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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과 기관원
  > 2017년12월 228호 > 칼럼
경제만물상
은행원과 기관원
기사입력 2017.12.04 13:34


<일러스트 : 이지애>

오래된 농담이다. 신호 위반으로 딱 걸린 운전자가 딱지를 떼려는 교통 순경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기관에서 일합니다.” 순경은 순간 멈칫했지만, 이상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직장인의 행색이라 “어디서 일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운전자는 “기관이라면 알아들어야지…”라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이것 봐라 싶어진 순경은 “그러니까 어느 기관이시냐고요”라고 따져 물었다. 운전자의 대답은 이랬다. “저 금융기관 다니는데요. 00은행.”

은행이 금융기관이던 시절이 있었다. 증권사, 보험사 등도 싸잡아 금융기관이라고 했다. 금융업은 라이선스업이라 정부의 입김이 강하다. 게다가 특별 융자다, 정책 금융이다, 정권에서 시키는 일도 많았다. 금융기관이라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다 20년 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동화은행 등 5개 은행이 퇴출당했고 제일은행과 외환은행은 외국계 펀드에 팔렸다.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고, 정권 실세들의 대출 지시에 잘 따르면서 금융기관으로 지내면 ‘철밥통’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뒤집어졌다. 은행도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무너진다는 걸 알게 됐고, 금융기관이 아니라 금융회사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도 금융회사로 잘 바뀌지 않았다.

10년쯤 지나서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에서 이걸 고치겠다고 나섰다. 당시 곽승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과거에는 공공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금융기관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앞으로 금융회사로 부르겠다. 금융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이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얼마 전 출범한 ‘초대형 IB(투자은행)’ 아이디어 등이 그때 나왔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제적으로 금융 감독을 강화하는 추세여서 대대적인 금융 규제 철폐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래도 금융기관이라는 단어는 많이 희미해졌다.


금융의 공적 기능 강조하는 정부

그 후로 또 10년쯤 지난 요즘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10월 31일 ‘금융의 날’ 행사 축사에서 ‘금융기관’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최 위원장은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는 민간회사를 금융기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금융이 맡은 공공성과 책임성에 대한 국민 기대가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기관 종사자들은 금융이 초래한 사회적 역기능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훈계했다. 역기능은 “이익만을 좇아 빠르게 움직이는 속성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 것도 금융의 본질”이라고도 했다. 금융의 본질이 그런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금융 스스로 역기능을 극복할 수 있도록 감독 당국도 함께 노력하겠다”고 했다. ‘현명한 금융 당국과 말 잘 듣는 금융기관’이라는 철 지난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듯하다.

이러니 적폐 청산한다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금융권에는 낙하산이니 특정 인맥이니 하는 뒷말이 여전하다. 요즘 금융권 대세는 ‘부금회’라는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지난해 상반기에 발족한 부산 출신 금융인 모임이라는데, 공교롭게도 최근 금융권에 부산 출신들이 늘어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고 한다. 최근 은행연합회장으로 결정된 김태영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를 비롯,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 이동빈 SH수협은행장 등이 부산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의 득세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금융회사의 사회적 책임은 금융위원장이 마이크를 잡고 말할 일이 아니다. 금융 당국이 금융회사들을 금융기관으로 여기고, 관치(官治)의 대상으로 여기겠다는 것처럼 들리기 쉽다. 아예 금융기관이라는 단어를 금융 관료들이 ‘금기어’로 정했으면 좋겠다.

기사: 이진석 조선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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