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의 강길란 연구원이 토종 효모로 만든 탁주와 약주, 증류식 소주, 맥주의 품질을 확인하고 있다. /국세청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의 강길란 연구원이 토종 효모로 만든 탁주와 약주, 증류식 소주, 맥주의 품질을 확인하고 있다. /국세청

술에는 쓴맛만 나는 게 아니라 향긋한 꽃향기나 달콤한 과일 향도 난다. 이렇게 술에서 꽃이나 과일의 향이 나는 이유는 뭘까. 2014년 국제 학술지 ‘셀 리포츠(Cell Re-ports)’에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술을 만들 때 효모를 넣으면 과일 향이 난다는 건 양조업에서는 상식이지만, 정작 효모를 넣으면 왜 과일 향이 나는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벨기에 VIB 시스템 생물학연구소 연구진은 셀 리포츠에 낸 논문에서 효모가 과일 향을 내는 건 ‘생존을 위해서’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효모는 술이나 빵, 된장 같은 발효식품을 만들 때 사용되는 미생물이다. 꽃의 꿀샘이나 과일의 표면처럼 당분이 풍부한 곳이나전통 누룩에 들었다. 효모는 그 사용 시기가 기원전 4000년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까지 거슬러 갈 만큼 인류와 친숙하다. 

효모가 만들어내는 에틸아세테이트나 페닐에틸아세테이트 같은 성분은 꽃이나 과일 향을 내는 데 작용한다. 이 향이 초파리를 끌어들여 효모를 다른 지역으로 널리 퍼질 수 있게 돕는다. 다시 말해 효모는 생존을 위해 여러 지역으로 퍼져야 하고, 초파리가 좋아하는 꽃이나 과일 향을 내게 됐다는 것이다. 식물 역시 살아남기 위해 곤충을 끌어들여 곤충의 몸에 꽃가루를 묻힌 뒤 이동하는데, 효모도 같은 전략인 셈이다.  

효모의 생존 전략에서 탄생한 꽃과 과일 향은 인간 손을 거쳐 달콤한 술로 변했다. 하지만 술을 만들 때 효모의 역할은 단순히 향을 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효모는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탄수화물을 분해해 얻은 당분이나 과실에 들어있는 당분을 이용해 에탄올을 만든다. 

효모 전문 연구 기업 바이오크래프트의 김도형 대표는 “효모를 이용하면 알코올 도수를 월등히 높이는 게 가능하다”며 “누룩만 사용했을 때는 알코올 도수 14도가 최고라면 효모는 18도까지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누룩만 사용했을 때는 효모 수가 많지 않아 같은 기간 발효를 해도 알코올 도수가 낮지만, 좋은 효모를 발효에 추가하면 더 빠르게 알코올 도수를 높일 수 있다. 


효모 전문 연구 기업 바이오크래프트는 제주도에 연구소, 파주에 생산 시설을 두고 있다.  바이오크래프트가 효모를 생산하는 발효기. /바이오크래프트
효모 전문 연구 기업 바이오크래프트는 제주도에 연구소, 파주에 생산 시설을 두고 있다. 바이오크래프트가 효모를 생산하는 발효기. /바이오크래프트

年 230억원, 양조용 효모… 거의 수입에 의존

효모는 술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산 술에 사용하는 효모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효모의 국내 시장 규모는 연 230억원 수준으로, 일본이나 유럽에서 수입했다. 한국식품연구원 등 몇몇 공공 연구 기관이 소규모로 효모를 발굴해 보급하는 사업을 했으나, 수입산을 대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양조자는 수입산 효모를 쓰거나 제빵용 효모로 술을 만드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한 양조장 대표는 “대중적으로 유명한 막걸리 중에도 제빵용 효모를 쓰거나 중국 등에서 수입한 효모를 소분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며 “국산 양조용 효모라는 대안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다들 쉬쉬하면서도 쓰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와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이 손을 잡았다. 수입 효모를 대체할 양조용 토종 효모 발굴에 나선 것. 국립생물자원관은 2012년부터 2017년 초까지 5년에 걸쳐서 전국의 야생화, 열매, 누룩으로부터 자생 효모 균주를 분리했다. 이렇게 모은 효모 균주가 약 1700종에 달한다. 국립생물자원관은 다시 2020년 10월까지 4년 동안 수집한 효모 균주에 대한 유전자분석 작업으로 양조용 효모로 가능성이 있는 88종의 균주를 선별했다.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는 국립생물자원관이 선별한 88종의 균주를 2021년 12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걸러내는 실험을 진행했다. 효모의 크기와 당 분해력, 발효력, 응집성, 개체 수 등 13개 평가 항목을 선정해, 이에 맞는 효모 33종을 추렸다. 이후 이들 균주를 이용해서 실제로 술을 만드는 시험 양조를 거친 뒤, 여기서 만들어진 술의 품질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주종별 5~6종의 후보 균주를 추렸다. 이어 정밀 분석과 관능검사, 대용량 양조를 통한 양조 적합성 검사를 통해 6종의 효모 균주를 최종 선정했다.

장영진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 기술지원과장은 “효모 균주 하나가 양조용으로 적합한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유전자분석부터 가스크로마토그래피(복잡한 혼합물에서 개별 화학 성분을 분리해 식별 및 정량화하는 분석 기법) 같은 다양한 검사를 거쳐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실제 술을 빚어서 품질과 관능검사를 해야 한다”며 “이런 테스트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양조용 효모 균주를 선별하는 데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양조용 효모는 바이오크래프트에 이전돼 대량생산을 거쳐 실제 양조장에 공급되고 있다. 지금은 액상 형태로 공급되지만,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는 추가 연구를 통해 건조 효모로도 균주를 공급할 계획이다. 

국세청·환경부, 10년에 걸쳐 양조용 토종 효모 균주 발굴

양조용 토종 효모 균주는 모두 ‘고향’이 있다. 자연에서 발굴한 미생물이기 때문이다. 탁주용(스위트용) 효모와 약주용(스위트용) 효모는 전남 구례군 지리산 자락의 산수유 열매에서 분리했다. 이 효모는 성분 분석 결과, 감칠맛을 내는 호박산(Succinic acid)과 장미 향을 내는 페닐에틸아세테이트 성분이 많아 자연스러운 달콤함과 풍미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주 연동의 누룩에서 찾은 증류주 전용 효모는 퓨젤 오일 함량이 기존의 전통주 효모보다 15% 정도 낮아 알코올 냄새가 적고 부드럽다. 

토종 효모 균주를 찾는 건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생물자원을 둘러싼 각국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산 미생물 자원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생물자원의 보호를 천명한 ‘나고야의정서’ 가 발효되면서 수입 생물 유전자원을 이용하는 경우 자원 보유국에 로열티(특정 권리를 이용하는 자가 권리 보유자에게 지불하는 대가)를 내야 한다. 아직 양조용 효모에 대해서는 나고야의정서가 적용되고 있지 않지만, 전문가는 시간문제로 본다. 수입산 효모로 막걸리나 약주를 만들 때마다 일본이나 독일에 별도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도형 바이오크래프트 대표는 “100가지 종류의 미생물을 찾았다고 해도 그중에 배양이 가능한 미생물은 하나에 불과하다. 그만큼 좋은 미생물, 효모를 찾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라며 “지금도 수입산 효모가 있는데 굳이 토종 효모 균주를 발굴해서 쓸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양조장 관계자가 있는데, 나고야의정서 적용이 시간문제인 만큼 불필요한 외화 유출을 막고 토종 미생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종현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