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종이로 된 백과사전을 봤던 기억이 있다. 두툼하고 열 권이 넘는 전집이었는데,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안에 세상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믿었다. 백과사전이란 본래 완전함을 표방하는 책이기에, ‘빠짐없이 기록한다’는 그 의지가 어린 마음에도 묵직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불완전한 만짐의 백과사전(In-complete Encyclopedia of Touch)’은 정반대 지점을 향한다. 책은 애초에 완전함을 포기한 채 출발하며, 결코 한 권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인간의 충동과 욕망을 불완전함 속에서 드러낸다.
에릭 케셀스(Erik Kessels), 카렐 드 뮐더르(Karel De Mulder), 토마스 소뱅(Thomas Sauvin), 이 세 작가는 오래된 가족 앨범에서부터 오늘날 웹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이름 없는 사람들이 남긴 사진을 오랫동안 수집해 왔다. 시장가치가 없는 익명의 사진이지만, 이들은 이 사진으로부터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해 내는 작업을 해 왔다. 에릭 케셀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이미지는 이미 어떤 방식으로든 촬영된 것이지만, 그 뒤에 담긴 모든 이야기가 다 전해진 것은 아니다. 아마추어가 찍은 사진을 다루면서 끊임없이 발견하게 되는 놀라움은 결코 나를 지치게 하지 않는다.” 익명의 사진들은 시간 흐름에 따라 잊힐 수밖에 없는 기록이지만, 재맥락화될 때 전혀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
대상은 자동차, 배, 나무, 동물, 냉장고, 다리, 덤불, 또 다른 사람, 심지어 무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시대와 문화를 넘어 만질 수 있는 모든 것에 손을 얹은 모습이 책 속에 빼곡히 담겨 있다. 각기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촬영된 이미지지만, 무언가를 만지는 다양한 제스처가 한 권의 책에서 반복되면서 이는 인간의 보편적 충동이자 행위처럼 읽힌다. 손에 닿고 싶어 하는 마음, 그것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자 하는 충동, 때로는 소유를 주장하거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몸짓이 페이지마다 반복된다.
케셀스는 이렇게 말한다. “백과사전이라는 아이디어는 우리가 ‘사람들이 무언가를 만지는 장면’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탄생했다. 사람들이 만지는 다양한 사물이 엄청나게 모이자, 그것들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책의 레이아웃과 디자인은 이 책을 하나의 백과사전이자, 이런 보편적인 시각적 행동을 집대성하는 역할을 한다.”
‘불완전한 만짐의 백과사전’은 전통적 백과사전이 추구하는 완전성과는 다른 길을 제시한다. 불완전한 조각의 집합을 통해 인간의 가장 단순한 행위가 지닌 다층적 의미를 탐구하며, 사진을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인간 충동과 욕망을 드러내는 시각적 언어로 재해석한다. 책을 덮고 나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우리는 왜 무언가를 만지는가?’ 책을 덮은 뒤에도 이 질문이 오래 마음속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