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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6~7년간 본사 적자 면치 못해… 가맹점 이익 우선시 편의점보다 가격, 품질 앞서… 10년 내 3000개까지 늘린다”
  > 2017년02월 189호 > 인물
[박순욱의 기업인 탐방 32] 이영덕 한솥 회장
“초기 6~7년간 본사 적자 면치 못해… 가맹점 이익 우선시 편의점보다 가격, 품질 앞서… 10년 내 3000개까지 늘린다”
기사입력 2017.02.27 10:07


이영덕 한솥 회장은 “편의점 도시락보다 품질, 가격은 우수한데 유일하게 접근성이 떨어져 앞으로도 한솥도시락은 점포 확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김종연>

국내 최대 도시락 전문점 한솥도시락(회사 이름은 한솥)의 이영덕(69) 대표이사 회장의 명함에는 ‘따끈한 도시락으로 지역사회에 공헌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1993년 서울 종로구청 근처에서 1호점을 열 때 정한 창업이념이다. 이 회장뿐 아니다. 임직원 명함에도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이 회장은 “한솥도시락이 700개에 육박하는 점포를 가진 업체로 성장하게 된 가장 큰 비결은 창업 초기의 기업이념을 20여년 동안 흔들리지 않고 지켜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솥도시락은 현재 690개 점포로 작년 매출은 1000억원 정도였다.

1948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초· 중·고교를 마친 그는 한국으로 건너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지금도 그의 발음에는 ‘일본 흔적’이 남아 있다. 어릴 때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이 회장이 모국에 건너와 대학을 다닌 것은 외교관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외교관이 아닌 도시락 전문 프랜차이즈 대표로 24년째 활동하고 있다.



한솥도시락은 2016년 한국을 찾은 재일교포 잼버리 회원 어린이들에게 도시락을 지원했다. <사진 : 한솥>

외교관 꿈은 왜 접었나.
“대학 다닐 때 절반은 휴교할 정도로 시위가 격렬해 사실 제대로 공부를 못했다. 게다가 아버지 지인이 해주었던 ‘가난한 나라의 외교관은 배고픈 공무원일 뿐이야’란 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대학을 마치고 외교관 아닌 사업을 하기로 맘먹고 이것저것 손을 대다가 대부분 실패하고 마흔다섯 나이에 당시 일본에서 성업 중인 도시락 전문점 사업을 하게 됐다.”

전공(법학)과 동떨어진 도시락 사업을 하게 된 배경은.
“일본은 1970년대부터 KFC와 맥도널드 성공에 자극받아 도시락 프랜차이즈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1990년대 초 외식업이 크게 성장하고 있었고 도시락 전문점도 10개 회사가 넘었다. 도시락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높다고 판단했지만 섣불리 시작할 수 없었다. 평생 사업을 할 수 있는 신념이 필요했다. 어릴 때 어머니가 해주신 밥을 생각해 ‘따끈한 도시락으로 지역사회에 공헌한다’는 창업이념을 정하고 사업 시작 3년 전부터 일본 도시락 체인 2위 업체인 혼케 가마도야(당시 가맹점이 2000개)에서 3년간 교육을 받았다.”

창업 당시 국내에도 배달 도시락 전문점이 10여곳이나 됐는데 차별화 전략은.
“당시 한국의 도시락 사업은 100% 배달이었다. 그러나 일본 도시락 체인은 대부분 배달이 아닌 테이크아웃이었다. 나도 일본처럼 테이크아웃 도시락으로 콘셉트를 정했다. 배달을 하지 않으면 배달 비용 20% 정도를 아낄 수 있어 소비자 가격을 그만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93년 종로구청 근처 1호점은 개점 초기부터 사람들이 20~30m 줄을 설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국내 최초의 테이크아웃 도시락 전문점인 셈이었다. 후발주자로서 기존 업체와는 차별화전략을 잡은 것이 큰 효과를 거두었다.”

한솥도시락이 20년 넘게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
“창업 이념인 ‘따끈한 도시락으로 지역사회에 공헌한다’는 생각을 고수해온 덕분이라 생각한다. 사업하는 동안 유혹이 좀 많았겠나. 사실 물가도 오르고 외부 요인이 변할 때마다 유혹이 생긴다. 식자재 가격이 오르면 가맹점주에게 고스란히 인상분을 전가하고, 또 가맹점은 소비자 가격을 올리는 식으로 하면 본사도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물가가 오른다고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력이 생기고 무엇보다 우리의 기업이념에 위배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체인 사업 운영의 우선순위에서 소비자를 첫번째로 꼽았다. 가성비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가맹점, 세번째가 협력업체(식자재 등 공급업체), 본사의 이익은 제일 마지막으로 고려했다. 그러다 보니 창업 후 6~7년 동안은 본사 재무제표가 늘 적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본사 매출은 1000억원 정도이고 본사 이익률이 약 5%(매출액 대비), 690개로 불어난 가맹점 이익률은 20%로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향후 점포 확장 계획은?
“10년 이내 국내 매장을 3000개로 확장할 계획이다. 최근 리서치 업체를 통해 편의점 도시락과 한솥도시락 장단점에 대해 소비자 조사를 한 결과, 가격·품질 등 대부분의 항목에서 한솥도시락이 앞서는데, 단지 ‘한솥도시락은 근처에 없다’는 게 유일한 불만이었다. 점포 확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 이영덕
1948년 일본 교토 출생, 서울대 법학과 졸업(1973년), 한솥도시락 창업(1993년)


plus point

환경부 도시락용기 규제로
8년간 한솥도시락 점포 못 늘려

1993년에 창업한 한솥도시락은 2000년에 이미 점포가 300개로 불어나면서 안정적인 프랜차이즈 사업 단계에 도달했다. 그러나, 2000년부터 환경부가 도시락에 한해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큰 위기를 맞았다. 대부분의 영세 도시락 업체들은 도산했고, 편의점에서도 도시락은 사라졌다. 이영덕 회장은 “전체 플라스틱 사용량 중 도시락 업체가 쓰는 양은 0.01% 정도였는데, 유독 도시락 업체만 플라스틱을 못쓰게 한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솥도시락은 “본사 차원에서 환경부 규제에 대처할 테니 가맹점은 계속 플라스틱 도시락 판매를 고수하라”고 권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가맹점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과태료 부과대상이 됐다. 그러나 행정소송까지 제기한 결과 대부분 한솥도시락이 승소했다. ‘플라스틱 말고 도시락 용기를 대체할 게 없었다’는 것이 승소 이유였다. 결국 2008년 정부는 도시락 업체에 대한 플라스틱 사용제한 규제를 철폐했다.

그러나 한솥도시락은 용기 규제가 있었던 8년 동안 거의 신규 가맹점을 확보하지 못하는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경쟁업체들이 대부분 문을 닫아 사실상 ‘독점 도시락 기업’이 된 것이다. 이영덕 회장은 “당시만 해도 1인당 쌀 소비량이 지금보다 훨씬 많을 때여서 용기 제한 규제만 없었더라면 진작에 1000개 이상 점포를 키울 수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기사: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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