통해서 항간에 소문으로만 떠돌던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삶을 바탕으로 했던 환기 예술을 총망라한 ‘김환기 30주기’展의 대미는 점(點)이다. ‘눈만 감으면 무지개처럼 떠오르던 고국산천에 대한 그리움’으로 말년의 그는 맨해튼 마천루 사이에 별빛처럼 쏟아지던 불빛들을 점으로 찍어 ‘점화(點畵)’를 그렸다. ‘Universe’는 ‘무제’(無題)라는 이름 없음을 제목으로 삼고 있는 대부분의 작품들 중에서 드물게 확실한 명찰을 달고 있는 그림이다. 1971년 뉴욕 포인덱스터(Poindexter Gallery) 개인전에 출품돼 미국 언론과 평단의 이목을 끌었고, 1975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전시돼 호평을 받았던 이 작품에는 푸른 점들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그 푸른빛을 머금은 작은 점들은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 셋이 다수가 되어 마침내 거대한 형상을 이루고, 아름다운 공명을 만들고, 기분 좋은 파장을 일으키고 만다. 수화의 지인이 화가 살아 생전에 구입해서 아직까지 소장하고 있다는 이 대작은 도쿄-서울-파리-서울-뉴욕을 오가며 펼쳐졌던 김환기 예술의 대장정이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알리는 마침부호였던 것이다.

 사랑이 담긴 점 하나, 추억이 묻은 점 하나, 쓸쓸함이 스민 점 하나, 이것들을 모아 멋진 우주를 화폭에 구현해 보여 주었던 수화 김환기. 사람들은 이제 그림으로 그를 추억한다. 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