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와 무역 장벽
기본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특정 산업 분야에 대한 탄소 배출 기준이나 감축 표준이 강화되면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제품은 시장 접근이 어려워질 수 있다. 가령, 친환경 인증이나 에너지 효율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앞으로 글로벌 주요 마켓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탄소 규제를 도입하는 주요 선진 국가들은 해당 규제가 글로벌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본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은 모든 국가의 책임이며, 탄소 규제가 탄소 누출(Carbon Leakage) 같은 부작용을 차단하여 전 지구적인 감축을 달성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나아가 강력한 탄소 배출 규제가 오히려 녹색 기술에 대한 혁신을 촉진하여 새로운 시장과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엄격한 규제에 직면한 기업들이 배출 목표를 충족하기 위해 청정 기술에 투자하거나 새로운 녹색 산업으로의 전환을 꾀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주요 선진국을 제외한 개발도상국 등은 탄소 규제에 대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기술과 자원이 부족하여 탄소 배출을 신속히 줄이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러한 규제가 더욱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위해 탄소 집약적 산업에 크게 의존하는 개발도상국들에 탄소 규제가 무역 장벽으로 작용하여 공정 무역을 저해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유럽이 도입한 대표적인 탄소 규제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해 중국, 인도 등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인도는 CBAM이 발효될 경우 WTO에 제소할 계획이 있다고 밝힌 바 있고, 중국 또한 WTO 무역환경위원회 회의에서 최혜국 대우 원칙이나 내국민 대우 원칙 위반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탄소 배출 규제가 무역의 자유를 저해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렇다면 글로벌 탄소 규제 도입이 우리나라에는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될까. 유럽이나 미국 등 우리나라 주요 교역 상대국이 탄소 규제를 도입함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수출 경쟁력을 잃고 시장을 빼앗기게 되는 것일까. 뻔한 대답이지만 해외 탄소 규제가 우리 기업들에 무역 장벽이 될지 아니면 오히려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지는 앞으로 탄소 감축 및 친환경 전환 노력에 달려 있다.
주요 탄소 규제
글로벌 탄소 규제에 대해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EU가 도입하여 현재 시범 운영하고 있는 CBAM이다. EU는 2019년에 그린딜(EU Green Deal)을 발표하면서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선언함과 동시에 보다 효과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CBAM 도입을 공식화하였으며,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의무 시행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CBAM은 역외에서 역내로 들어오는 수입품에 대해 제품 생산에 기인한 탄소 배출량만큼의 탄소 가격을 지불하도록 하는 제도다. 즉, 역내 산업의 탄소 누출을 줄이고 온실가스 규제가 약한 국가에서 역내로 수입되는 제품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도입하는 일종의 관세 또는 그에 준하는 조치를 말한다. EU의 경우 탄소 누출 위험이 높은 철강, 시멘트 비철금속 등이 대상 제품이며, 해당 대상 제품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도 EU CBAM 규정에 따라 제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등 정보를 정기적으로 EU 당국에 제출해야 하고, 향후 의무 시행이 되면 제품 탄소 배출량 중 일부에 대해서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다음으로 현재 법안 발의 단계에 있는 미국의 청정경쟁법(CCA·Clean Competition Act)은 에너지 집약적인 수입품에 탄소 조정세를 부과하는 동시에 미국 내 동종 제조 기업의 탈탄소화를 장려하려는 법안으로, 수입 상품에 대한 탄소세를 미국 국내 탄소 가격과 결합하여 부과한다는 점에서 EU의 CBAM과 유사하다. 민주당이 발의했지만, 공화당의 지지를 받는 초당적 법률로 올 연말 미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통과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CCA 발의안에 따르면 현재 시멘트, 철강, 알루미늄, 제지, 석유화학 제품 등 총 12개의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제품에 대해 일종의 탄소세를 부과하며 점차 전기·전자 제품, 자동차 등 완제품으로 그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미국의 제품별 평균 탄소 집약도 기준에 근거하여 초과 배출량에 대해 톤당 약 55달러(약 7만원) 수준으로 탄소세를 부과하며, 미국 내 산업에도 초과 배출량의 정도에 따라 동등하게 부과한다. 법안은 배출량 톤당 부과액을 매년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여 5%씩 추가 인상하여 2030년에는 약 90달러(약 12만원) 수준으로 인상하며, 최빈국 면제 조항도 포함되어 있다.
이 밖에도 EU의 경우 그린워싱클레임, 녹색분류체계를 비롯하여 배터리법, 탄소 중립산업법, 공급망실사지침, 탄소제거인증프레임워크, 삼림벌채규정, 배출권 거래제, 에코디자인규정 등이 직간접적으로 탄소 규제를 포함하고 있는 대표적인 제도이다. 미국, 중국, 인도 등 다른 국가들도 일부 유사한 규제들을 도입하고 있다.
기업의 대응 전략
글로벌 탄소 규제가 계속 진화함에 따라 기업은 지속 가능성과 혁신을 우선시하여 변화하는 무역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여기에는 에너지 절감과 탄소 감축을 위한 기술 투자를 포함하여 공급망 최적화를 위한 노력 등이 포함될 것이다. 재생에너지 도입, 에너지 효율 향상, 자원 재활용 같은 기본적인 활동을 비롯하여 혁신적인 탄소 중립 기술의 개발과 도입 속도를 늦출 수 없는 실정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주요국 탄소 규제를 기회로 삼는 과감한 전략도 필요하다. 탄소 규제가 강한 국가들은 지속 가능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수 있으므로 글로벌 소비자의 친환경 제품에 대한 선호도 증가를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앞서 설명한 EU CBAM의 경우 내재 배출량 감축을 통해 저탄소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제도가 부여한 유연성을 활용하는 것도 필요할것이다. 우리 기업은 기존 국내 배출권 거래제나 목표 관리제 등을 통해 적용 중인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고, 전환 기간 중 특정 생산공정에서 실제 데이터 확보가 어려운 경우 EU에서 제시한 기본값 및 추정값을 활용할 수도 있다. 다만, 해당 유연성 규정은 전환 기간 내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것임에 따라, 의무 이행 기간에도 계속 유지할지는 알 수 없어 지속적인 제도의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EU CBAM과 유사한 규제를 도입하는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작용할 것이다.
국내에서 발생한 탄소 비용 관련 대응 논리 마련도 필요하다. EU CBAM 규정에 따르면 제삼국에서 지급해야 하는 탄소 비용을 감안하여 CBAM 부담액에서 차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배출권 거래제 대응 등에 따른 탄소 비용을 산출하여 CBAM 비용을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내 수출 기업들은 제품이나 서비스 생산과정에서 배출한 탄소에 대해 국내와 해외에서 이중으로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적 대응 노력은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상대국과 협의를 통한 합리적 방안 도출이 필요한 부분이다.
정리해 보면 글로벌 탄소 규제에 따른 무역 장벽화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은 생산공정을 친환경적으로 전환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해외 탄소 규제의 세부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즉, 기업들은 생산공정의 친환경 전환, 국제 협력과 기술 공유, 지속 가능한 경영 방침 수립, 공급망 관리, 해외 탄소 규제의 모니터링 등을 통해 글로벌 탄소 무역 장벽을 뚫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탄소 규제가 가져올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필요한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어렵겠지만 앞서 언급한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