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 첫 2주는 수많은 지시와 행정명령으로 가득했다. 예상대로 그는 첫 임기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지체하지 않았다. 그는 또 세계보건기구(WHO) 탈퇴를 지시했고, 곧이어 대규모 (불법 이민자) 추방 작전을 개시했다. 그는 콜롬비아를 관세로 압박하며 추방된 콜롬비아 국민을 태운 군용기를 수용하도록 했다.
비록 논란이 많지만, 범죄 기록이 있는 불법 이민자 추방은 대중적으로는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린란드 매입 및 파나마운하에 대한 통제권 회복 재추진 같은 트럼프의 다른 정책은 더 많은 논란이 되고 있으며, ‘멕시코만(Gulf of Mexico)’의 명칭을 ‘아메리카만(Gulf of America)’으로 변경하겠다는 그의 결정은 미국 안팎에서 놀라움을 자아냈다.
예상대로 트럼프는 대규모 신규 관세도 도입했다. 특히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10%의 추가 관세 부과를 실행에 옮겼다. 취임 전 트럼프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최고 60%의 관세를 예고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관세 공세는 전통적인 적대국에 국한되지 않았다. ① 멕시코와 캐나다산 수입품에도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대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강력하면서도 합리적인’ 보복을 다짐했지만, 그가 이를 실행할 능력은 제한적이다. 2025년 1월 초, 트뤼도는 역대 최하의 지지도를 기록하며 사임을 발표했다.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자는 제안을 포함한 트럼프의 위협과 끊임없는 조롱은 이미 불안정한 트뤼도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약화하는 데 한몫했다.
트럼프는 또 ② 대만산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했고, 이에 따라 대만 정책 입안자 사이에서 긴급 회담이 열렸다.
이런 조치를 종합해 보면, 오랫동안 명백했던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즉, 지정학적 동맹은 트럼프에게 있어서 즉각적으로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 한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트럼프는 미국의 동아시아 주요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에 대해서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두 국가 모두 그의 취임식 연설이나 뒤따른 정책 발표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가 첫 임기 때부터 두 국가에 더 많은 방위비 분담을 요구해 왔던 점을 고려하면, 두 국가가 조만간 다시 압박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다만, 현재로서는 트럼프가 일본과 한국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들 국가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이는 한국에는 숨통이 트이는 반가운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및 구속 이후 한국은 국내 정치 위기의 한복판에 놓여있다. 한국은 부통령직을 두지 않으므로,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국회 등에 투입했다는 이유로 탄핵 소추된 후 한덕수 국무총리가 애초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그러나 한 총리마저 2주 뒤 탄핵 소추되면서,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국무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동시에 수행하게 됐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 최 권한대행이 트럼프의 잠재적 요구에 맞서 대응할 능력은 극히 제한될 것이다.
일본 정부는 트럼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관세 부과를 피하기 위한 양보안을 검토하면서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시바는 2월 7일 트럼프와 첫 회담을 갖는다. 2024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지 석 달 만의 만남이다. 이시바가 트럼프 당선을 축하했으나, 두 사람의 전화 통화는 단 5분 만에 끝났다. 이는 당시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과 12분 통화,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25분 통화와 극명히 대조를 이룬다.
트럼프의 첫 임기(2017~2020년)에 당시 일본 총리였던 아베 신조는 골프에 대한 공유된 애정을 바탕으로 트럼프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으며, G7(주요 7개국) 같은 국제 무대에서 신뢰받는 동맹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골프를 치지 않는 이시바는 이러한 개인적 친밀감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트럼프가 아베를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 여기게 했던 협상 능력 또한 갖추지 못했다.
게다가 아베는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자민당 총재로서 세 번째 연임에 성공하면서 강하고 인기 있는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반면 ③ 이시바는 자민당과 일본 국회(중의원) 내에서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그는 소수 정부의 수장으로서 주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과 협력할 의사를 표명했는데, 이러한 접근 방식은 트럼프에게 약점으로 비칠 수 있다. 이시바의 불안정한 지도력을 고려하면, 일본은 트럼프의 무관심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길 수도 있다.
새 행정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일본은 이와야 다케시 외무상을 트럼프의 취임식에 참석하도록 파견했다. 취임식 참석 중 이와야 외무상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했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두 사람은 양국 관계 및 중국의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포함한 안보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상 형식적인 절차만으로는 트럼프의 공격적인 무역 전략으로부터 일본을 보호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트럼프의 관심이 필연적으로 동아시아로 향할 때를 대비해, 일본 정부는 일정 수준의 양보안을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일본은 미국산 셰일가스와 농산물 수입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는데, 이는 트럼프 첫 임기 때 중국이 무역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취했던 조치와 유사하다. 이미 일본은 미국 내 주요 외국인 투자국이며, 일본 기업도 미국 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투자를 확대하는 것에 긍정적일 가능성이 크다. 비록 아직은 일본과 한국이 트럼프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이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양국은 트럼프가 행동에 나서기 전에 먼저 미국의 동맹국을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만약 언어적 비방이 시작된다면, 일본과 한국의 정책 결정자는 트럼프를 달래고, 잠재적인 경제적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신속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설령 이것이 국가적 자존심을 희생하는 일이 되더라도 말이다.
Tip
① 트럼프의 25% 관세 부과 명령에 멕시코와 캐나다 모두 즉각적인 보복 관세, 미국산 제품 불매 운동 등으로 맞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물밑 협상을 통해 미국 측의 국경 통제 강화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 캐나다와 멕시코 모두 국경 경비에 1만 명가량의 병력을 투입하고, 조직범죄와 펜타닐 추적 활동에 협조를 약속했다. 트럼프는 2월 3일 오전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통화 이후 멕시코에 예고한 25% 추가 관세 부과를 30일 동안 유예한다고 밝혔고, 오후에는 트루스소셜을 통해 캐나다산 수입품에 대한 25% 추가 관세 부과도 30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② 트럼프 정부의 대만산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방침에 대응하기 위해 대만은 대표단을 미국에 보내는 등 협상에 나서고 있다. 궈즈후이 대만 경제부장(장관)은 2월 8일 기자회견에서 경제부 정무차장(차관)이 이끄는 대표단이 2월 10일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 대만의 미국 반도체 기술 도용 관련 의혹에 대한 정부 간 협의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가 현실이 될 경우 TSMC의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를 위해 TSMC는 미국 현지에서 이사회를 개최하는 등 미국 측과 접촉을 늘리고 있다.
③ 2024년 10월 27일 중의원 선거에서 215석 확보에 그친 자민·공명당 연립 여당은 2012년 정권 탈환 이후 처음으로 단독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소수 여당인 자민당은 야당의 협조를 받아야 각종 입법 조치가 가능한 상황이다. 제3야당인 국민민주당의 협조를 얻어 총리 직위를 지키는 데 성공했지만, 이시바는 집권 후 40% 이하 지지율로 고전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와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지지율이 44%까지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