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납세자 등의 신속한 권리 구제를 위해 필요한 ‘조정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황정훈 조세심판원 원장은 1월 23일 인터뷰에서 ‘2024년 가장 성과를 내고 싶은 분야’를 묻자 “심판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양측의 입증 부족으로 사실관계의 확정이 곤란해 사건 처리가 지연되거나 납세자에게 불리한 결과가 발생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황 원장이 도입 필요성을 제기한 ‘조정제도(Mediation)’는 과세액 5000만원 미만 소액 사건 중 △상속·증여 부동산의 시가 평가 △증빙이 불분명한 영세사업자의 수입 금액 관련 등 특정 사안에 대해 전문가로 구성된 조정위원회가 마련한 조정안에 대해 양측 당사자가 동의할 경우 행정소송 제기 전 단계인 행정심에서 분쟁을 조기에 종결하는 제도다.
황 원장은 “중립적 전문가가 마련한 조정안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조정제도는 사건 처리 지연으로 인한 납세자의 어려움에 실효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2년 7월부터 조세심판원을 이끌고 있는 황 원장은 “불편부당(不偏不黨) 원칙에 따라 우리나라 최고의 납세자 권리 보호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겠다”면서 “조세심판원의 불편부당은 헌법상 원칙인 ‘가부동수(可否同數)이면 부결(否決)’이듯 ‘과세처분의 위법・부당에 대한 판단이 반반(半半)’이면 가급적 ‘납세자 이익’으로 결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法諺)이 있듯이, 장시간이 소요된 후 사건이 종결된다면 납세자와 과세 관청 모두에게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이므로 ‘신속한 납세자 권리 보호’라는 조세 심판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고, ‘심판불신(審判不信)’의 원인이 돼 ‘정부 불신’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면서 “앞으로도 신속과 공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 더욱 신뢰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조세 불복 신청 건수가 최근 5년 사이 두 배가량 증가했다는 통계를 봤다. 조세 불복 사건이 늘어난 배경은.
“잠재성장률 저하, 불안정한 대외 경제 여건 등으로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고물가 지속으로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환경 변화 속에서, 지난 정부에서 종합부동산세 등 재산 과세가 대폭 강화되고,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 의식이 향상된 것이 조세 불복 사건 증가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소셜미디어(SNS) 등으로 납세자 간 소통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동일한 내용의 과세처분에 대해 여러 납세자가 공동으로 불복하는 대량 병합 사건이 증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구조가 고도화하면서 세법과 과세처분 자체도 복잡·다기화해, 구글, 넷플릭스 등 다국적 플랫폼 기업에 대한 과세같이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과세 이슈가 발생한 것도 조세 불복 사건 증가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 권리 의식이 높아졌다. 대응 방향은.
“조세심판원은 그간 사건 조사서를 심판관회의 개최 이전에 양측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미리 공개하는 ‘사전열람제도’같이 납세자 방어권 보장을 위한 제도를 선도적으로 도입하는 노력을 지속해 왔다. 그 결과 2023년에는 처리 대상 사건이 2만30건으로 역대 최대인 상황 속에서도 1만6485건의 사건을 처리해 사건 처리율 82.3%라는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높은 사건 처리율을 달성하면서도 20% 수준의 양호한 인용률을 기록해 납세자 권리 보호에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조세심판원이 납세자에게 재산권 보호에 있어 최고의 기관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조세 소송과는 달리 행정심인 조세 심판은 사건 처리의 신속성이 중요하다고 한다.
“신속한 사건 처리를 위해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했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신속한 사건 처리가 이뤄지도록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먼저 심도 있는 사건심리를 위해 준사법 절차로서 도입되었으나 과세 관청의 관행적인 답변서 지연 제출 등으로 신속한 사건 처리의 장애 요소로 작용해 왔던 ‘표준처리절차’를 폐지했다. 그리고 심판부에서 의결한 내용이 판례나 선결정례에 배치되는 것은 없는지 여부 등을 검토하는 조정 업무 담당자의 직급을 높여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했다. 조정 업무의 결재 단계를 축소해 신속하고 독립적인 조정 검토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또한 노동분업화(Division of Labor) 원리에 입각해 조정팀 내 세목별 담당관제를 시행함으로써 해당 세목에 대한 조정 역량을 대폭 강화했다.”
조세 불복 청구 1년 이상 장기 미결 사건 등은 어떻게 대응하나.
“장기 미결 사건은 복잡·다기한 고난도 사건으로, 처리 지연 원인이 다양해 기존의 관리 방법으로는 이를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장기 미결 사건 처리 실적을 직원 업무 평가 기준에 포함해, 성과급을 주거나 실적이 우수한 직원을 우수 조세 심판인으로 선정하거나, 해외 출장 등으로 해외 선진 기관을 방문하도록 하는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결과 장기 미결 사건 수가 2022년 말 552건에서 2023년 말 342건으로 대폭 감소했다.”
신속한 사건 처리를 강조하면 자칫 납세자 권리 보호라는 본연의 임무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납세자 권리 보호를 위해서는 신속성뿐만 아니라 전문성과 공정성도 매우 중요하다. 능력 있는 전문가가 조세심판관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비상임 조세심판관의 2회 중임 제한 규정을 합리화했다. 2회 임기 만료 후에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위촉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직무 태만, 품위 손상 등 결함 사항이 생기면 해촉이 가능하도록 해 부작용을 완화하려 한다. 민간 경력자 채용, 임기제 공무원 채용 및 부처 간 공모 등을 활용해 민간과 공직 내에 유능한 인재를 등용해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
전문성 강화를 위한 노력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심판 사건이 복잡·다기화하면서 어느 때보다 조세심판원 직원의 전문성 강화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전체 130여 직원 중 조세 관련 전문 자격 보유자를 최대한 확대해, 변호사·회계사·세무사・관세사 등이 조사 관련 핵심 인력(100명)의 5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직원에게 인터넷 강의나 전문서적을 구입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유연근무를 활용해 연구하면서 일할 수 있는 직장 문화를 만들고 있다. 또 성과주의를 강화한 인사 기준을 적용해 직원이 자기 계발을 통한 전문성을 제고하도록 하는 한편,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확립해 하위 성과자에 대한 상시 관리 체제를 구축·운용하고 있다.”
조세심판원은 어떤 기관?…청렴도 평가 1등급 비결은
조세심판원은 국세, 관세 및 지방세와 관련한 국세청 등 과세 관청이 부과한 세금에 대해 납세자가 불복해 심판을 청구하면, 이에 대해 심리하고 처분을 내리는 행정심판 기관이다. 과세처분의 위법・부당함이 확인된 경우 그 과세처분을 취소하거나 납세자에게 필요한 다른 처분을 함으로써 납세자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세심판원은 1975년 재무부 산하 국세심판소로 설립되어, 2008년 지방세 불복까지 포함하는 국무조정실 소속 조세심판원으로 확대 개편된 후 2025년이면 개청 5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납세자와는 달리, 국세청 등 과세 관청은 조세심판원의 결정에 불복하여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기 때문에 조세심판원은 행정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운 납세자의 권리를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구제하는 확실한 납세자 권리 보호 기관이다. 2022년 기준, 조세심판원 이외에 조세 불복을 담당하는 국세청・감사원에 청구된 사건을 합한 전체 조세 불복 청구 사건 중 90% 이상을 처리하고 있다.
조세심판원은 2022년 국민권익위원회의 중앙 부처 청렴도 평가 1등급에 올랐다. 2022년 7월 취임한 황정훈 원장의 청렴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최고의 성과를 낸 것이다.
매주 개최하는 심판관회의 직후에 의견 진술을 위해 회의에 참석한 납세자에게 ‘온·오프라인 만족도 설문 조사’를 실시했고, 납세자가 댓글이나 편지 등으로 친절한 응대에 대해 감사 표시를 한 ‘친절우수직원’을 포상하고, 청렴 관련 외부 강의를 듣는 ‘청렴워크숍’을 개최했다.
각 심판부의 조사관(과장), 행정실 내 팀장과 팀원 등 사무관 인사에서 다양한 입직 경로의 인력을 적재적소에 안배함으로써 인사의 공평성을 강화하고, 실력과 성과에 기초한 인사 운영에 따른 조직 문화를 정착시킨 것도 청렴도 개선에 한몫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