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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하면서 글로벌 기후 정책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은 2015년 전 세계 195개국이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하로 유지하고 나아가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체결한 국제 협정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미국의 이번 결정으로 일부 다른 국가도 협정 탈퇴에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국제사회의 기후 대응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된다. 

반면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안고 있는 국내 기업이 체감하는 탄소 규제의 강도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점차 확산하고 있는 친환경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요구는 물론이고 탄소가 주요국의 새로운 무역 규제 수단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기업이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탄소 규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자문하고 있는 국내 기업 중에는 온실가스 배출 스코프(scope·범위)별로 별도의 대응 부서를 운영하는 곳이 적지 않다. 제조 공장을 포함한 사업장 배출(스코프 1, 2) 규제를 담당하는 곳과 해당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전 과정 배출(스코프 3)을 관리하는 부서를 구분하여 대응하는 것이다. 특히 스코프 3에 대한 소위 공적 또는 사적 규제가 확대되고 있어서 이에 대한 기업의 대응 고민 또한 깊어지고 있다. 

김진효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외국변호사 - 한양대 경제학, 에섹스대 경제학석사, 루이스 앤드 클록 로스쿨 법학석사, 전 THE ITC 기후환경팀장, 전 포스코 무역통상팀 매니저
김진효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외국변호사 - 한양대 경제학, 에섹스대 경제학석사, 루이스 앤드 클록 로스쿨 법학석사, 전 THE ITC 기후환경팀장, 전 포스코 무역통상팀 매니저

제품의 탄소 발자국

이처럼 기업의 탄소 관리 의무와 부담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탄소 발자국(Product Car-bon Footprint) 인증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소비자의 친환경 제품에 대한 선호나 고객사의 탄소 중립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탄소 발자국을 산정하여 공개하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탄소 발자국은 기업이 생산한 제품이 원재료 채취에서부터 제품의 생산, 유통, 사용을 거쳐 폐기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의미한다. 즉, 해당 제품이 생산부터 폐기까지의 전 주기 동안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로 산정하고 평가한다. 해당 제품의 환경성을 평가하는 지표 중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탄소 발자국은 일반적으로 국제 표준이나 산정 가이드라인 또는 국내외 국가 표준 등에 따라 산정하고 평가하며 관련 기관으로부터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제품 탄소 발자국 산정 표준(ISO 14067)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전 과정 평가 방법론을 기반으로 제품과 서비스의 탄소 발자국 산정 방법론을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영국의 비영리 기관인 카본 트러스트(Carbon Trust)는 글로벌 기업에 탄소 발자국을 인증해 주는 대표적인 인증 기관이며 국내에서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제품 탄소 발자국 인증 제도가 있다.

참고로 국내에서는 환경성 제고를 위해 ‘환경 기술 및 환경 산업 지원법’ 제17조(환경 표지의 인증)에 근거하여 제품 및 서비스의 원재료 채취, 생산, 수송, 유통,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에 대한 환경성 정보를 계량해 표시하는 ‘환경성적표지(EPD·Environmental Product Declaration)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물 발자국, 오존층 영향, 산성비, 부영양화, 광화학 스모그, 자원 발자국과 함께 탄소 발자국도 7대 영향 범주 등 하나로 등장한다. 

국내 환경 표지 제도는 동일 용도의 제품· 서비스 가운데 생산, 유통, 사용, 폐기 등 각 단계에 걸쳐 에너지 및 자원의 소비를 줄이고 오염 물질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친환경 제품을 선별하여 표시토록 하는 자발적 인증 제도이며, 기업은 환경 표지 인증을 통해 자사 제품과 서비스의 높은 환경성을 홍보할 수 있다. 2025년 1월 31일 기준으로 4785개 업체에서 1만8407개 제품이 환경 표지 인증을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탄소 발자국의 산정 

제품 탄소 발자국은 원재료 채취 단계에서부터 폐기 및 재활용 단계까지 전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제품의 특성과 산정 여건에 따라 아래와 같이 단계를 구분하여 제한적으로 산정하는 경우가 많다. 

‘Cradle-to-Gate’는 제품이 출고될 때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하는 것으로 철강, 시멘트, 화학제품 등 주로 기업 간 거래 제품(B2B 제품)에 적용하여 제조 업체 및 공급망의 탄소 관리 목적으로 활용된다. 이 단계는 데이터 수집이 용이하고 기업 공급망 관리에 적합하지만, 제품 사용 및 폐기 단계의 배출량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반면 ‘Cradle-to-Grave’는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배출량과 사용 후 폐기 단계의 배출량까지 산정하는 것으로 자동차, 가전제품, 의류, 식품 등 소비자가 직접 사용하는 제품의 탄소 발자국 평가에 활용된다. 이 단계의 산정은 데이터 수집이 복잡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Cradle-to-Cradle’은 순환 경제의 개념을 적용하여 제품 폐기 후에도 재활용, 자원 회수 과정의 배출량을 포함하여 산정한다. 주로 친환경 건축자재나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 제품, 전기차 배터리 등의 탄소 발자국 평가에 활용될 수 있다. 

제품 탄소 발자국 인증을 받은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4종. /삼성전자
제품 탄소 발자국 인증을 받은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4종. /삼성전자

탄소 발자국의 활용과 관리

국제 표준화와 기술 발전 그리고 소비자 인식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맞물리면서 앞으로 탄소 발자국 인증의 중요성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탄소 발자국 관리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되고 있는 가운데 효과적인 탄소 발자국 관리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1│탄소 발자국 인증 취득 및 경쟁력 확보

기업이 타깃으로 하는 시장이나 고객사 요구 사항에 적합한 탄소 발자국 인증을 획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 및 북미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이라면 EPD, 카본 트러스트 등의 국제 인증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고객사의 요구에 대응하고 소비자의 신뢰 확보를 통해 지속 가능 기업으로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 

2│데이터 기반 탄소 배출 관리 체계 구축

공급망을 포함한 탄소 발자국 산정 범위가 넓고 데이터 취합이 까다로운 경우에는디지털 탄소 관리 시스템 도입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원재료, 생산, 물류, 유통 등 전 과정의 탄소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3│공급망 전반의 탄소 감축 전략 수립

탄소 발자국 산정을 기반으로 스코프별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도출하고 이행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자체 감축(스코프1, 2)뿐만 아니라 공급망 전반에 관한 감축(스코프 3)을 위해 친환경 원료 사용, 재생에너지 전환, 저탄소 물류 최적화 등의 전략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어려운 일이지만 기업은 앞서 살펴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탄소 관리, 공급망 차원의 협력, 국제 인증 확보 그리고 친환경 혁신 투자를 통한 효율적인 탄소 발자국 관리를 통해 탄소 중립 시대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국회도 이를 위한 제도적 기반과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진효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