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어촌마을의 넓은 갯벌. 사진 최갑수
장호어촌마을의 넓은 갯벌. 사진 최갑수

목덜미에 와 닿는 바람이 후덥지근하다. 여름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어깨에 내리꽂히는 햇살이 따갑다. 바다 생각이 간절하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뛰어놀 만한 해변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때다. 전북 고창 구시포 해변으로 떠나보자. 해수욕과 갯벌 체험으로 일석이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경사가 완만해 가족 물놀이 장소로 최적이며 해변에서 백합도 잡을수 있다. 생태 탐방을 할 수 있는 운곡습지, 고인돌 유적, 고창읍성, 선운사 등과 함께 코스를 짜면 알찬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조개 캐기

구시포의 원래 이름은 새나리불영(새 바닷가의 불같이 일어날 마을)이었지만, 일제강점기에 구시포로 바뀌었다. 아홉 개 마을이란 뜻이다. 염전을 일구기 위해 수문(水門)을 설치했는데, 수문이 소여물을 담는 구시(구유의 방언)같이 생겨서 구시포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구시포 해변으로 가려면 자룡리 선착장을 지나야 하는데, 길게 이어진 포구가 구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썰물 때면 포구 양옆으로 어선들이 갯벌에 바닥을 대고 늘어선다.

선착장을 지나면 마을이다. 식당과 횟집, 슈퍼마켓 등이 구시포해수욕장을 따라 늘어서 낮은 지붕을 인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어촌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드넓은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구시포해수욕장은 가족 물놀이 장소로 최적이다. 경사가 완만해서 한참 걸어가도 물이 어른 허리 높이 정도다. 약 1㎞ 앞에 아스라이 보이는 가막도는 바다 위에 쟁반이 둥실 떠 있는 것 같다. 가막도 뒤로 해가 지는 풍경이 일품이다. 해변에서는 백합도 잡을 수 있다. 한 시간쯤 캐면 백합과 모시조개 한 바구니는 너끈하다. 해수욕장 뒤편으로는 울창한 솔숲이 펼쳐진다. 솔숲에는 텐트를 치고 캠핑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여름철이면 자리 잡기가 힘들 정도라고 한다.

구시포에서 해안 도로를 따라 계속 북쪽으로 가면 장호어촌체험마을에 닿는다. 자동차로 20여 분 걸리는데, 신나는 갯벌 체험이 가능해 고창을 찾은 가족 여행자라면 꼭 한 번 가볼 만하다. 장호에서 구시포해수욕장까지 갯벌이 4㎞나 이어져 ‘고창 명사십리’라고도 불린다. 고우면서도 단단한 모래밭 덕분에 승마를 즐기는 사람들도 찾고, 간혹 자동차가 시원스레 질주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갯벌 체험이다. 마을에 자리한 체험 안내 센터에서 장화를 빌려 신고 호미와 바구니를 들고 갯벌로 향하는 트랙터에 오르면, 아이들은 기대감에 부푼다. 트랙터가 체험장에 도착할 때까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연신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것마저 재미있는 체험거리다. 트랙터 밖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갯벌의 풍광을 감상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호미로 갯벌을 파면 조약돌만 한 동죽이 모습을 드러낸다. 드넓은 갯벌 여기저기에서 “찾았다!”는 소리가 들린다. 체험장은 마을에서 운영하는데 해마다 어린 조개를 뿌린다. 안내 센터에 따르면, 올해도 6000만원을 들여 갯벌에 어린 조개를 뿌렸다. 이 때문인지 갯벌은 ‘개흙 반 조개 반’이다. 한 시간이면 3㎏짜리 그물망 바구니 하나는 어렵지 않게 채운다. 동죽은 조개탕을 끓이거나 칼국수에 넣으면 시원한 국물이 그만이다. 아이들에게는 갯벌에 생긴 웅덩이도 놀이터다. 개흙이 옷에 묻을까 조심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맨손으로 갯벌을 만지고, 바닷물이 고인 웅덩이를 첨벙첨벙 뛰어다닌다. 조개를 캐고 갯벌을 만지고 놀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간다. 안내 센터에 온수가 나오는 샤워장과 탈의실이 있으니 갈아입을 옷만 준비하면 된다.

신비로운 자연의 복원력

고창에는 람사르 습지가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고창 IC에서 자동차로 약 8분이면 운곡습지를 만난다. 호젓한 숲길과 원시 비경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곳이다. 습지의 시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오른다. 1981년 전남 영광에 한빛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발전용 냉각수를 공급하기 위한 운곡댐 건설이 시작됐다. 고창군 아산면을 관통해 지나가는 주진천을 댐으로 막아 운곡저수지가 생겼고 사람의 발길이 끊겼다. 30여 년이 흘러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폐경지는 놀라운 변화를 맞이했다. 댐이 생기며 수몰되고 인적이 끊기면서 습지가 원시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총 860여 종에 이르는 생물이 서식하며 생태 관광 지역으로 선정된 고창 운곡습지는 자연의 무한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는 우수 사례다.

최갑수시인, 여행작가,‘우리는 사랑아니면 여행이겠지’‘밤의 공항에서’ 저자
최갑수시인, 여행작가,‘우리는 사랑아니면 여행이겠지’‘밤의 공항에서’ 저자

고창하면 선운사를 빼놓을 수 없다.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고 577년(백제 위덕왕 24) 검단선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지금은 전북 지역에서 김제 금산사와 함께 가장 크다. 선운사는 평지 사찰이다. 강당과 대웅전, 여러 법당이 한 마당에 모여 있다. 보물 제290호인 대웅보전, 보물 제279호인 금동보살좌상 등 많은 문화재가 있는 절이기도 하다. 선운사는 절 자체도 곱지만 도솔천을 따라가는 길이 멋스럽다. 늙은 나무들이 계곡 위로 터널처럼 우거져 있다. 선운산의 다른 이름은 도솔산. 선운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의미한다. 절에서 도솔암 마애불과 낙조대까지의 산책로가 또 다른 매력이다. 선운사에서 1시간쯤 오르면 도솔암에 닿는다. 시인 정찬주는 도솔암 가는 길을 ‘인간 세상에서 하늘로 가는 기분’이라고 할 만큼 빼어나다고 했다. 도솔암 언저리에는 수령 600년의 장사송(長沙松)이 우산처럼 가지를 펼치고 서서 부처가 설법으로 중생을 모으듯 여행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선운사에서 차로 10분 정도 가면 서정주 시인의 고향 마을에 미당시문학관이 자리한다. 폐교된 봉암초등학교 선운분교를 개조해서 꾸몄다. 미당의 작품 활동과 관련한 다양한 전시물을 살펴볼 수 있다. 옥상에서 미당의 고향인 질마재마을 너머로 변산반도가 아스라이 보인다.

고창읍성과 고인돌 유적도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 고창읍성은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과 더불어 국내 3대 읍성으로 꼽힌다. 둘레가 1684m에 달하는데 성곽 바깥길을 걷거나 성곽 위로 한 바퀴 돌 수 있다. 소나무와 어우러진 맹종죽을 놓칠 수 없다. 구불구불하게 자란 소나무 가지가 맹종죽을 껴안은 듯한 형상이 신비롭다. 고인돌 유적도 아이들이 좋아한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 양식으로 우리나라에 3만여 기 이상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전남과 전북을 포함한 서남해안 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특히 고창에는 1665기의 고인돌이 있다. 단일 구역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있다. 고인돌박물관과 주변 탐방 코스가 잘 정비되어 편하게 돌아볼 수 있다. 

여행수첩

그윽한 정취의 선운사. 사진 최갑수
그윽한 정취의 선운사. 사진 최갑수

고창의 대표적인 먹거리는 풍천장어구이다. 선운사 주변에 장어구이 전문 식당이 늘어섰다. 선운사 앞 인천강은 밀물 때면 바닷물이 밀려들었다가 물이 빠지면 갯벌이 드러난다. 이런 하천을 풍천이라 부르고, 풍천장어는 이곳에서 잡은 장어를 일컫는다. 요즘 자연산 장어를 사용하는 식당은 드물고, 대부분 고창 여러 지역에서 양식하는 장어를 사용한다. 잡기 전 갯벌에 방목하기 때문에 육질이 쫄깃하고 단단하다. 

선운사에서 나오면 좌우로 작설차 밭이다. 선운산 작설차는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린다는 구증구포로 만들어진다. 차를 즐기는 이들 사이에는 그 맛이 알려져 있다. 선다원에 앉아 향긋한 차를 앞에 두고 유리창 너머로 대웅전과 앞뜰, 절 뒤편의 동백숲 같은 선운사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최갑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