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 짐 콜린스는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에서 기업의 장수(長壽) 비결은 이익추구가 아닌 가치 공유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서구 경영학이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윤 추구라고 본 것과 달리 콜린스는 100년 이상 장수한 기업들에서 공통 인자(因子)로 ‘가치(Value)’라는 개념을 찾아낸 것이다. 최근 마이클 포터 미 하버드대 교수가 주창해 화제를 모은 ‘공유가치 창출(CSV)’도 사회 구성원의 공통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포터 교수는 “사회에 좋은 것은 기업에도 좋다”면서 “이제 기업은 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가치창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요약하면 앞으로 기업이 성공하려면 가치를 사회와 공유해야 하고 그런 기업만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올해로 창립 80주년을 맞는 동아제약은 기업 가치를 사회가치와 연결시키는 일을 지속적으로 벌여온 대표적 ‘사회형 기업’이다. 약 만드는 일 하나도 기업의 이익보다는 국민 건강, 공중 보건을 먼저 생각해서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강신호 회장이 있다. 이제 동아제약은 기업가치 범위를 전 세계로 확대시킬 태세다.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은 기업의 존재 의미를 사회봉사와 헌신에서 찾는다고 말했다.

강중희상점(동아제약 전신)이 서울 중학동에 들어선 1932년은 일본이 만주에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우는 등 동북아 정세가 혼돈에 빠져들던 시기였다. 이봉창 의사가 일본제국주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천황 암살을 시도했던 것도 바로 그 해다. 이런 혼돈의 시기에 조선인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회사를 세운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위생재료를 취급했던 강중희 동아제약 창업주에게는 ‘좋은 의약품을 고통받는 국민에게 공급’하는 것은 신념과 같았다. 기업의 이익보다 대중을 위한 ‘위민(爲民)의 길’은 어쩌면 그때부터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이후 강중희 창업주는 1947년 ‘넓게 퍼지라’는 의미로 사명을 동아제약으로 바꾸면서 본격적인 제약업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동아제약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현 강신호 회장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기업공개를 통한 경영 투명성 향상과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동아제약이 우리나라 대표 제약기업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미래를 내다보는 강 회장의 혜안과 조용하지만 강력한 추진력, 여기에 대중의 이익을 위한 공심(公心)이 더해졌기에 가능했다.

창립 80주년 맞는 대표 제약회사

손욱 교수(이하 손 교수) | 회장님께서는 서울대 의과대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계시다 회사 경영에 참여하셨는데요.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그런 결정을 하셨습니까.

강신호 회장(이하 강 회장) | 제가 올해로 서울대 의과대를 졸업한 지 꼭 60년이 됩니다. 그리고 그후 4년 동안 서울대학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독일에 가게 됐어요. 그때 미국 국제협력처(ICA)에서 우리나라 제약공장들이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자 그걸 지원하기 위해 자금을 주기에 우리 동아제약도 8만달러를 받았는데, 그 돈으로 기계를 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계를 알아보는데, 그때만 해도 독일 기계가 싸고 품질이 참 좋았습니다. 물론 품질 면에선 미국 기계가 제일 좋았지만 값이 비싼 데다 너무 무거웠어요. 그래서인지 당시에는 기계 사러 독일 가는 기업들이 많았어요. 우리도 그랬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당시 동아제약 안에 기계 사러 갈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셨나봐요. 외국말 할 줄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물론 다들 일본말은 좀 했지만 독일에서 일본말이 통할 리 없으니…. 그래서 아버지께서 저를 보낸 겁니다. 그때가 아마 제가 서울대학병원에서 내과 의국장을 할 때일 겁니다. 그렇게 독일에 가서 들여올 기계를 주문하고 “언제 기계가 완성되느냐”고 물었더니 1년이 걸린다는 겁니다. 주문량이 많아서 말이죠. 그래서 천천히 (한국으로) 돌아가면 되겠다 싶어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계시던 이문호 선생(전 서울대 의대 교수)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문호 선생은 제 대학 4년 선배인 데다, 제게 의국장 자리를 물려주고 독일로 유학가신 분이셨어요. 그런데 그 분이 저를 보시자마자 “너 (독일에) 잘 왔다. 온 김에 여기서 의학공부나 하고 가라”는 거예요. 아무래도 저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아 아버지께 편지를 보냈더니 “그럼 공부 좀 하고 와라”고 하시길래 독일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한 겁니다. 그때 저는 혈액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하일마이어(Heilmeyer) 교수 밑에서 3년 반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그리고 귀국했는데 서울대학병원으로 가느냐, 아니면 아버지 밑에서 일을 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어요. 그 전까지 아버지께서 독일에서 공부할 때 매달 100달러씩 보내주셨는데, 그때 100달러면 꽤 큰돈이었거든요. 아버지께서 그렇게 뒷바라지해주신 게 무척 고마웠고, 그리고 제가 독자예요. 나중에라도 회사를 상속받을 사람은 저밖에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아버지께서 내 유학생활 중 큰 힘이 돼 주셨는데, 이젠 내가 아버지를 좀 도와드려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했죠. 4년 만에 의과대학으로 돌아가서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그렇고 해서 동아제약에 들어간 겁니다.

Tip  |  박카스개발 뒷 이야기

1961년 알약으로 국내 첫 출시

박카스는 처음부터 드링크제로 판매된 것은 아니다. 일본 다이쇼제약에서 타우린을 납품받아 1961년 알약으로 만든 것이 시초다. 이후 알약은 앰플제, 앰플제는 드링크제로 변신했다. 그때가 1963년이다. 제품 출시 전부터 동아제약은 일본 다이쇼제약과 엠블럼부터 광고 문구까지 모든 부분을 긴밀하게 협조해 제품 개발에 나섰다. 동아제약보다 1년 앞서 1962년 출시된 다이쇼제약 리포비탄이 박카스와 비슷한 상표 엠블럼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그만큼 양사 간 긴밀한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동아제약이 박카스 광고에 많이 사용한 ‘활력(活力)’이라는 단어가 리포비탄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동아제약 박카스는 현재 캄보디아 등 30여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2002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최근 10년간 수출액은 256만달러다. 박카스는 지금도 일선 약국에 직접 배달하는 루트세일(Root Sale)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로 전국 대부분의 약국은 제때 제품을 공급받아 구매의 편리성을 높였다. 물론 동아제약 입장에서는 판매량 증가로 이어져 수요, 공급자 모두에게 도움이 됐다.


동아제약은 일선 약국에 직접 배달하는 루트세일제도로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박카스 배달차량 앞에 선 강신호 회장.

손 교수 | 지금이야 동아제약은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합니다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회장님께서 동아제약에 입사했을 당시 모습은 어땠습니까.

강 회장 | 회사에 들어가 보니 전체 직원 200명 중 대졸 출신은 딱 3명뿐이었어요. 한 사람은 생산 담당, 한 사람은 품질관리 담당, 나머지 한 사람은 약 허가 맡는 일을 했던 사람이었죠. 그래서 ‘아! 이거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1959년 9월 공채로 신입사원을 처음 뽑은 겁니다. 그렇게 뽑기는 했는데, 정작 누가 뭘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하더군요. 지금은 교육시키는 기관이나 사람이 많지만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결국 저도 신입사원들을 가르치고 해서 반 년이 지나고 나면 또 다음 기수생을 뽑고 하다 보니 벌써 올해로 공채 101기까지 왔습니다.

176억병 팔린 국민드링크 ‘박카스’

동아제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품은 뭐니뭐니 해도 국민드링크제 ‘박카스’다. 박카스는 제품이 출시된 지난 1963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176억8600만병이 팔린 우리 제약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판매된 박카스 병을 일렬로 세우면 길이가 지구를 53.3바퀴 돌고도 남는 엄청난 양이다. 

박카스에 대한 강 회장의 애착은 남다르다. 제품명도 강 회장이 직접 붙였다. 독일 유학시절 함부르크 시청 지하 홀 입구에 있던 바커스 상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 박카스는 지금까지 우리 국민들에게 활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마케팅업계에서는 박카스에 대량(Mass) 생산, 대량 판매, 대량 광고라는 3M 방식을 적용한 것에서 성공 요인을 찾는다. 그런 이유로 혹자는 박카스의 성공이 동아제약에 엄청난 부를 안겨줬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강 회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초창기만 해도 박카스에는 엄청난 사치세가 붙어 이익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내야 했다. 동아제약은 현찰 거래를 통해 수익을 확보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선 약국에 물건을 공급하고 그 자리에서 현찰로 대금을 결제해야만 그 다음달 정부에 세금을 낼 수 있었서다. 동아제약이 선진 물류기법을 서둘러 도입해야 한 것도 박카스의 수익성을 꾸준하게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는데, 이 모든 것이 선순환되면서 동아제약이 기반을 다지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카스는 동아제약과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제품이라 할 수 있다.

손 교수 | 동아제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국민 드링크제 박카스입니다. 어떤 이유로 제품을 만드셨는지 궁금합니다.  

강 회장 | 사람을 새로 뽑고는 뭔가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그때를 생각해보면 우리 제약업계에 제품다운 제품이 없었어요. 우리 동아제약도 아버지께서 만드신 생명수(소화제)가 주제품이었을 뿐 별다른 게 없었죠. 당시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80달러 남짓하던 시대였어요. 생활이 어려우니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즐기는 것이라고는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일뿐이었죠. 당연히 간이나 장이 안 좋을 수밖에요. 그래서 건강에 좋은 것 뭐 하나를 만들자, 그럼 뭐가 좋냐. 이런 얘기가 오가던 중 비타민도 좋겠지만 타우린으로 뭔가를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타우린이 간 기능 개선에 도움을 주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우리는 타우린을 만들 기술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961년 일본 다이쇼(大正)제약에서 타우린을 공급받을 수 있었는데 그게 박카스의 시작입니다.

그때 박카스가 얼마였는지 아세요? 40원이었는데, 그때 돈으로 치면 꽤 비싼 겁니다. 그래서 물품세(현 특별소비세)가 30%나 붙었던 거예요. 일종의 사치품이라고 여긴 거죠. 이익의 30%를 돌아오는 달 세금으로 내야 하니 어쩌겠어요. 현찰로 거래하지 않으면 회사 운영 자체가 어려워지는 구조였어요. 지금도 다른 제품은 아니지만 박카스만큼은 현찰로 거래하고 있어요.

지금 박카스 소매가가 500원(평균)인데 출고가는 407원(부가세 포함)이에요. 407원에 병값, 인건비, 약품값, 포장값, 물류비 등이 들어가니 이익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많이 나가니까 이익이 되지 적게 팔리면 이익이 없어요. 물론 지금도 될 수 있으면 가격을 안 올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점점 인상 압력이 커져 걱정이에요. 생각해보세요. 지난 십년간 인건비가 얼마나 올랐습니까. 한 해에 두 자릿수 이상 뛴 적도 있어요. 솔직히 사회봉사 차원에서 이 가격을 유지하는 면이 많습니다.

Tip | 동아제약의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

15년 동안 한반도 8회 종단한 국토대장정

동아제약이 벌이고 있는 사회공헌 활동은 셀 수 없이 많다. 국내 기업들이 최근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을 강조하며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는 것과 달리 강신호 회장과 동아제약은 10여년 전부터 소리소문 없이 사회헌신과 봉사를 몸소 실천해왔다. ‘박카스와 함께하는 대학생 국토대장정’은 지난 1998년 시작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여는 대표적인 국토대장정 행사다. 강 회장은 매년 이 행사에 참석해 참가자들과 4㎞ 정도씩을 함께 걷는다. 올해도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2㎞를 걸었다. 지난 15년간 이 행사에 참석한 인원만 2137명으로 코스 누적 길이만 9457.5㎞다. 한반도 전체(약 1100㎞)를 약 8회 이상 종단한 거리다. 강 회장은 “20일 동안 600㎞를 걸으면서 고통을 이겨내다 보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며 행사 의미를 강조했다. 이 밖에도 강 회장은 지난해부터 자사주를 매도해 이를 자신의 호를 따 만든 수석(水石)문화재단에 기부하는 선행을 펼치고 있다. 수석문화재단은 1987년 설립한 학술장학재단이다.

손 교수 | 말씀을 듣고 보니 박카스가 그냥 일반 드링크제가 아니라 약으로 시작된 거로군요. 그렇다면 경쟁 제품에 비해 박카스가 오랜 기간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강 회장 | 지향점이 달랐다고 할까요.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눈앞의 이익만 생각했다면 오래 팔지 못했을 겁니다. 국민의 건강을 좋게 하기 위해 공익적인 차원에서 값은 최대한 올리지 않고 품질 개선에만 주력한 것이 경쟁사 제품보다 장기간 팔린 이유라고 할 수 있죠. 의약품이라는 게 뭐겠습니까. 사람의 건강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병을 치료하는 게 의약품 아니겠어요? 병들지 않고 일하면서 소득이 늘어나야 잘사는 겁니다. 저는 평소 중산층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정말 중산층은 건강해야 합니다. 아프지 말아야 해요.

손 교수 | 박카스 하나에도 이런 깊은 뜻이 숨겨 있는지 몰랐습니다. 강 회장님께서는 자신만의 확고한 기업 철학을 소유하신 경영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 자리를 통해 후배 경영자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강 회장 | 저는 특별히 남에게 자랑할 게 없는 사람입니다. 뭐가 있나요. 다만 굳이 어떤 생각을 갖고 인생을 살아왔냐고 물으신다면 △자기 일은 자기가 하고 △남에게 폐가 되지 않으며 △남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요사이 한·일관계가 냉랭해졌지만 저는 일제시대(일본강점기) 때 이 3가지에 대한 교육을 참 철저하게 받았습니다. 또 독일 유학시절에는 일에서 찾는 즐거움과 약속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어요. 제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인 1950년대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 경제부흥이 한창이던 때였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독일인들은 일벌레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매사가 참 정확한 사람들이에요. 약속 시간 하나를 지키는 것도 철저하죠. 그게 오늘날 독일과 일본 경제 부흥을 일으킨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Tip | 강 회장의 세계적 네트워크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와 교류


독일유학시절 만난 실존주의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왼쪽)

왕성한 대외활동 덕분에 강신호 회장은 국제적으로 탄탄한 인맥을 갖고 있다. 특히 젊은 시절 한국청년회의소(JC) 중앙회장으로 활약한 것은 훗날 강 회장이 세계 유수 기업의 경영자들과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이 됐다. 지난 9월 일본 메이지세이카파마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바이오의약품 제조시설을 합작해 짓는 것도 오랜 신뢰가 쌓였기에 가능했다. 현재 동아제약은 전이성유방암에 사용하는 항체의약품 개발과 관련해 메이지세이카파마와 공동임상을 진행 중이다.
한·일경제협회에서 함께 활동한 세토 류조 전 아사히맥주 회장(현 명예회장)과 일본 게이단렌(經團蓮) 회장을 역임한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은 지금도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다. 그는 또 독일 유학시절 만난 실존주의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 교수와의 인연도 소중하게 여긴다. 학창시절 언어학, 철학 분야에 깊은 관심을 보인 강 회장은 프라이부르크대학 철학교수를 지낸 하이데거를 1956년 박종홍, 이문호 전 서울대 교수, 서동익 전 중앙대 교수와 함께 찾아가 실존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하이데거의 산장이 있던 토트나우베르크에서 찍은 빛바랜 사진(위)은 지금도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혹자는 강 회장을 가리켜 전형적인 ‘몰입형 경영자’라고 말한다. 강 회장이 번뜩이는 영감으로 수많은 동아제약 제품을 작명(作名)한 것도 제품 특징부터 고객 반응까지 여러가지를 다각도로 분석한 몰입의 결과다. 실제로 강 회장이 직접 제품명을 지어 상표를 특허출원한 것은 2000여개에 달한다.

손 교수 | 회장님께서 손수 제품 이름을 지으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기준을 갖고 제품 이름을 지으시는지 궁금합니다.

강 회장 | (테이블 위에 놓인 드링크제 에너젠을 들고) 이것만 해도 그래요. 1956년 독일에 갔을 때 한 회사가 만든 에네르겐(Energen)이라는 제품을 봤는데, 그게 에네르기(Energie : 에너지)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이거든요. 처음 보는데 ‘이름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독일에서 돌아오자마자 상표등록부터 했습니다. 나중에 써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죠. 그걸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써먹는 겁니다. 평소 아버지께서 “사업 하는 사람은 상표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상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그런지 제가 상표로 등록한 것만 2000건이 넘어요. 작명 기준을 물어보셨는데, 저는 일상용어와 관련된 걸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면서 제품명이 상품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것이면 더욱 좋습니다. 가급적 제품 이름은 3~4글자를 넘지 않아야 하고요. 가령 나랑드사이다(동아오츠카에서 만드는 다이어트 사이다)는 ‘나랑 같이 드시는(먹는) 사이다’의 줄임말이에요. 감기약 판피린은 피린(Pyrine : 소염, 진통, 해열제) 계통의 화학물질인 아미노피린, 스루피린이 들어간 것에 ‘판(여러가지)’이라는 단어를 붙인 거죠.

손 교수 | 대단하십니다. 그렇게 많은 제품 이름을 손수 지으려면 여러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야 할 것 같은데요.

강 회장 | 다행히 저는 여러 나라 말을 좀 하는 편입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웠습니다. 일제 치하에 있었으니 일본말은 기본으로 하고, 독일에서 공부했으니 독일어도 좀 하는 편이죠. 여기에 영어, 중국말까지 하니까 이른바 단어끼리 연상, 영어로 말하면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이 가능해지더군요. 또 이런 일도 있었어요. 1956년에 아까 말씀드린 이문호 선생, 프라이부르크대에 공부하던 일본인, 그리고 저하고 셋이 스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여행간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당시 우리 중에 이탈리아 말을 하는 사람이 누가 있었겠습니까. 빵 하나를 사먹으려고 해도 말을 할 줄 알아야죠. 그런데 며칠이 지나니까 단어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래서 이탈리아 말도 조금 배웠습니다. 그렇게 현장에서 배운 말들을 연상시키면 상품명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1994년 그룹 명 ‘동아쏘시오그룹’으로 제정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동아제약그룹의 정식 명칭은 동아쏘시오그룹이다. 동아쏘시오그룹 산하에 제약, 식음료, 물류, 기계부품, 정보통신 부문 계열사가 한데 묶여 있다. 쏘시오(Socio)라는 단어는 ‘사회’라는 뜻의 소사이어티(Society)에서 따왔다. 1994년 당시만해도 국내 대기업 가운데 영어를 기업명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사회 헌신과 봉사를 최상의 기업 가치로 삼은 강 회장은 강력한 의지 표현 차원에서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이런 결단이 실제로 이어지기까지는 평생을 남을 위해 살겠다는 ‘위민(爲民)’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손 교수 | 그룹 이름에 ‘쏘시오’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강 회장 | 저는 지금도 직원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그래요. 사람이 태어나서 평생 동안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요. 이런 말하면 쑥스럽지만 저는 지금도 제 개인을 위해서는 돈을 잘 쓰지 않는 편입니다. ‘쏘시오’라는 기업이름을 쓴 것도 사회를 위해 뭔가 이바지하고자 해서 그런 겁니다. 기업이 이익을 내고자 하는 것도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첫째 종업원을 위해서, 둘째 투자자 즉 우리 회사에 투자한 주주를 위해서죠. 세 번째는 국가에 세금을 많이 내고, 네 번째는 인재 양성, 다섯 번째는 연구 및 시설 투자를 위해섭니다. 이렇게 해서 기업이 이익을 낸다면 그 다음에 해야 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다. 사회봉사죠. 우리가 혼자 사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제가 회사에 들어왔을 때 사회정의에 기반을 둔 기업목표부터 정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우수한 의약품을 생산해 인류의 건강과 복지향상에 기여한다’는 내용의 사시예요.

Tip | 강신호 회장 리더십

남을 위한 헌신을 평생 몸소 실천

강신호 회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外柔內剛)형 최고경영자(CEO)라는 게 주변 지인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의사 출신 CEO답게 인화를 기본으로 삼고 조직을 관리하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엄격하다. 85세의 고령에도 강 회장은 매일 아침 5시에 기상해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연다. 틈날 때마다 학습에 매진하는 것도 몸에 밴 오랜 습관이다. 손에서 책을 떼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는 수불석권(手不釋卷)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3~4년 전부터 시작한 중국어는 이제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가 가능한 수준이 됐다.

반면 한번 목표를 정하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강 회장의 또 다른 리더십이다. 강 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 있던 시절 상근부회장으로 활동한 조건호 대한바둑협회 회장의 설명이다.
“당시 재계가 출자총액제한제 폐지를 정부와 추진하고 있었는데, 보기에 따라 다소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 강 회장님이 쉽게 이해하시고는 대응책을 마련하더군요. 봉사정신이 몸에 밴 상태라 늘 아랫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려는 점도 지금와선 높게 평가됩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헌신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많은 이들은 대외 활동 중인 조직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강 회장은 단 한번도 외면치 않고 도움을 줬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산기협) 회장으로 활동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강 회장이 산기협 회장으로 활동하던 때 협회 감사였던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현 산기협 수석부위원장)의 설명이다.

“회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산기협 전체 조직이 크게 흔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상근부회장과 제가 회장님을 찾아가 자문기구조직을 맡아달라고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승낙하시더군요. 이미 협회 회장을 역임하신 분이 뭐가 아쉬워 자문기구 운영을 맡으셨겠습니까. 그게 다 공익을 위한 헌신이니까 그런 거지요. 남을 배려하는 그분의 마음은 후배 경영자로서 정말 본받을 만한 일입니다.”

손 교수 | 대개 기업들은 사훈, 사시 등을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는 것에 급급한데 강 회장님은 그걸 현장에서 그대로 적용하시려고 노력하는 편이시군요.

강 회장 | 우리 회사에서 일하려면 이런 뜻부터 맞아야 해요. 요사이 현실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게 다 본인이 할 것을 본인이 손수 하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그리고 남을 위해서 사는 맛을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남들은 비싼 만년필을 들고 다니지만 이거 보세요(주머니 속에서 손때 묻은 값싼 볼펜을 꺼내며) 전 이게 답니다. (오래된 흔적의 명함 지갑을 꺼내며) 이 명함지갑도 한 40년 정도 썼을 겁니다. 대신 남들에게 돈은 많이 써요. 장학재단 만들어 지난해까지 26년간 1498명에게 21억원의 장학금을 줬으니 돈 많이 썼죠. 또 ‘밥 퍼’라는 봉사활동 때 밥도 퍼주고(다일공동체 밥퍼운동), 추석 때 독거노인들에게 쌀과 연탄배달도 하고, 뭐 그런데서 재미를 찾습니다. 상주고등학교를 40여년간 운영해왔고, 조만간 미얀마에 직업학교도 만들려고 해요.

손 교수 | 회장님 말씀을 들으면서 요사이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재능기부’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군요. 결국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이나 전국경제연연합회 회장을 맡으신 것도 순전히 사회봉사 차원에서 결정하신 듯 보이는데요.

강 회장 | 산기협(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에요. 전경련 회장도 손길승 회장(현 SK텔레콤 명예회장)이 갑작스럽게 그만둬서…. 사실 전경련은 사고가 있을 때는 정관에 회장을 나이 순으로 하게 돼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전경련 회장이 될 만한 자격이 없다고 하고 일주일 정도 피했어요. 피하다 보니까 매스컴에서 내가 뭘 잘못해서 피하는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어 잔여기간만 하려고 수락했는데, 한 번 더하라고 해서 한 번 더 했죠. 그때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인데, 전경련 회장 자격으로 노 전 대통령과 해외 순방을 함께 다닌 나라가 따져보니까 32개 나라더군요.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회장으로 한 것 중에 임기가 짧은 게 별로 없어요. 임기 2년인 제약협회장은 한 번만 더할 수 있어서 4년 했지, 웬만한 건 거의 5년 이상 했습니다. 서울대 의과대학 동창회장도 11년 하고 유엔협회 부회장도 거의 40년 하고요. 전 지금까지 대외활동할 때 저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맡은 외부 직책만 수십개쯤 될 겁니다.


강신호 회장은 과학기술훈장 1등급인 창조장과 일본 최고훈장인 욱일대수장 등 국내외로부터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Tip | 신약개발 과정

자이데나 조만간 미국 수출 길 열려

동아제약이 국산 신약 개발에 착수한 것은 지난 1993년 무렵이다. 이은방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 교수가 스티렌 유효성분인 ‘유파틸린’의 항궤양효과에 대해 발표했다는 소식을 접한 강 회장은 유파틸린의 개발 가능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2년 후 당시 연구소장인 김원배 소장(현 동아제약 사장)은 천연물과학연구소와 산학연 공동연구를 체결했다. 그전까지 위염치료제는 대부분 위산분비 억제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 제균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치료 후 재발률이 높았다. 반면 스티렌은 위 점막 재생작용을 촉진시켜 재발률이 기존 제품보다 낮다. 이렇게 개발된 스티렌은 지난 2002년 발매된 후 꾸준히 판매돼 지난해에는 877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그 다음으로 개발된 신약은 발기부전치료제 자이데나다. 1997년 시작해 지난 2005년 신제품으로 출시된 자이데나는 발기부전치료제로는 세계에서 4번째로 개발된 신약이다. 발매 첫해 1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자이데나는 미국 내 임상 3상이 완료됐으며 현재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준비 중이다. 현재 러시아, 말레이시아, 인도, 필리핀 등에 수출되고 있으며 터키에는 원료인 유데나필이 판매되고 있다. 지난 2008년 러시아에 첫 수출된 이후 지금까지 판매금액은 67억원이다. 이외에도 동아제약은 지난해 12월 기능성 소화불량증 치료제 ‘모티리톤’도 개발해 국내 제약업체 중 가장 많은 신약개발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최다 신약개발 ‘이젠 글로벌 No.1 꿈꾼다’

최근 국내 제약업계는 3중고를 겪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약가 인하정책으로 수익은 줄어드는 대신 정부가 의약품 제조기술 기준 및 허가규정을 강화하고 나서 시설 및 연구·개발(R&D) 투자비는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복제약 제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행히 동아제약은 일찍부터 기술개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신약개발 등의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실제로 동야제약에는 국내 제약 분야 ‘최초’라는 수식어가 달린 것이 여러 개다. 용두동에 효소공장을 세운 것을 비롯해 1985년에는 국내 최초로 KGMP업체로 지정받았다. KGMP 연구소를 세우고 연수원을 지어 직원 교육에 나선 것도 업계 처음이다.

신약과 관련해서도 동아제약의 발자취가 곧 우리 제약업계의 역사라고 할 정도다. 강 회장은 지금도 직원들에게 “글로벌 시대 국내 1위 제약회사는 이제 의미가 없다. 세계 속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신약개발만이 살 길이다. 그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고 강조하며 신약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손 교수 | 올 초 신년사에서 직원들에게 올해를 글로벌 제약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원년으로 삼겠다고 하셨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강 회장 | 제가 회사에 들어온 지 20년쯤 돼서 연구소를 만들었어요. 연구소를 만들어야 인재를 키울 수 있고, 인재를 키워야만 세계 제약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보를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래야 좋은 신약을 만들 수 있고요. 지난해 연구소를 개조, 신축했는데, 외국 사람들도 우리 연구소에 오면 “한국에 어떻게 이런 연구소가 있을 수 있느냐”고 깜짝 놀랍니다. 그만큼 시설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뜻이죠.

우리 동아제약의 꿈은 전혀 새로운 신약, 요사이 말로 하면 혁신 신약을 만드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혁신 신약이라는 건 병의 원인이 뭔지 찾아서 고치는 약이에요. 예를 들어 지금 치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습니까. 그걸 우리가 고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저는 그래서 치매 하나만 획기적으로 고칠 수 있는 사람이나 약이 나온다면 그게 종교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더 훌륭하다고 봅니다. 혁신 신약을 못 만들면 일반 신약이라도 만들어야죠. 새로운 신약이 없으면 수출을 못해요. 일반적으로 알려진 약 가지고 장사가 됩니까. 그리고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명인데 여기서 약 팔아봐야 뻔해요. 세계로 나가야죠. 세계로 나가려면 신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큰 제약회사는 연구원이 1만명이 넘는 거예요. 다행히 우리는 운이 좋아 1호, 2호, 3호 신약을 만들었어요. 4호, 5호 신약은 지금 준비 중이고요. 연구비가 너무 많이 들어 외국 회사와 공동으로 연구하는 항생제도 있고요. 글로벌 시대는 자기 혼자서 하는 시대가 아니거든요. 여럿이 함께 잘해야죠. 그런데 이렇게 신약개발을 하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운도 따라야 해요. 예를 들어볼까요. 제약업계 전체를 합쳐도 대형 중공업회사 매출 하나만 못합니다. 제약업계 1위라고 자랑해봤자, 그거 아무 소용없다는 뜻이죠. 세계에서 인정받는 것을 자랑해야지 1위 가지고 자랑해봤자 뻔해요.


강신호 회장이 한·일 양국간 교류협력을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최고훈장 욱일대수장 증서 앞에 포즈를 취했다.

손 교수 | 지금까지 만드신 신약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강 회장 | 1호가 스티렌이라는 건데, 위염 치료제예요. 그게 지금 연 9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죠. 제가 신약개발을 줄기차게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인류에 봉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항생제도 잘 안 듣는 시대잖아요. 모든 병에 잘 듣는 항생제, 그래서 제가 슈퍼박테리아를 제거할 수 있는 약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지금 미국에서 3상 임상이 진행 중인데 우리가 이걸 다 하려면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드니까, 모 기업에 “우리 것이지만 당신이 해주시오. 그 대신 당신에게 세계 판권을 주겠소. 대신 한국에서는 우리가 팔겠소”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물건을 만들더라고요. 그렇게 신약을 만드는 회사가 국내에 많지 않다는 게 안타까워요.

손 교수 | 동아제약은 해외 기업들과 합작, 제휴를 잘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강 회장 | 저는 비즈니스맨이라기보다는 비즈니스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오츠카도 그래요. 30년 전인가, 무작정 일본 오츠카를 찾아가 “한국의 동아제약에서 왔는데, 저녁 좀 사 달라. 당신네하고 친해지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저녁을 얻어먹고 인간관계를 유지했죠. 이후 일본경제가 수출을 많이 하고 좋아지니까 오츠카에서 “스포츠음료 포카리스웨트를 같이 하자”는 거예요. “그럼 그렇게 하자” 그래서 한 겁니다. 비겐크림톤(염색약)도 저쪽(일본)에서 같이 하자고 해서 한 거지, 우리가 먼저 제안한 게 아니에요. 우리 회사 제품 대부분이 그렇게 해서 한 겁니다. 결국 비즈니스라는 게 사람이 전부예요.

▒ 강신호 회장은…

1927년 경북 상주 출생. 52년 서울대 의대 졸업. 58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의학박사. 75년 동아제약 대표이사 사장. 81년 동아제약 대표이사 회장(현). 66년 제16대 한국청년회의소 중앙회장. 83년 서울대 의과대학 동창회장. 87년 한국제약협회 회장. 제29, 30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 손욱 교수는…

1945년 경남 밀양 출생. 67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75년 삼성전자 입사. 98년 삼성전관(현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 99년 삼성종합기술원 원장. 2004년 삼성인력개발원 사장. 2008년 농심 대표이사 회장. 2010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현).  
 

Tip | 투명경영기업 동아제약

“노조는 적 아니라 동반 성장 파트너”


강신호 회장은 지금까지 경영의 투명성을 제1원칙으로 삼아왔다. 전무 시절인 1970년 기업공개를 통한 자금조달로 다른 제약업체들과 확실하게 차별화한 것은 ‘정도 경영이 곧 기업 성장의 지름길’이라는 올곧은 생각에서 비롯됐다. 당시 국내 상당수 기업들은 고도성장을 위해 일시에 자금을 빨리 모을 수 있는 고리 사채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때였다. 당시 강 회장은 “기업공개는 기업 입장에서는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어 좋고, 사채를 쓰지 않으니 원금, 이자부담이 줄며 거래처들이 동아제약의 실질적 주주로 나서게 되니 이 또한 기업경영에 유리하다”며 기업공개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동아제약은 당시 제약업계로는 최초, 전체 기업 중에는 44번째로 기업공개에 성공했다. 공모주 청약 결과도 기대 이상인 250%를 기록했다. 이 일로 선친인 강중희 회장은 한국상장사협의회 초대 회장에 추대됐다.

유통망을 획기적으로 바꾼 것도 혁신적인 사건이다. 동아제약은 1965년 일선 약국과 직접 특약점 계약을 맺어 일정액의 계약금을 받으면 매월 일정한 이자를 지급하면서 각종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제공하는 DSC(Dong-a Sales Circle) 제도를 도입했다. 중간 단계에서 이익을 취하고 있던 도매상들의 반발이 이어졌지만 강 회장(당시 전무)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이를 밀어붙여 성공시켰다.

동아제약에 노조를 만든 것도 강 회장이다. 강 회장은 “경영자들은 노조라면 귀부터 닫는데 노조 얘기를 듣는 것도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된다”면서 “회사 경영 전반에 대해 노조와 토론하면서 공감대를 맞춰가는 것은 동아제약의 오랜 전통”이라고 설명했다. 강 회장에게 노조는 대립의 관계가 아닌 회사 성장과 발전을 위한 협력 파트너다. 강 회장의 설명이다.
“우리 노조는 안 팔린 물건이 있으면 추석이나 연말에 노조 돈으로 회사 제품을 사 주변에 선물용으로 씁니다. 이렇게 회사 발전을 위해 고민하는 노조를 왜 안 만듭니까.”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전 농심 회장 / 정리 -송창섭 기자

97호 2012년 11월 01일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