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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스타’ 자만심 버리고 철저한 현지화 노력 <br>흑인음악 요소 접목 등 틈새 콘텐츠로 차별화 성공
  > 2018년02월 238호 > 커버스토리
[K팝 성공 키워드 5] 보아·동방신기의 개척자 정신
‘한국 대스타’ 자만심 버리고 철저한 현지화 노력
흑인음악 요소 접목 등 틈새 콘텐츠로 차별화 성공
기사입력 2018.02.11 16:51


2016년에 열린 보아의 세종문화회관 단독 콘서트의 한 장면. <사진 : 트위터 캡처>

‘한류(韓流·Korean wave)’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건 1세대 아이돌 그룹 H.O.T.가 2000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성황리에 단독 콘서트를 마치면서부터다. 이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K팝(K-pop) 스타들이 한류 붐에 일조했다.

K팝 열풍을 주도한 아이돌 스타 중 진출 초기 임팩트로 보면 보아(본명 권보아)와 동방신기(東方神起·TVXQ)에 필적할 경쟁자가 드물다. 특히 음반 시장 규모와 대중음악의 저변에서 독보적인 아시아 1위였던 일본에서의 활약은 후배 아티스트들의 일본 진출과 성공을 돕는 촉매 역할을 했다.

일본에서의 이들 활약상에는 수없이 많은 ‘최초’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보아는 2001년 일본 데뷔 이후 한국 가수 최초로 오리콘 주간 앨범 순위 1위에 등극했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그로부터 2년 넘게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후에도 7개 앨범 연속 오리콘 주간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일본에서 보아의 인기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화제였다. 당시 미국 공영방송 PBS와 영국 BBC, 프랑스 일간 르몽드 등이 보아의 이야기를 앞다퉈 보도했다.


동방신기 日 인기, 2인조 재편 후에도 ‘굳건’

기자는 2004년 4월 일본 요코하마에 있는 돔 경기장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열린 보아의 단독 콘서트를 취재했다. 이종격투기 K-1의 주경기장으로도 유명했던 1만3000석 규모의 체육관에는 1만4000여명의 팬들이 운집해 엄청난 열기를 뿜어냈다. 당시 18세였던 자그마한 체구의 보아(프로필상 신장은 160㎝지만 더 작아보인다)는 공연 내내 조금도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공연을 보러 온 일본 팬들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구성이 다양했다. 이들은 형광봉을 일정한 패턴으로 흔들며 호응했다. 당시 보아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일본 관객들이 좀 더 시끄럽고 열정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차분한 스타일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당시 공연은 오사카와 나고야·사이타마 등 10개 도시에서 진행된 투어의 ‘대미(大尾)’였다.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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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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