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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꺼리는 스포츠팀 유니폼 도전, 미국 4대 프로 리그 공급 인도네시아·베트남서 생산… 지난해 매출 3000억원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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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욱의 기업인 탐방 33] 박용철 호전실업 회장
남들 꺼리는 스포츠팀 유니폼 도전, 미국 4대 프로 리그 공급 인도네시아·베트남서 생산… 지난해 매출 3000억원 달성
기사입력 2017.03.06 09:51


박용철 회장은 “스포츠팀 유니폼 의류 생산에서 가장 까다로운 공정인 자수와 프린트 공정을 외주를 주지 않고 직접 처리했기 때문에 나이키를 비롯한 글로벌 스포츠웨어들로부터 지속적인 발주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이신영>

스포츠웨어 및 아웃도어 의류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방식) 업체인 호전실업의 박용철(73) 대표이사 회장은 ‘비(非)보편화의 추구’를 평생 경영이념으로 삼아왔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고, 남들이 꺼려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동종업계가 저임금을 이유로 모두 중국으로 몰려갈 때 반대로 인도네시아에 과감한 투자를 했으며, 나중에 중국시장에서 실망하고 돌아온 제조업체들의 생산주문을 박 회장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척척 소화해냈다.

그러나 박 회장이 ‘탄탄대로’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식품업체에 들어간 지 얼마 안돼 식품사업을 시작했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동네 가게에 도시락 반찬을 공급하는 사업은 가게들이 냉장고를 두지 않아 반찬이 빨리 상해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밖에도 소프트 아이스크림, 육포, 물엿 사업까지 뛰어들었으나 모조리 빈손으로 다시 일어서야 했다. 여섯번의 사업 실패를 겪은 그의 나이는 이미 서른 둘. 기업체 신입사원으로 다시 들어가긴 너무 늦은 나이었다. 그래서 다시 도전한 아이템이 의류사업이었다.

1985년 창업한 호전실업은 여성정장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남녀 모두 캐주얼의류가 대세를 이룰 것을 미리 감지하고 과감하게 스포츠웨어에 승부를 걸었다. 그것도 제일 어렵다는 스포츠 팀웨어(팀별로 똑같이 입는 유니폼) 시장에 올인했다. 스포츠 팀웨어는 ‘소품종 대량생산’인 일반 스포츠웨어와 달리 ‘다품종 소량생산’이 특징이다. 가령 미국의 수백개 농구팀에 유니폼을 공급할 경우 대학마다 디자인, 로고, 선수 등번호, 선수 이름 등을 각각 다르게 제작해야 하는 게 스포츠 팀웨어다. 전체 물량은 많지만 같은 디자인 유니폼은 수십벌 정도다. 제작 공정이 워낙 까다롭다 보니 웬만한 스포츠 의류 업체들도 제작을 꺼려한다.

호전실업은 현재 미국의 4대 스포츠리그인 미국프로농구, 프로미식축구, 북미아이스하키리그, 메이저리그 소속팀에 유니폼을 납품하고 있는 유일한 의류업체로 성장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인 리복에 스포츠구단 팀복을 납품하기 시작한 이래, 나이키·아디다스·언더아머 등 총 15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에 팀복과 고기능성 의류를 납품하고 있다. 2016년 매출이 3000억원에 달하며 인도네시아 6곳, 베트남 1곳 등 모두 7개 해외 생산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호전실업은 지난 2월 초 상장했다.


집무실의 모니터로 해외 생산라인을 리얼타임으로 관찰할 수 있나.
“그렇다. 공장 전체를 볼 수 있고 공정별로 세부적으로 볼 수 있다. 가령, 인도네시아 제2공장 소잉라인(바느질공정) 33번 라인에 직원들의 움직임이 없으면 곧바로 화상전화를 연결해 법인장과 통화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물어본다. 원자재 공급이 안 돼 쉬고 있는 것인지, 또 다른 문제가 있는지 등등. 덕분에 요즘에는 현지 공장 방문이 창업 초기에 비해 많이 줄었다. 요즘엔 일년에 네번 정도 공장을 둘러본다.”

대학(동국대 식품공학과)에서 식품을 전공한 것이 의류사업하는 데 도움이 됐나.
“큰 도움이 됐다. 서울대 쳐서 떨어져 재수를 했다. 아버님께서 ‘서울대학교 다니면 뭐하냐. 그러지 말고 남들 안 하는 분야를 해라’고 했다. 그래서 동국대 식품공학과 1기로 들어갔다. 당시 식품업체로는 삼양라면 정도가 있었다. 대학 졸업 후 고향인 대전에 있는 한국산토리(일본 합작 음료회사)에 취업했다. 그때 일본 직원인 노모도상에게서 와인과 브랜디 등을 만드는 법을 1년간 배웠다. 그가 일년 지나 일본으로 갈 때 환송회에서 한 말을 평생 잊지 못한다. ‘남자가 어느 분야에 입문했으면 그 일에 대해서는 처자식보다 더 사랑해라. 그렇게 하고서도 20년이 지나지 않았으면 명인, 장인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우여곡절 끝에 식품사업을 하다 여러번 망하고 서른둘 나이에 친형이 하는 의류 수출업체에 들어갔다. 업무가 에이전트 일이라, 삼성물산·선경 등으로부터 술 접대받고 흥청망청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노모도상의 말을 기억하고, 옷 연구에 빠져 나중에는 옷 설계도까지 만드는 경지에 올라 ‘옷 박사’가 됐다. 내가 식품공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면 노모도상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장인 정신으로 지금껏 사업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1985년 설립한 호전실업은 현재 스포츠웨어 및 아웃도어 의류 전문 OEM업체로 자리잡았지만, 출발은 여성정장이었다. 사업 초기엔 대전에서 공장을 운영했지만 임금 상승에 섬유·의류 산업 사양화로 인한 인력 공급부족 현상까지 겹쳐 해외 생산기반 구축에 나섰다. 1980년대 후반 일이었다. 국내 생산기지를 대신할 후보지로 중국과 인도네시아를 저울질하던 박 회장은 1991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공장을 지었다. 이후 호전실업은 인도네시아에만 추가로 5개 공장을 더 짓고 인수하는 등 주력 생산기지를 인도네시아로 삼고 있다.


왜 중국 아닌 인도네시아를 택했나.

“저임금 측면에서는 중국이 더 유리했겠지만 숙련도 면에서는 인도네시아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과거에 그랬지만 공업화가 진척되면 우수 인력은 석유화학·자동차·전자 등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중국 역시 경제성장 속도를 보면 봉제업 우수 인력이 다른 업종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봤다. 장기적 관점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당장 저임금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의 문제보다 숙련된 기능공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런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중국보다 공업화 수준이 낮은 인도네시아를 택했다.”

2005년 섬유쿼터(수출 물량 제한 제도)가 폐지되면서 글로벌 바이어들이 중국으로 몰려가는 상황이었는데, 인도네시아 사업을 줄이지 않고 아웃도어 생산공장을 인수한 이유는.
“중국으로 간 바이어들이 몇년 지나지 않아 임금이나 품질 면에서 실망하고 다시 인도네시아로 올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우리는 아웃도어를 생산해온 인도네시아 현지공장을 인수해 바이어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를 준비했다. 나의 예측은 적중했다. 2005년부터 중국으로 하나둘씩 이탈했던 바이어들이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우리에게 대량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선제적 투자를 시행했던 호전실업만이 이들의 대량주문에 응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2005년 이후 1000억원대 매출에서 정체를 보인 호전실업은 2009년 매출액 2000억원을 넘어서면서 성장기에 진입했다. 미래를 내다보고 선제적 투자를 결정한 과감한 결단 덕분이었다.”

그래도 20년이나 된 노후 설비밖에 없었던 인도네시아 공장을 인수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나.
“우리가 인수한 공장은 콜롬비아 브랜드 아웃도어를 생산하던 업체다. 20년이 넘었으니 생산설비는 낡아 쓸만한 게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인수를 결정한 것은 20년 이상 그 공장에서 아웃도어 의류를 만들어온 직원들의 숙련도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아웃도어는 남방이나 니트 같은 캐주얼과 달리 옷 하나에 조각이 보통 200개에 달한다. 공정도 300개가 넘는다. 아무리 최신 설비를 갖다 놓아도 숙련공 없이는 품질을 맞출 수 없다. 7~8년 가도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힘들다. 그때까지 기다려줄 바이어도 없고. 그래서 건물이나 설비를 보지 않고 ‘사람(숙련공)’을 보고 인도네시아 공장을 산 것이다.”


호전실업이 중국이 아닌 인도네시아를 선택한 것 이상으로 매출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 업종 전환이었다. 여성정장으로 시작한 호전실업은 1993년 리복에 스포츠 팀웨어를 납품하면서 스포츠웨어에 진출했다. 이후 호전실업은 2003년 스포츠웨어 글로벌 1위 업체인 나이키에도 스포츠 팀웨어를 공급하면서 여성정장에서 스포츠웨어로 주력 아이템이 바뀌었다. 2007년에는 노스페이스와 거래를 시작하면서 기능성 아웃도어 시장에도 진출했다.

현재 호전실업은 노스페이스 외에도 버그하우스, 살로몬 등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에 고기능성 아웃도어 의류를 생산해 납품하고 있다. 아웃도어는 스포츠웨어와 함께 높은 기능성이 요구되는 품목이다. 그만큼 기술장벽이 높지만 시장에 안착하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박용철 회장이 스포츠웨어에 이어 아웃도어 의류를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이유다. 박 회장은 2010년 미국 2위 스포츠의류 업체인 언더아머에 골프바지를 납품하면서 여성복 생산을 완전 중단해, 스포츠웨어와 아웃도어 의류 생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호전실업의 인도네시아 공장 내부 전경. 호전실업은 인도네시아에만 6곳의 생산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사진 : 호전실업>

일반 스포츠 의류보다 훨씬 까다로운 스포츠 팀웨어에 집중한 이유는.
“호전실업이 사업의 무게중심을 여성정장에서 스포츠웨어로 옮기게 된 계기는 2003년 나이키에 의류 납품을 시작하면서부터다. 2000년대 초반 나이키 에이전트를 통해 ‘나이키가 미국 대학농구팀에 후원할 팀웨어를 제작해줄 OEM사를 찾고 있는데, 해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물론 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1993년부터 리복과 스포츠웨어 납품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웨어 생산은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전체 물량은 많았지만 팀마다 디자인·등번호·로고·이름 등을 따로 새겨 제작해야 하는 ‘다품종 소량생산’이었다. 그래서 제법 큰 OEM업체들도 팀웨어 시장 진출을 꺼렸다. 성공하면 큰돈이 보장되지만 잘못하다가는 넘쳐나는 불량률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팀웨어에 매달렸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는 아버님의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외주를 주던 자수와 프린트 공정을 자체 소화한 이유는.
“팀웨어 공정의 핵심이 자수와 프린트 공정이다. 초기에 외주를 맡겼더니 불량률이 30%에 달했다. 이래 갖고는 까다로운 글로벌 바이어 입맛에 맞출 수 없었다. 그래서 2005년 인도네시아 공장에 자수설비와 프린트 기계를 도입, 자수와 프린트 공정을 직접 했다. 한 5년 하니까 불량률이 1~2%까지 떨어졌다. 나이키 팀웨어 생산을 무리 없이 진행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아디다스, 마제스틱 등 다른 업체들도 우리에게 납품을 의뢰하기 시작했다. 현재 나이키, 아디다스 등 글로벌 브랜드를 통해 300개가 넘는 스포츠팀에 호전실업이 제작한 옷이 공급되고 있다. 자수와 프린트 공정을 자체 소화한 또 다른 이유는 나이키 같은 업체들이 그렇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들 글로벌 업체들은 특히 인권문제에 민감하다. 리복이 몰락한 것도 중국 감옥의 죄수들을 생산에 투입한 것이 알려져 불매운동 등의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우리가 자수나 프린트 외주를 준 영세 업체들이 저임금 논란 등의 문제를 일으키면 나이키 같은 발주업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때문에 이들 글로벌 업체들은 우리에게 ‘생산 공정 일부를 외주 주지 말고 직접 다 맡아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바이어들의 요구에 맞춰 우리는 과감한 투자를 해서 설비를 갖춤으로써 경쟁력도 엄청나게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우리는 안정적인 거래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호전실업의 가장 큰 거래선인 미국시장 전망은?
“트럼프 당선 이후 한국 기업의 미국시장 진출이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가 많지만 호전실업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왜 대통령에 당선됐는지 생각해보라.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민자를 쫓아내고 미국인을 위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잘살게 하겠다는 포퓰리즘 공약이 먹혀든 거 아닌가.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조금 여유가 생기면 스포츠를 한다. 레저 스포츠에 상당한 지출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트럼프가 재정 투자해서 고용을 많이 창출해 미국 근로자들이 월급받아 스포츠에 돈 쓸 게 뻔한데, 그 수혜자가 누구겠는가? 그중 하나가 호전실업일 것은 확실하다.”


▒ 박용철
73세, 동국대 식품공학과 졸업(1969년), 한국산토리 근무(1969~71년), 호전실업 창업(1985년)



호전실업의 자체 교복 브랜드 ‘센 10’. <사진 : 호전실업>

plus point

비수기에 생산 늘려 2020년 매출 5000억원 목표

현재 호전실업의 연간 매출액은 3000억원 수준이다. 호전실업은 3년 뒤인 2020년의 매출 목표를 지금보다 70% 늘어난 5000억원으로 잡고 있다. 그렇다면 생산설비를 늘려 매출액을 늘리겠다는 전략일까? 박용철 대표이사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생산설비를 늘려 매출액 올리는 거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죠. 의류 생산은 일년에 수개월 비수기가 있어 생산 능력을 늘리는 것에 비례해 관리비 부담도 올라갑니다. 생산설비를 늘리면 매출액은 늘어나겠지만 수익성은 반대로 떨어질 우려가 높아요.”

그렇다면 현 생산설비를 유지하면서 3년 후에 매출액을 60~70% 늘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박 회장은 의류 생산 비수기를 활용한 ‘기획생산’이 답이라고 말했다. “옷은 겨울옷 수요가 많아요. 추우니까 여러 벌 껴입는거죠. 겨울옷이 부가가치도 높고. 하지만 생산기간이 정해져 있어요. 약 6개월 겨울옷 만들고 나면 비수기에 접어듭니다. 이때 여름옷을 만들지만 부가가치는 겨울옷에 비할 바가 못 되죠. 그래서 우리는 비수기에 ODM(Original Design Manufacturing) 생산을 통해 미리 옷을 만들어 바이어에게 팔겠다는 것입니다. 미국 최대 온라인 스포츠의류 유통업체인 파나틱스(Fanatics)와도 사업 협의 중이에요.”

기업용 단체복 주문도 비수기 공장 가동률을 높이기 위한 기획생산에 해당된다. 미국 물류업체 페덱스 유니폼도 호전실업 제품이다. 기업용 유니폼은 첫 주문 때 대량으로 나간 뒤 이후엔 소량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의류 OEM업체들이 맡기를 꺼린다. 박 회장은 “크기별로 80%를 비수기 때 만들고 나머지는 그때그때 대처한다”고 말했다.

OEM 전문업체인 호전실업이 자체 교복 브랜드인 ‘센 10’으로 국내 교복시장에 진출한 것도 기획생산 방식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공장 비수기에 충분한(예상 판매량의 120% 생산) 교복 분량을 미리 만들어 학생들이 원하는 사이즈 옷을 구매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걸스카우트 단복을 26년째 만들고 있어, 교복 시장의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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