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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물방울에 스며든 예술혼 <br>와인 산업 지평을 열다
  > 2016년02월 136호 > 라이프
샤토 무통 로칠드
신의 물방울에 스며든 예술혼
와인 산업 지평을 열다
기사입력 2016.02.05 19:10

한국 와인 마니아들에게 2016년은 아주 특별한 해다. 프랑스 5대 샤토 중 하나로 세계 유명화가의 삽화를 라벨로 사용해 온 바롱 필립 드 로칠드사가 2016년 ‘샤토 무통 로칠드 2013’의 라벨에 한국 화가의 작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샤토 무통 로칠드의 라벨에 샤갈, 피카소, 달리, 세자르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세계적인 화가의 작품이 사용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의미를 가늠할 수 있다. 라벨의 주인공은 이우환 화백이다. 바롱 필립 드 로칠드가 와인 라벨에 한국인 작가의 작품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영FBC가 들여 온 ‘샤토 무통 로칠드 2013’의 라벨에 담긴 작품은 이 화백의 대표 작품인 ‘점’이다. 와인 전문가들은 자주색 점이 가운데 박혀 와인이 오크통 안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듯한 신비한 느낌을 준다고 평가했다.

샤토 무통 로칠드의 라벨 역사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전까지만 해도 와인을 병에 넣는 것은 중간 상인들의 몫이었다. 중간 상인들은 와이너리에서 오크통으로 와인을 구입해, 직접 병에 담아 판매했다. 그래서 당시 라벨에는 중개상의 이름이 와인 생산자보다 더 크게 부각되곤 했다. 중간 상인이 라벨을 마음대로 만들어 붙였기 때문에 통일성도 없었고 아름답지도 않았다.

이런 관행은 1922년 샤토 무통 로칠드를 상속받은 필립 드 로칠드 남작에 이르러 바뀌기 시작했다. 필립 남작은 그랑크뤼 클라세 특2급에 불과하던 샤토 무통 로칠드를 특1급으로 승격시켜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 등급의 와이너리로 키워냈다. 1855년 보르도 그랑크뤼 체제가 구축된 이후 100여년이 지나는 동안 바뀌지 않았던 프랑스 메독의 등급 분류가 변경된 유일한 경우였다. 이 덕분에 바롱 필립 드 로칠드는 와인업계의 ‘혁명아’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필립 남작은 이후 와인의 품질을 높이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동시에 와인의 품격을 높이는 작업에도 착수한다. 그는 와인을 병에 넣는 작업은 중간상이 아닌 와이너리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라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때부터 와인 라벨은 와인의 트레이드 마크, 출처 증명, 품질 보장, 포도원의 서명 등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1924년 빈티지가 출시되던 1926년, 필립 남작은 유명한 그래피스트인 장 카를뤼에게 의뢰해 자신만의 라벨을 만든다. ‘모든 수확을 샤토에서 병입하였다’라는 문구와 함께 무통을 상징하는 양머리와 로칠드의 5형제를 상징하는 5개의 화살을 넣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가 늘 그렇듯 필립 남작의 라벨은 당시 혁신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기존 체제의 변화를 싫어하는 반발에 부딪힌다. 결국 필립 남작은 ‘아름다운 라벨’에 대한 꿈을 잠시 접는다. 그의 시도가 다시 시작된 것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보르도에 돌아와서 첫 빈티지를 출시하면서다. 20세기 최고의 빈티지라고 일컬어지는 1945년 산부터 필립 남작은 매년 다른 예술가들의 그림으로 라벨을 만든다. 전쟁 이후 기존 체제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이뤄지는 분위기 속에서 필립 남작의 시도는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다른 와이너리들도 따라하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이후 바롱 필립 드 로칠드는 매년 와인 샤토 무통 로칠드를 출시할 때마다 세계적인 화가의 작품을 라벨로 활용한다. 당대 저명한 예술가에게 의뢰해 와인 라벨을 디자인하는 혁신적인 필립 남작의 시도는 지금은 와인업계에서 보편적인 이벤트로 자리 잡은 ‘라벨 콜라보레이션’의 시초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샤토 무통 로칠드는 와인 마니아들 사이에서 소장 1순위로 여겨질 정도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바롱 필립 드 로칠드는 1945년부터 70년가량 세자르, 샤갈, 칸딘스키, 피카소, 앤디 워홀, 프랜시스 베이컨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라벨에 사용했고, 그 덕에 예술이 담긴 명품 중의 명품 와인으로 인정 받았다. 한정판으로 제작되는 샤토 무통 로칠드 컬렉션은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현대 회화 걸작선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바롱 필립 드 로칠드는 화가들의 작품만 라벨에 사용하지는 않는다. 2004년 빈티지가 대표적이다. 영국 찰스 왕세자가 라벨 디자인에 참여했다. 2007년 빈티지의 라벨 디자인에는 세계적 조각가 베르나르 브네가 참여하기도 했다. ‘철 조각의 마술사’로 알려진 브네는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샤토 무통 로칠드 빈티지 중 어떤 빈티지의 가치가 가장 높을까. 전문가들은 2차 대전의 승리를 기념해 Victory(승리)의 v를 라벨로 삼은 1945년 빈티지와 피카소가 라벨을 그려준 1973년 빈티지를 꼽는다. 이들 빈티지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소장 가치가 크다. 특히 1973년 샤토 무통 로칠드가 최초로 2등급에서 1등급으로 격상된 것을 기념한 피카소 작품의 라벨 와인은 수집가들 사이에서 소장 가치 1순위 와인으로 꼽힌다.

재미난 점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제공한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린 라벨의 빈티지를 포함한 다른 한 해의 샤토 무통 로칠드까지 2케이스의 와인을 선물로 받는다는 점이다. 와인 애호가들은 이를 ‘명예로운 거래’라고 부르고 있으며 아직 이를 거부한 화가는 한 명도 없었다.

필립 남작은 노년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라벨을 매년 바꿀 거야. 와인은 매년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알맞은 예술가들을 선정하고 그들에게 디자인을 맡길 거야. 그리고 라벨 디자인 대가로 와인을 줘야지. 예술을 위한 와인, 와인을 위한 예술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흔히 위대한 와인을 만드는 것을 예술 작품에 비유하지만 와인과 예술을 접목한 사람은 필립 남작이 처음이었다. 와인 전문가들은 이때부터 보르도의 와인 세계는 완전히 변했다고 평가한다. 필립 남작의 무남독녀인 필리핀 드 로칠드 남작부인(바로네스)도 예술을 사랑했다. 1988년 필립 남작이 86세로 타계하자 연극 배우로 활동하던 필리핀은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다마이약, 샤토 클레르 미용, 무통 카데 및 미국 최고의 와인 오퍼스 원을 생산하는 바롱 필립 드 로칠드의 주인이 된다.

그는 필립 남작의 말년부터 무통의 라벨 선정에 깊이 관여했는데 아버지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필리핀은 1981년 처음으로 유명한 예술가들이 그린 샤토 무통 로칠드의 라벨 전시회를 기획했다. 1945년 이래 사용된 샤토 무통 로칠드 라벨의 원화들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세계 순회 전시회는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20세기 가장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이 포함된 이 전시회는 샤토 무통 로칠드의 명성을 더욱 높였다.

필리핀 남작 부인은 1991년부터 지금까지 무통 까데로 칸 국제 영화제를 후원하고, 조상을 기념하기 위한 헌정 와인 시리즈를 만들었다. 칠레 최고의 와인인 알마비바, 에스쿠도 로호 등을 탄생시킨 사람도 그녀다.

기사: 박지환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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