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구성은 전통적인 백과사전의 틀을 따른다. 만진 대상을 항목별로 구분해 A부터 Z까지 배열했다. A에는 비행기(airplanes)와 동물(animals)이, C에는 케이크(cakes),와
자동차(cars)를 만진 사진이 있다. 하지만 어떤 알파벳은 해당하는 사진이 없다. /사진 김진영
책 구성은 전통적인 백과사전의 틀을 따른다. 만진 대상을 항목별로 구분해 A부터 Z까지 배열했다. A에는 비행기(airplanes)와 동물(animals)이, C에는 케이크(cakes),와 자동차(cars)를 만진 사진이 있다. 하지만 어떤 알파벳은 해당하는 사진이 없다. /사진 김진영

어렸을 때 종이로 된 백과사전을 봤던 기억이 있다. 두툼하고 열 권이 넘는 전집이었는데,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안에 세상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믿었다. 백과사전이란 본래 완전함을 표방하는 책이기에, ‘빠짐없이 기록한다’는 그 의지가 어린 마음에도 묵직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불완전한 만짐의 백과사전(In-complete Encyclopedia of Touch)’은 정반대 지점을 향한다. 책은 애초에 완전함을 포기한 채 출발하며, 결코 한 권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인간의 충동과 욕망을 불완전함 속에서 드러낸다. 

에릭 케셀스(Erik Kessels), 카렐 드 뮐더르(Karel De Mulder), 토마스 소뱅(Thomas Sauvin), 이 세 작가는 오래된 가족 앨범에서부터 오늘날 웹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이름 없는 사람들이 남긴 사진을 오랫동안 수집해 왔다. 시장가치가 없는 익명의 사진이지만, 이들은 이 사진으로부터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해 내는 작업을 해 왔다. 에릭 케셀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이미지는 이미 어떤 방식으로든 촬영된 것이지만, 그 뒤에 담긴 모든 이야기가 다 전해진 것은 아니다. 아마추어가 찍은 사진을 다루면서 끊임없이 발견하게 되는 놀라움은 결코 나를 지치게 하지 않는다.” 익명의 사진들은 시간 흐름에 따라 잊힐 수밖에 없는 기록이지만, 재맥락화될 때 전혀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

김진영 -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이들이 주목한 것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만지고 있는 순간을 담은 사진이다. 책에는 1만5000여 권의 오래된 사진 앨범에서 선별한 사진 1919장이 실려 있다. 

대상은 자동차, 배, 나무, 동물, 냉장고, 다리, 덤불, 또 다른 사람, 심지어 무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시대와 문화를 넘어 만질 수 있는 모든 것에 손을 얹은 모습이 책 속에 빼곡히 담겨 있다. 각기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촬영된 이미지지만, 무언가를 만지는 다양한 제스처가 한 권의 책에서 반복되면서 이는 인간의 보편적 충동이자 행위처럼 읽힌다. 손에 닿고 싶어 하는 마음, 그것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자 하는 충동, 때로는 소유를 주장하거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몸짓이 페이지마다 반복된다.

케셀스는 이렇게 말한다. “백과사전이라는 아이디어는 우리가 ‘사람들이 무언가를 만지는 장면’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탄생했다. 사람들이 만지는 다양한 사물이 엄청나게 모이자, 그것들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책의 레이아웃과 디자인은 이 책을 하나의 백과사전이자, 이런 보편적인 시각적 행동을 집대성하는 역할을 한다.”

책 구성은 전통적인 백과사전의 틀을 따른다. 만진 대상을 항목별로 구분해 A부터 Z까지 배열했다. A에는 비행기(airplanes)와 동물(animals)이, C에는 케이크(cakes)와 자동차(cars)가 있다. 하지만 ‘완전성’은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가령 어떤 알파벳은 해당하는 사진이 없는데(E·H·I·J·K·O·Q·U·V·X·Y·Z의 경우) 목차에만 알파벳이 표기돼 있다. 또 책은 곳곳에 하얀 여백을 통해 빈틈을 허용한다. 책에 존재하는 이 공백은 책이 지향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아무리 많은 이미지를 모아도 인간 행위 전체를 포괄할 수 없다는 점, 인간이 만든 백과사전이란 애초부터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책은 보여준다. 책의 물리적인 만듦새도 주목할 만하다. 가로 22㎝, 세로 30㎝로 비교적 큰 판형에 두께는 5㎝, 분량은 496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은 부피감이 전화번호부 같다. 책장을 넘기며 손으로 무게와 질감을 느끼는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만짐’을 경험하는 행위라 할 수있다. 인물들이 각자의 맥락에서 무언가를 만지는 순간을 사진이 담아냈다면, 독자는 책을 펼치고 넘기는 동작을 통해 만진다는 행위에 다시 참여하게 되는 독특한 느낌을 받는다. 

‘불완전한 만짐의 백과사전’은 전통적 백과사전이 추구하는 완전성과는 다른 길을 제시한다. 불완전한 조각의 집합을 통해 인간의 가장 단순한 행위가 지닌 다층적 의미를 탐구하며, 사진을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인간 충동과 욕망을 드러내는 시각적 언어로 재해석한다. 책을 덮고 나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우리는 왜 무언가를 만지는가?’ 책을 덮은 뒤에도 이 질문이 오래 마음속에 머문다. 

김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