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식 그린필드(greenfield) 공장이 늘어나면서 반도체 산업 전반의 지속 가능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생산 방식 전환 노력을 강화하면 그린필드 공장뿐 아니라 기존 브라운필드(brownfield) 공장의 에너지, 물, 공정 가스 소비량도 절감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 주기에 따라 에너지, 물, 공정 가스 소비량이 등락을 보인다. 하강기에는 지구 온난화 지수(GWP)가 하락하고 활기를 되찾으면, GWP도 상승한다. 지속 가능성을 절대적 수치로 계산하면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특히 등락을 보이면서도 성장 속도가 매우 가파른 반도체 산업의 경우 절대적 수치로는 지속 가능성 실상을 파악할 수 없다. 반도체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측정할 수 있는 더욱 정확한 지표는 매출 1달러를 창출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물, 공정 가스 소비량을 측정하는 ‘원단위’다. 딜로이트는 2024년 반도체 산업의 용수와 에너지 원단위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1│에너지 효율성 개선 및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반도체 생산은 에너지 집약적이다. 실리콘 용해, 고출력 레이저 노광, 진공 형성 및 유지, 세정 등 생산공정 전반에 걸쳐 막대한 전력이 소요된다. 반도체 공장의 메인 팹은 시간당 최대 100Mwh의 전력을 소비하는데, 평균치로 봤을 때 북미 8만여 가구의 전력 소비량에 맞먹는 수준이다.
반도체 산업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에너지 사용과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다. 첫째, 제조 공정의 에너지 효율성을 개선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조의 한계를 깨뜨리는 첨단 기술을 누가 먼저 개발하느냐의 경쟁이 가혹할 만큼 치열한 반도체 산업 특성상 에너지 효율성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둘째, 설비의 에너지 효율성을 더욱 빠르게 개선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그린빌딩위원회의 글로벌 친환경 건물 인증 제도인 LEED 인증을 받은 건축물은 지난 10년간 반도체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개선한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반도체 산업이 두 가지 방향을 함께 추진한 결과, 와트시(Wh)당 달러(Wh/$)로 집계한 반도체 산업의 에너지 집약도가 2020년 240에서 2024년에는 206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반도체 산업의 에너지 믹스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28%로, 2020년에 비해 두 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용수 사용량 절감
글로벌 반도체 산업이 2019년 소비한 용수량은 1조L(약 2640억 갤런)에 달한다. 반도체 산업의 용수는 대부분 제조 공정(76%)에서 쓰이지만, 냉각 타워(9%)와 스크러버(11%)에도 쓰인다.
스크러버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다음에서 설명할 공정 가스를 정화하는 것인데, 정화 시스템을 활발히 작동할 필요가 없을 때는 비가동 모드로 전환해 용수 사용량을 98% 줄일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공정 용수와 냉각수 사용량도 줄일 수 있다.
3│공정 가스의 환경 유해 영향 감축
반도체 산업에서 사용되는 공정 가스는 대체로 GWP가 매우 높다. 식각과 세정 공정에 쓰이는 불소화 가스 및 증착과 퍼징 공정에서 사용되는 산화질소 가스가 대표적이다. 공정 가스의 온실가스 효과를 줄이는 방법은 크게 △공정 개선 및 자원 사용 최소화 △대체재 사용 △정화 기술 등 세 가지가 있다. 이 중 첫 번째 방법이 이행하기에 가장 용이하다. 대체 공정 가스 탐색 노력도 일련의 성공을 거뒀으나, 대체재를 파악 및 검증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지금까지 돌파구라 할 만한 것은 옥타플루오로사이클로부탄(C4F8)을 대체할 수 있는 삼성전자의 G1 정도다. 따라서 세 번째 방법인 정화 기술이 반도체 산업의 온실가스를 줄이는 역용마(役用馬)로 작용한다.
반도체 생산의 지속 가능성 향상, 지구 살리고 수익도 개선
현대 반도체 공장은 거대한 둥치와 뿌리, 여기저기 뻗은 나뭇가지와 풍성한 잎사귀를 가진 거목으로 가득한 우림과도 같다. 각종 장비와 클린룸이 둥치를 이루며 즐비한 메인 팹에서 고개를 들면 각종 파이프와 도관이 어지럽게 지붕으로 얽혀 있고, 바닥 아래 서브 팹에는 펌프와 정화 시스템, 스크러버, 전환 장치 등이 복잡한 뿌리를 형성하고 있다. 반도체 공장이라는 거대한 우림 생태계는 이처럼 실시간으로 접근하거나 모니터링하기 힘든 수많은 조각으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모델링을 수행하고 커넥티드 센서를 탑재해 자원 사용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하면, 용수와 공정 가스를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때 디지털트윈, 생성 AI, 5G 네트워크 등 기술을 활용하면, 용수와 에너지 유실을 포착하고,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을 때 비가동 모드로 전환하거나 전원을 차단할 수 있다. 공정 시스템 전환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겠지만, 제조업 전환에 따른 지속 가능성 효과와 비용 절감 및 효율성 개선 효과는 지구와 회사 수익에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
반도체 회사들이 지속 가능성을 개선하는것은 단순히 공익을 위함이 아니라 수익과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투자자(capital), 규제 당국(compliance), 구성원(constituent), 지역사회(community), 혁신(creativity) 등 이른바 ‘5C’ 프레임워크에서 기업을 평가할 때 지속 가능성이 갈수록 핵심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속 가능성을 개선하면 비용 절감뿐 아니라 고급 인력 쟁탈전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고, 공급망 취약성도 줄일 수 있다.
규제도 강화되는 추세다. 현재 상장 기업은 자체 시설의 직접 배출(scope 1)과 사용하는 유틸리티의 간접 배출(scope 2) 공시만이 의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규제 당국이 업스트림 공급망 및 다운스트림 가치 사슬을 포함하는 기타 간접 가치 사슬 배출(scope 3) 공시까지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반도체는 현대사회에서 사용되는 거의 모든 물건의 공급망에 포함돼 있다. 따라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규제가 특별히 강화되지 않더라도 규제 강화에 직면한 고객사가 반도체 회사에 높은 수준의 지속 가능성 기준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에너지와 가스, 물은 비싼 자원이며, 앞으로 관련 비용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치열해지는 인력 쟁탈전에서도 지속 가능성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첨단 기술 인력 쟁탈전은 반도체 산업에서뿐만 아니라 범산업적으로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에, 기업의 환경 영향 이력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이들 인력은 특히 젊은 층일수록 지속 가능성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에서 일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딜로이트 2023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 서베이’에 따르면, MZ 세대 여섯 명 중 한 명이 기후 우려 때문에 이직하거나 아예 직종을 바꾼 적이 있으며, 응답자 25%는 향후 그럴 생각이있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에너지와 용수 사용량을 줄이면 공장 위치 선택지가 대폭 늘어난다. ‘물이 없는 곳에는 반도체 칩도 없다’는 말이 있듯이, 최근 대만에서는 가뭄으로 반도체 생산이 중단된 사태가 발생했다. 아시아와 미국에서는 기후변화에 따른 정전으로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자원 의존도를 줄이고 지속 가능성 개선에 투자하면 위치와 상관없이 공급망 회복력도 그만큼 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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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단위
생산물 1개 또는 일정량의 생산물을 만들기 위해 필요로 하는 원재료나 연료, 또는 소요 시간 등의 수량.
와트시(Wh)/달러
생산 또는 소비된 에너지양을 와트시(Wh)로 측정해 들어간 비용(dollar)으로 나눈 값. 100Wh 의 전력을 소비하는 데 10달러의 비용이 든다면, Wh/$ 수치는 10이 된다. 상이한 시스템 간 에너지 집약도 및 비용 효율성을 비교하는 지표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