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태영건설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현장 실사를 맡았을 땐 솔직히 막막했다. 76곳이나 되는 사업장이 전국 곳곳에 있었고, 용도도 주택·오피스·물류 등으로 다양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실사 보고서 초안 제출까지 50여 일밖에 없었다. 단순 계산해 보면 하루에 1.5개 사업장 역사부터 이슈 파악, 적합성 검토와 사업성 분석까지 한 셈이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하 안진) 재무자문본부 산하 ‘부동산, 에너지 & 인프라(R EI·Real Estate & Infrastructure) 부문’을 이끄는 김재환 파트너는 최근 인터뷰에서 태영건설 PF 현장 실사를 다닌 소감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안진은 1월 말부터 태영건설 PF사업장을 돌며 개별 대주(貸主)단이 작성한 처리 방안을 분석하고 적정성 검토를 하는 한편, 대주단과 태영건설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을 분석했다. 안진이 현장 실사를 마무리하면서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 구조 개선 작업)의 윤곽이 곧 잡힐 전망이다.
회계법인 재무자문본부에서 하는 일이라고 하면, 대부분 인수합병(M&A) 자문 서비스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안진은 경쟁사로 회계법인이 아닌 CBRE·세빌스 등 글로벌 부동산 종합 서비스 기업을 꼽을 정도로 부동산 자산 자문 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안진 REI 부문은 오피스 등 상업용 부동산 매각 자문, 부동산 개발계획 수립, 물류 및 오피스에 대한 임대 자문 등 다양한 부동산 관련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 1분기에만 태영건설 건을 비롯해 한 대기업이 보유한 부동산의 유효 방안 분석 용역, 시티스퀘어빌딩 매각 자문 수주 등을 진행했다.
REI 부문 리더인 김 파트너는 한국공인회계사(KICPA), 미국부동산투자분석사(CCIM)로, 1997년 안진에 입사해 30년 가까이 재무자문본부에서 부동산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네이버 테크원(Tech1)·남산그린빌딩·여의도 KB금융타워 등 여러 상업용 부동산 매각 자문을 담당했다. 다음은 김 파트너와 일문일답.
회계사 출신으로 부동산 부문과 어떻게 연을 맺게 됐는지.
“1999년 글로벌 회계법인을 중심으로 재무 자문 서비스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회계사도 본인만의 확실한 전문성(인더스트리)을 갖추는 게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 생긴 재무자문본부로 부서 이동을 신청했다. 당시 5명으로 시작했던 REI 부문이 현재 120명이 근무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태영건설 PF 현장 실사 수주 비결은.
“태영건설 PF 현장 실사 수주는 태영건설 대주단으로부터 부동산개발사업장들에 대한 전문성과 인사이트(통찰력)를 보유한 안진 REI 부문 내 개발자문팀이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대규모 부동산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통상적으로 다른 회계법인의 부동산 관련 조직은 회계사 위주로 구성돼 있다. REI 부문은 회계사를 포함한 120여 명 규모의 큰 조직으로, 이 중 부동산 업계에서 온 산업 전문가가 70%를 차지한다.”
현재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나.
“최근 실사 보고서를 제출했고, 이를 바탕으로 작성된 기업 개선 계획안에 대해 채권단 대상으로 4월 18일 설명회를 진행했다. 실사에 따르면, 태영건설은 올해 최대 461억원의 자금이 부족할 수 있지만 정상 PF 사업장 준공으로 공사비를 받으면 내년부터 안정적 현금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태영건설처럼 PF 사업장에 대한 보증채무가 많은 건설사의 워크아웃은 해당 회사뿐만 아니라 관련 PF 사업장도 워크아웃에 준하는 절차를 밟는다. 건설사는 채권단이, 각 PF 사업장은 대주단이 관리한다. 건설사에 필요한 자금은 채권단이, 각 PF 사업장 신규 자금은 각 대주단이 지원하는 게 원칙이다.”
대규모 인력 외 다른 강점은 무엇인가.
“상업용 부동산 매각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다. 오피스, 물류·유통 시설 등 상업용 부동산 매각을 위한 자문사 선정 시 RFP(입찰제안요청서) 발송 리스트에 포함되는 회계법인은 이른바 ‘빅 4(삼일·삼정·한영·안진)’ 중 안진이 유일한 경우가 빈번하다.
안진이 매각 자문을 수행한 대표적인 상업용 부동산으로 그랑서울이 있다. 또 종로 타워8, 강남 오토웨이타워, 판교 카카오센터, 여의도 한화증권빌딩 등 주요 오피스 권역의 랜드마크 빌딩 매각 자문을 수행했다. 골프장으로는 송도 잭니클라우스, 호텔로는 신라스테이해운대 등을 꼽을 수 있다.
또 홈플러스, 이마트 등이 보유한 대형마트를 개발형 자산으로 전환해 다수의 성공적인 매각 자문 실적을 거뒀다. 평촌 롯데몰, 광교 롯데몰, 신도림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 등 대형 유통 시설에 대한 매각 자문 실적도 보유하고 있다. 3년 전 외부에서 물류 전문팀을 영입해 다양한 지역의 물류센터에 대한 매각 자문 및 임대 자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올해 2분기 오피스 시장 전망은 어떤가.
“2023년부터 재무적투자자(FI)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매각 건들은, 전략적투자자(SI)가 우선협상대상자인 건들에 비해 클로징(거래 종결)까지 긴 시간이 걸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도 이러한 추세에는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하반기부터 연기금·공제회에서 지분 투자를 재개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시장 참여자도 있지만, 저금리 시절의 유동성에 비하면 크지 않은 수준일 것으로 판단한다. 기관들은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을 바탕으로 투자 대상 자산을 선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도심 권역(CBD) 오피스 공급에 대한 우려가 많다. 다만 공사비 상승, 철거·공사 기간 증가로 인해 오피스 개발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현재 CBD 내 개발 예정 부지의 진척도를 감안하면 실제 공급은 예상보다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오피스 임대 시장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은 당분간 탄탄할 전망이며, 기관투자가의 시장 복귀가 시작되면 오피스 거래 시장도 회복될 것이다.”
중국계 이커머스 업체인 알리 익스프레스가 국내 물류센터 확보 계획을 밝혔는데, 시장에 어떤 영향이 있나.
“소매 시장 위축으로 경기 침체가 지속하고 있지만 이커머스 시장 성장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알리의 물류센터 투자 공식화로 물류 부동산 시장 내 새로운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과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데, 차별화를 위해 물류센터에 자동화 시스템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이에 최근 물류센터 부동산 시장은 규모의 대형화와 구조 고도화라는 패러다임 변화에 직면해 있다.”
주택 시장은 회복될 수 있다고 보나.
“금리·물가·공사비 등 부동산 시장 관련 주요 거시 경제지표 상승세는 안정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각종 주택 공급 활성화 정책도 발표되고 있지만 시장 내 효과는 미미한 상태로 침체가 계속되고 있다. 단기 시장 회복 가능성은 작다고 전망한다.
물론 금리가 정말 내려가면 시장 반등에 주요한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높은 건설비 및 하락한 주택 가격에 따른 사업성 부족으로 신규 개발 사업 추진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 당분간은 올해 활성화가 예상되는 부실채권(NPL)에 투자하거나 임대주택 등의 정책 사업 위주로 투자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