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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명 탑승 가능한 엘리베이터 개발해 기술력 입증 “승강기 규제 너무 많아… 산업 육성 측면 고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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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욱의 기업인 탐방 34] 김기영 송산특수엘리베이터 대표
300명 탑승 가능한 엘리베이터 개발해 기술력 입증 “승강기 규제 너무 많아… 산업 육성 측면 고려해야”
기사입력 2017.03.13 11:47


김기영 대표는 “국내 일반 엘리베이터 시장이 외국회사에 점령을 당한 상황이지만 특수 승강기 시장만큼은 송산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한다”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이신영>

충남기계공고 1학년 김기영군은 1976년 4월 학교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과 독대했다. 대전에서 나고 자란 그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가구 사업을 크게 하던 부친이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자 일반고 진학을 포기하고 실업계 공고에 입학했다. 수석 입학한 신입생 김기영군에게 학교는 ‘대통령 독대’ 기회를 줬다. 실업계 고교 독려차 그해 충남기계공고를 방문한 박 대통령은 김군에게 “나라에 꼭 필요한 일을 하라”는 당부의 얘기를 했다. 며칠 뒤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전달받은 ‘有備無患(유비무환)’ 친필 휘호는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대통령의 당부대로 ‘세상에 도움이 될 일’을 고민한 그는 일찌감치 엘리베이터를 평생 사업의 아이템으로 정했다. “우리나라가 국토는 좁은 반면 급속히 진행되는 도시화와 인구 급증으로 큰 빌딩들이 많이 들어설 것이고 그에 따라 ‘수직 교통(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고교 시절에 이미 진로를 정한 그는 승강기 관련 서적이라면 영어나 일어로 된 원서를 독파할 정도로 그의 관심은 온통 엘리베이터뿐이었다.

지난 2월 한국엘리베이터협회장에 연임한 김기영(57) 송산특수엘리베이터 대표 얘기다. 김 대표는 대학 졸업 후 당시 세계 1위 엘리베이터 회사인 오티스에 입사, 29세에 오티스의 아·태지역 연구개발 이사로 승진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33세에 글로벌 대기업 임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송산특수엘리베이터를 설립했다. 김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국가에 기여하는 인재가 되겠다는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가 아닌 내 나라를 위해 일해야겠다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창업 후 송산특수엘리베이터는 ‘세계 최초의 기록’들을 연달아 만들어냈다. 기계실 없는 엘리베이터, 세계 최대 규모인 지하 350m 경사형 엘리베이터, 300명을 한꺼번에 태울 수 있는 골리앗 엘리베이터 등. 기술 면에서 세계 1위에 오른 송산특수엘리베이터의 김기영 대표를 서울 여의도 엘리베이터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한국 엘리베이터 산업은 지금 붕괴 직전”이라며 “정부가 승강기 산업을 안전 문제에만 치우쳐 산업 육성 측면을 너무 도외시해 관련 산업과 종사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경기도 시흥에 자리한 송산특수엘리베이터 본사 전경. <사진 : 송산특수엘리베이터>


중저속 엘리베이터의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을 요구하는 이유는.
“엘리베이터는 저속, 중속, 고속이 있다. 높은 빌딩은 고속이고, 중소기업이 자체 기술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중저속 분야다. 현재 중저속 엘리베이터 중 정부에서 입찰하는 것은 법으로 중소기업에 주도록 돼있다. 그런데 민간시장은 사정이 다르다. 중저속 분야까지 대기업들이 저인망식으로 가져가 버린다. 고기를 잡을 때 큰 고기는 원양어선(대기업)이 잡는다고 치자. 그러면 작은 물고기는 근해 어선이 잡아야 하는데, 지금은 다 원양어선이 싹 훑어가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승강기 규제는 어떤 게 있나.
“어느 나라든 승강기 관리감독 업무는 산업부(산업통상자원부)가 맡는다.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에서도 세이프티(안전)로 취급하지 않고 인더스트리(산업)로 취급한다. 승강기는 아주 위험하거나 사고가 다발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세월호 영향으로 국민안전처가 소관 부처다. 관련 법규도 ‘승강기안전법’으로 바뀌었다. 이름 자체가 승강기 안전에 관해서만 돼있다. 안전에 너무 치우치다 보니 규제가 너무 많다. 예를 들면 선진국은 4~6가지 핵심 부품에 대해서만 인증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22가지 규제를 더 만들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다. 안전을 빌미로 규제를 만든다. 기업 입장에서는 그 하나하나가 돈이고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다.”

국민 입장에선 사고 위험이 있는 승강기의 안전을 강조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은데.
“물론 안전은 중요하다. 다만 안전 못지않게 산업의 육성발전도 생각해 달라는 것이다. 승강기에 관해서는 산업․검사․인증․교육․설치․사고판정 등의 큰 단어(키워드)가 있는데, 현재 승강기 소관 부처인 국민안전처가 검사와 인증․교육․사고판정까지 다 가져갔다. 검사도 독점이고 인증도 독점이다. 외국의 경우 교육은 협회에서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 교육의 수익금으로 승강기 안전 홍보도 하는데, 우리는 국민안전처가 교육사업까지 다 가져가 협회는 수익사업을 하나도 할 수 없다. 수익사업을 국민안전처가 다 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국내 엘리베이터 산업이 활황이었는데.
“국내 엘리베이터 산업은 LG, 동양, 현대 등 대기업 위주였다. 100% 가깝게 내수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수출도 엄청했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이 승강기 사업을 외국 기업에 죄다 팔아버렸고, 국내 공장들을 대부분 해외로 이전했다. 승강기를 수출하던 나라가 이젠 80% 수입하는 나라가 됐다. 국내 기업을 인수한 외국사들도 중국에서 주로 생산하다 보니 국내 생산은 경쟁력을 잃어갔다. 한창 시절 승강기 사업 종사자가 25만명에 달했다. 지금은 15~20% 정도만 남았다고 보면 된다. 2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날아간 셈이다.”

왜 엘리베이터를 평생의 업으로 삼았나.
“공업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찾아온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대했다. 당시 우리 세대는 ‘딸 아들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서 잘 키우자’ 이런 슬로건으로 가득하던 시대였다. 대통령이 여러 좋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난 그 일을 하명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만난 후 며칠간 ‘우리나라는 진짜 좁은 나라다, 나라가 발전할수록 건물이 높아질 수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가 많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교 1학년 때 승강기 분야 최고 권위자가 되겠다고 결심했고 지금도 그때 결심을 실천해가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세계 최대 엘리베이터 회사인 오티스에서 11년간 근무했던 김 대표는 서른세살이던 1994년 2월에 송산특수엘리베이터를 창업했다. ‘소나무 산’이란 뜻의 송산은 그가 고등학교 시절 승강기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당시 만든 이름이다. “소나무가 전 국토에 자라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소나무처럼 국가와 국민에게 이로움을 주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소명으로 회사 이름을 송산이라 정했습니다.” 송산특수엘리베이터의 기술이 본격적으로 인정받게 된 계기는 서울지하철공사의 요청으로 ‘기계실 없는 엘리베이터’를 만들고부터였다. 당시의 유압식 엘리베이터에는 승강기를 들어올리고 내리는 모터 기능을 하는 기계실이 따라다녔다. 지상으로 노출된 지하철 엘리베이터의 경우 ‘도시 미관상 이 기계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게 지하철공사의 주문이었다.

기계실 없는 승강기 개발 배경은.
“회사를 만든 지 4~5년 됐을 때다. 서울지하철공사에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하는데, 기계실까지 설치하면 높이가 거의 2층에 가까워 주변 상가들의 민원이 많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기계실이 필요 없는 엘리베이터를 개발해달라는 주문이었다. 구동기계와 제어시스템을 소형화해서 벽 안에 설치해 개발을 완료했다. 그리고 모터 설치 위치를 한 곳만 고집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후면이나 측면 어디든지 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했다. 기계실 없는 모듈러 엘리베이터는 해외에도 수출을 많이 했다. 대만 총통관저, 국내의 감사원, 혜화역, 양재역에 가장 먼저 설치했다. 중국 톈진지하철 역사, 필리핀 하이엇 빌딩에도 설치됐다.”

한꺼번에 300명이 탈 수 있는 골리앗 엘리베이터는 어떻게 개발했나.
“송산은 기술수준 높고 특수한 것,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겠다는 생각에서 창업했다. 그래서 남들이 만들지 못하는 특수 엘리베이터를 주력 사업으로 삼은 것이다. 골리앗 엘리베이터는 해양플랜트 사업 현장을 유심히 보다 개발하게 됐다. 하루에도 수천명이 수백미터 높이의 작업장을 오르내리는데 계단을 이용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걸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당시엔 100인승 옥외 엘리베이터가 최대 사이즈였다. 그래서 300명이 동시에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1년 8개월 걸려 개발했고, 마침 현대중공업에서 주문 의뢰가 들어와 납품했다.”

골리앗 엘리베이터는 외부 주문을 받아 개발을 시작한 제품이 아니었다. 김 대표가 ‘세상에 필요한 엘리베이터가 되게 하겠다’는 판단하에 초대형 엘리베이터 개발에 착수했고, 때마침 발주를 받아 제품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당시 상황을 김 대표는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가 1년 8개월 만에 골리앗 엘리베이터 개발을 완료한 시기는 2014년 12월 1일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10일 앞선 11월 20일에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혹시 수백명이 한번에 타는 엘리베이터 제작이 가능하냐’는 문의였다. 당시 골리앗 엘리베이터 개발 과정을 극비에 부쳤는데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다음 날 KTX를 타고 울산 현대중공업 본사로 달려가 ‘제품 개발이 끝나 언제든 제작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엑슨모빌로부터 초대형 해양플랜트 주문을 의뢰받았는데 납기가 예정보다 늦어져 공정을 앞당길 방법을 고민하다가 수백명의 직원을 한 번에 실어나르는 엘리베이터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는 것이다. 내 설명을 들은 현대중공업 담당 임원은 ‘계약서 쓸 시간도 아깝다’며  ‘선작업 지시서’로 제품 제작을 주문했고 90일 만에 납품을 완료했다.”


김기영 대표는 승마문화 부흥을 위해 수백억원을 들여 승마클럽을 만들었다. 송산특수엘리베이터가 경기도 안산에 건립한 베르아델 승마클럽 전경. <사진 : 송산특수엘리베이터>

지하 350m 길이의 DMZ 제3땅굴 엘리베이터도 개발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외국인들에게 안보관광 코스로 DMZ가 부각됐다. 그런데 지하 350m의 제3땅굴 출입에 문제가 생겼다. 땅굴에 내려갈 때는 괜찮은데 올라올 때는 길이 좁아 앞에서 한명만 지체돼도 전체가 늦어지는 것이었다. 제3땅굴이 있는 파주시는 ‘관람객들을 엘리베이터로 이동할 수 있게 하자’고 결정하고 오티스를 비롯한 해외 유수 엘리베이터 업체에 다 물어봤으나, 모두 다 안 된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티스 본사에서 거절을 하면서 ‘너희 나라에 ‘GY KIM(김기영 대표)’이 있지 않냐’고 해서 나를 찾게 됐다는 것이다. 1년을 해외 업체를 찾아다니다 월드컵을 겨우 7개월 앞두고 나를 찾아왔다. 나는 10분 만에 가능하다고 답했다. 결국 6개월 만에 제작을 완료했다. 완공된 엘리베이터 첫 이용객은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이었다.”

엘리베이터 산업의 미래 전망은 어떤가.
“엘리베이터는 이미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을 실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하면 대부분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AI)을 말하는데, 엘리베이터에는 이미 인공지능이 들어가 있다. 엘리베이터 시스템 중 스스로 학습해서 언제, 몇층에서, 얼마나 이용하더라를 기억하고 미리 행동하는 시스템이 있다. 내가 개발한 기술 중 하나인데,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만원이 되면 그때서야 ‘삐’소리가 나는데, 나는 실제 중량을 재서 얼마나 더 탈 수 있는지를 미리 보여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정확한 무게를 재는 방식으로 18년 전에 특허를 냈다. 많은 무게를 실어야 하는 컨테이너형 엘리베이터에는 필수적인 기술이다.”

엘리베이터와 무관한 승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이유는.
“승마 자체가 리더십 교육이다. 말 타면 집중력이 크게 향상된다. 경기도 안산에 수백억원을 들여 베르아델 승마클럽을 설립했다. 세계 최초로 실내 승마 전용 스타다움도 만들었다. 마방만 112개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다. 엘리베이터와 더불어 승마문화 회복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다.”


▒ 김기영
57세, 울산공대 기계공학과 졸업(1984년), 오티스엘리베이터 아·태지역 이사(1990년), 송산특수엘리베이터 설립(1994년), 한국엘리베이터협회장(2014년~현재)


plus point

최대 500명 탑승 골리앗 엘리베이터

송산특수엘리베이터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골리앗 엘리베이터는 150명에서 많게는 500명까지 한번에 태울 수 있는 초대형 엘리베이터다. 해양플랜트 및 대형 선박 건조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혁신기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골리앗 엘리베이터가 없을 경우 작업 차질이 불가피하다. 한번에 20~30명만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경우 수백명, 수천명이 이동할 때 많은 시간이 걸린다. 계단을 이용하면 지상에서 높게는 800m 높이의 작업장까지 가는 데만 최소한 30분 이상 걸릴 수 있다. 식사, 휴식시간에 오르내리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대규모 인원이 수직으로 이동하는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다. 300인승 골리앗 엘리베이터가 처음 설치된 현대중공업은 해양플랜트와 대형 선박의 공기를 크게 앞당겼다. 옥외에 설치되는 골리앗 엘리베이터의 또 다른 핵심 기술은 풍하중(風荷重·바람으로 인해 구조물의 외면에 작용하는 무게)이다.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흔들림이 없는 안전성을 말한다. 기상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불었던 가장 강한 바람이 초당 46m였는데, 골리앗 엘리베이터는 초당 50m의 바람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풍하중 설계 역시 특허등록이 돼 있다. 골리앗 엘리베이터는 노르웨이 정유 회사인 스타트오일, 삼성중공업 등에도 납품됐다.

현대중공업은 당시 외국기업으로부터 발주받은 해양플랜트 공정이 예정보다 크게 늦어지자 납기를 앞당기기 위해 한꺼번에 대규모 인원을 실어나를 수 있는 초대형 엘리베이터 제작을 의뢰했다.

기사: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윤희훈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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